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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들의 '누적된 분노'… "우리는 성평등에 투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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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군소정당 소신 투표… 의견 표출하며 효능감 얻어

[아시아경제 박준이 기자] 4·7 보궐선거에서 가장 이목이 쏠리는 지점은 20대 표심이었다. 지난 7일 KBS, MBC, SBS 방송 3사가 참여한 공동예측조사위원회(KEP)의 공동 출구 예측조사에서 72.5%에 달하는 20대 이하 남성이 오세훈 서울시장을 택했지만, 20대 이하 여성은 44%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택했다는 점에서 표심이 갈렸다. 특히 20대 이하 여성은 15.1%가 소수정당·무소속 후보를 지지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전체 유권자 중 기타 후보에 10% 이상의 표를 행사한 유권자층은 20대 이하 여성이 유일했다.

모두가 '정권 심판' 외칠 때 이들은 '성범죄 타파' 외쳤다
4·7 보궐선거를 앞둔 26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거리에 서울시장 후보들의 선거벽보가 붙어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4·7 보궐선거를 앞둔 26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거리에 서울시장 후보들의 선거벽보가 붙어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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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들이 주목한 건 '여성 후보'다. 여기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비위 사건이 촉매제가 됐다. 그 결과 이들의 표심은 '절대 남성 후보를 뽑지 않겠다'는 것과 '성폭력 후보를 낸 여당(더불어민주당)을 절대 뽑지 않겠다'는 것으로 갈렸다. 15.1%라는 적지 않은 이들이 무소속·군소정당 후보를 택하게 된 배경이다.


전임 시장의 성비위 사건은 이번 보궐선거를 있게 한 원인이었지만, 선거 내 핵심 화두는 '정권 심판론'이었다. 야권이 정부·여당의 부동산 정책 실패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등을 집중 공략하고 여권이 야권 후보들의 투기 의혹 제기에 열을 올리면서 여야 간 공방전에 관심이 쏠렸다. 야권은 '여당 소속 전임 시장들의 성비위'를 지적했지만 본질을 상기시키려는 것보단 정권 심판론을 강화하기 위함이었다. 이 가운데 일부 여성단체와 여성 후보들은 선거 내내 보궐선거의 본질을 되짚었다. 한 여성단체는 이번 보궐선거의 특수성을 언급하며 "서울시장 보궐선거 왜 하죠? 우리는 성평등에 투표한다"라는 현수막을 걸었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를 불허했다.

정권 심판론이 주류를 이룬 가운데 일부 20대 여성들은 '성평등 투표'의 필요성을 잊지 않았다. 선거를 3일 앞둔 지난 4일 고등학생 염모(19)씨는 "여성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시장을 뽑을 것"이라며 "많은 것을 바꾸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성폭력 피해자 상담센터를 많이 유치한다든지 등의 '시도'는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고 털어놨다. 대학생 김모(23)씨도 "내가 뽑은 후보가 시장이 될 거라고 기대하는 건 아니다"며 "전임 시장이 성추행 사건으로 물러난 상황에서 분노한 여성들이 이 정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표를 행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20대 여성들에겐 남성 후보 자체가 부정적인 존재로 인식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국민의힘, 민주당 후보 모두가 피해여성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는 의지를 투표로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20대 여성들의 '누적된 분노' 조금씩, 천천히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가 지난 2018년 6월6일 서울 수서경찰서 앞에서 자신의 선거 벽보가 잇따라 훼손된 것과 관련해 경찰의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신지예 후보 선거본부 제공=연합뉴스]
    photo@yna.co.kr
(끝)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가 지난 2018년 6월6일 서울 수서경찰서 앞에서 자신의 선거 벽보가 잇따라 훼손된 것과 관련해 경찰의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신지예 후보 선거본부 제공=연합뉴스] phot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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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분노가 소신 투표로 표출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3년 전 서울시장 선거에서 페미니스트 후보로 나선 신지예 녹색당 후보는 8만2874표를 받아 1.67%의 득표율로 4위를 기록했다. 군소정당 후보인 데다 선거운동 내내 반페미니스트들의 지탄을 받았던 상황을 고려했을 때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이번 선거에선 3만3421표(0.68%)로 4위에 오른 김진아 여성의당 후보가 일부 20대 여성들의 대안이 됐다. 김 후보는 오로지 여성 공약만을 내걸었다. 여성 안전과 성평등 대책을 세분화해 여성폭력대응기구 출범, 서울시 공기관 여성 임원 50% 확보 등을 내세운 것이 대표적이다.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이지원·장지유 여성의당 공동대표는 논평을 내고 "이제 여성들은 공보물에서 구색 맞추기식으로 삽입되는 몇 줄짜리 여성 정책에 만족하지 않는다"며 "여성들은 여성의당 김진아 후보에게 득표 순위 4위라는 성과를 당당히 안겨주며 정치적 주체로서 호기롭게 거듭났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사표가 될 것임을 알면서도 목소리를 내기 위해 소신 투표를 했을 거라고 봤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20대 여성들은 성폭력 문제가 굉장히 심각한 문제임에도 잘 인식되고 있지 않다는 불만에서 소신 투표를 한 것 같다"며 "비록 군소정당 후보고 인지도도 낮지만 그런 후보에게 표를 던져서 자기 의견을 표출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투표 자체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가 소신투표 형태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도 "지금 정권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20대 여성들은 여성 고용, 복지, 돌봄, 치안 등 더 여성 친화적인 정책을 펼칠 수 있는 여성 후보들을 택했을 것"이라며 "과거에는 사표 방지 심리로 인해 소수 정당을 찍지 않았지만 요즘 세대는 소신 투표로 정치적 효능감을 얻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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