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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임신한 거 맞아?" 욕설·조롱·폭행까지…임산부 배려석 갈등 [한기자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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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도 강요하나요" 임산부 배려석 자리 갈등
50대 남성 임산부 여성에 욕설 폭행 등 극단 상황 치닫기도
자리 갈등 민원 꾸준…배려석에 '혐오' 낙서까지

27일 오후 서울 1호선 한 지하철 칸에 마련되어 있는 임산부 배려석.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27일 오후 서울 1호선 한 지하철 칸에 마련되어 있는 임산부 배려석.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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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사람 없으면 앉지만, 눈치 보여서 다른 자리에 앉거나 서서갑니다."


27일 오후 서울 1호선에서 만난 40대 직장인 김 모씨는 "임산부 배려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임산부 배려석은 말 그대로 임산부를 위한 좌석이지만 임산부를 포함해 누구나 앉을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렇다 보니 일부에서는 임산부들을 배려하지 않아 갈등을 일으키거나 김 씨 사례와 같이 빈자리여도 앉지를 못하는 등 임산부 배려석을 둘러싼 갈등과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임산부 절반 이상은 일상생활에서 타인으로부터 배려를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임산부 배려 문화가 더욱 확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일부에서는 배려를 강요하지 말라는 취지의 불만도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해 `임산부의 날`(10월10일)을 맞아 실시한 온라인 설문 조사 결과, 임산부의 54.1%는 `배려를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 조사는 임신육아종합누리집 홈페이지와 아이사랑 등에서 임산부 1500명과 일반인 1500명 등 총 3천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으로 10일 간 이뤄졌다.


배려받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 것 같으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4.3%는 `배가 나오지 않아 임산부인지 티가 나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타인에게서 배려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한 임산부는 45.9%였다. 또한, 임산부가 받은 배려를 살펴보면 가정 내 청소·빨래·식사 등 가사 분담이 59.9%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에서 좌석을 양보받았다는 답변도 46.5%였다. 직장에서 출·퇴근 시간 조정을 받았다는 응답은 35.8%에 그쳤다. 임산부를 배려하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임산부와 일반인 모두 `임산부 배려 인식 교육이 필요하다`(임산부 64.6%, 일반인 61.9%)고 답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임산부의 안전하고 행복한 임신·출산을 위해서는 주변의 작은 관심과 배려가 필수적"이라며 "임신·출산 친화 환경을 조성하고 임산부 배려 문화가 확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27일 오후 서울 1호선 한 지하철 칸에 마련되어 있는 임산부 배려석.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27일 오후 서울 1호선 한 지하철 칸에 마련되어 있는 임산부 배려석.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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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가운데 배려를 강요하지 말라는 의견도 있다. 불가피한 상황으로 임산부에게 배려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이런 상황까지 배려가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40대 회사원 이 모씨는 "임산부를 보면 당연히 자리를 내주는 등 배려를 하고 있다"면서 "다만 이를 무조건 자리 양보를 해서는 안 된다, 강요나 눈치에 의한 배려는 진정한 배려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조사 결과와 같이 임산부로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닌 이유로 자리 배려를 받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30대 여성 회사원 박 모 씨는 "정말 힘들면 임신했으니 자리 좀 양보해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 다 보는 상황에서 그런 말을 꺼낼 수 있는 임산부가 몇이나 될까"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자리 양보 등 배려는 선택일 수 있으니 그런 과정에서 갈등이 좀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임산부 배려석을 둘러싼 갈등은 다툼으로 번지기도 한다. 2019년 5월 지하철의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여성에게 "앉지 말라는데 왜 앉아 있냐"며 발길질을 한 남성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가해자인 50대 남성은 A 씨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욕설을 내뱉더니 왼쪽 발목을 여러 차례 걷어차기도 했다.


특히 그 과정에서 "요즘 여성들은 다 죽어야 한다"는 말도 했다. 재판에 넘겨진 남성에게 법원은 징역 4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죄질이 나쁘지만 형사처벌 전력이 없고 A씨가 임산부임을 밝히고 난 뒤에는 욕설이나 폭행을 가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임산부 배려석을 반대한다는 취지의 낙서. 사진은 서울지하철 4호선 임산부 배려석.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임산부 배려석을 반대한다는 취지의 낙서. 사진은 서울지하철 4호선 임산부 배려석.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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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임산부 배려석을 둘러싼 갈등과 관련 민원은 지속해서 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공사)에 따르면 2019년 1월부터 10월까지 임산부 배려석 관련 민원 건수는 1814건으로 2019년 7312건에 비해 1.5배 가까이 늘었다. 민원은 대부분 `자리 갈등`에 대한 내용이다.


일부에서는 왜 배려를 강요하는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있다. 2019년 6월 공사 측이 서울 지하철 이용 시민 6179명(임산부 12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임산부석에 앉은 이유에 81.50%가 `비워져 있어서`와 `강제가 아닌 배려석이라서`라고 답했다.


정부는 임산부 배려석 갈등과 논란에 대해 임산부들이 편히 이용할 수 있도록 문화 정착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해 임산부의 날을 맞아 "정부 노력과 함께 출산을 위한 출산 친환경 문화를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현재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에는 17000여 개의 임산부 배려석이 마련돼 있다. 정부는 초기 임산부가 마음 놓고 임산부 배려석을 이용할 수 있도록 더 적극적으로 홍보를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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