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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 없어 뽁뽁이로"…설 앞두고 '박스대란' 본격화

최종수정 2021.01.27 10:43 기사입력 2021.01.2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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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판지 박스 제조업체 한 직원이 근심 어린 얼굴로 가공 중인 골판지 상자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아시아경제DB]

골판지 박스 제조업체 한 직원이 근심 어린 얼굴로 가공 중인 골판지 상자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아시아경제DB]


[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박스 대신 뽁뽁이라도 칭칭 감아서 배송해야 할 것 같다"


서울 강남에서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 이선용(47.가명) 대표의 하소연이다. 이 대표는 "박스 재고가 거의 없어 급하게 여러 곳에 주문했지만, 재고가 없다는 답신만 받았다"면서 "보통 3~4일이면 주문한 박스가 도착했는데 3~4주는 기다려야 한다고 하더라. 포장할 포장할 박스가 없어 제품을 못파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제주에서 감귤 농장을 운영하는 함성훈(50.가명)씨는 "설 대목을 망쳤다"고 했다. 실수로 박스 재고를 잘못 파악하는 바람에 포장용 박스를 미리 주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함씨는 "지난주에 박스를 주문했더니 20일 정도는 기다려야 된다고 하더라"면서 "주문이 와도 귤을 담아 배송할 박스가 없어 이번 주부터 판매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설에는 50~60상자 넘게 팔았다"면서 아쉬워했다.


골판지 공급 부족 석 달 넘게 이어져

설을 2주 가량 앞두고 '박스대란'이 본격화됐다. 지난해 10월 대양제지 화재 이후 박스 원재인 골판지 공급 부족 현상이 석 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택배 물량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고, 설 특수까지 겹치면서 선물용·배송용 박스 품귀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7일 제지업계에 따르면, 업계는 국내 원지 생산량의 7%(월 3만t)를 담당하는 대양제지 안산공장 화재 이후 원지 수입을 늘리고, 수출을 줄이면서 부족분을 충당했지만, 불안심리로 인한 가수요가 폭증하면서 공급량 조절에 실패했다.

김진무 한국골판지포장산업협동조합(골판지조합) 전무이사는 "대양제지 화재 이후 물량부족을 우려한 능력있는 회사들이 원지를 더 많이 구입하고, 유통업체들은 박스를 대량 선주문하면서 가수요가 더 늘어났다"면서 "이런 가수요 때문에 골판지 시장은 수요보다 30% 이상 물량이 부족한 상태"라고 말했다.


실제 유통업체들의 포장용·배송용 박스 대량 선주문으로 원지 부족분이 월 10만t 정도로 늘어났다. 10만t은 국내 골판지 원지 생산량(월 44만t)의 22.6%에 달한다.


가격 올라도 수요 안 줄어 '쏠림현상'

골판지 박스는 원료인 원지로 골판지의 겉면과 구불구불한 골심지인 원단을 만들고, 원단으로 골판지를, 골판지로 박스를 제작한다. 공급이 달리면서 골판지를 만드는 원지 가격도 크게 올랐다. 화재 이후 원지 납품 단가는 20~25% 정도 인상됐다. 골판지 가격도 크게 올랐다. 우체국 택배용 박스재질의 경우 화재 전 ㎡당 480~490원에서 현재 550~560원을 호가한다.


가격이 올라도 수요가 줄지 않았고, 대형 제지업체로의 공급 쏠림은 심화됐다. 원지부터 골판지까지 수직계열화해 시장 전반을 장악한 태림포장·삼보판지·한국수출포장 등 일관기업들은 쏟아지는 주문에 납기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반면, 높은 가격에 휘둘리면서도 원지 공급을 받지 못해 박스를 생산하지 못하는 영세 골판지·박스 제조업체들은 고사 직전으로 내몰리고 있다.


경기도 시흥에서 포장용 박스를 제조하는 D사를 운영하는 강경범(65) 대표는 "원단이 안들어와서 2개월째 회사 문만 열어놓고 있다"면서 "작은 회사라 웃돈을 얹어주고 원단을 받아올 형편도 안돼 판지공장에서 보내주기만 마냥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문받은 박스를 납품해야 매출이 생기는데 매출이 없어 직원 월급도 못주는 형편"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골판지조합 '공동구매' 영세업체 지원

영세 골판지·박스 제조업체들의 이같은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달 30일 정부와 제지업계가 머리를 맞대 내놓은 방안은 '공동구매'와 일관기업들의 과다 선확보 자제요청과 필요시 실태점검이다. 공동구매는 전주페이퍼와 대한제지 등 신문용지 제조업체들이 제조설비를 개조해 생산한 원지를 골판지조합이 월 4000~5000t 정도 공동구매, 이를 영세 골판지·박스 제조업체들에게 지원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실제 공동구매가 진행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어서 당장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일관기업들은 여전히 물량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김 전무이사는 "공동구매를 통해 중소·영세업체들의 숨통을 틔워주면 시장의 쏠림현상은 개선될 것으로 본다"면서 "지금 시장을 제어하지 못하면 골판지 파동은 하반기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향후 환경부의 혼합폐지 수입금지, 폐골판지 수입제한 조치도 시장안정의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제지업계 관계자는 "수입폐지는 강도 유지 등을 위해 국산폐지와 혼합 사용하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 수출은 허용하면서 수입을 금지하면 공급은 더욱 타이트해질 것"이라면서 "제지사들의 신증설 수요와 맞물려 폐지수요는 더욱 증가할 것이기 때문에 공급물량 부족 상황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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