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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시설보다 길거리가 편해" 맹추위 온몸으로 견디는 노숙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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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 피할 곳 없다" 노숙인들, 혹독한 겨울나기
"직접적인 지원 필요하다" 복지시설 도움 호소

1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광장에서 한 노숙인이 추위에 떨며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다. 사진=김영은 기자 youngeun928@asiae.co.kr

1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광장에서 한 노숙인이 추위에 떨며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다. 사진=김영은 기자 youngeun92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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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허미담·김영은 기자] "추위 견디는 방법? 그런 거 없어. 그냥 버티는 거지.", "이번 겨울은 다른 해보다 유독 더 추워."


18일 오전 서울역 광장에서 만난 김모(67)씨는 싸락눈을 맞으며 추위에 온몸을 떨고 있었다. 올해로 8년째 노숙 생활을 하고 있다는 김 씨는 "이번 겨울은 눈도 많이 오고 유난히 추운 것 같다"며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막막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노숙인 쉼터 등 복지시설에 왜 들어가지 않느냐'는 질문에 "시설에 가려고 해도 코로나19 때문에 제약이 많다. 우리가 알아서 살길을 구해야 한다"며 "길거리 생활을 해온 지 꽤 됐는데 이번 겨울은 특히 더 춥고 힘들다. 밤에는 덜 추운 곳을 찾아 이곳저곳 떠돌아다닌다"고 힘없이 말했다.


이날 서울역 인근에서는 허름한 외투 하나만 걸친 채 추위에 떨고 있는 노숙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몸을 잔뜩 웅그린 채 추위에 연신 발을 동동 굴렀고, 입김을 부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한 노숙인은 점퍼에 달린 모자를 푹 눌러쓰고 목도리를 코까지 칭칭 감았지만, 살을 에는 추위에 볼과 귀는 금세 벌겋게 달아올랐다.

1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인들이 침낭을 덮고 자고 있다. 사진=김영은 기자 youngeun928@asiae.co.kr

1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인들이 침낭을 덮고 자고 있다. 사진=김영은 기자 youngeun92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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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는 노숙인 등 사회 취약계층에 더욱 무섭게 다가온다. 한파에 무방비로 노출된 노숙인들은 저체온증 등 한랭질환에 시달릴 위험이 크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초부터 매주 20~40명대를 기록하던 한랭 질환자는 올해 1월 3~9일 130명으로 3배 이상 늘어났다. 이 중 68.8%는 무직자와 노숙인, 신원 미상자였다.


한파로 인해 목숨을 잃는 노숙인들의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14일 충북 청주시 내덕동의 한 편의점 앞에서는 50대 남성 노숙인이 숨진 채 발견됐고, 지난 13일 광주시 서구 유촌동의 한 다리 밑 공터에서도 한 50대 노숙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추운 날씨에서 잠을 자다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다 보니 노숙인들은 "혹독한 추위를 홀로 견디기 두렵다"며 복지시설의 도움을 연신 호소했다. 거동이 불편한 또 다른 노숙인 이모(63)씨는 "허리랑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무료 급식소도 못 간다"며 "나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은 누군가 도와주지 않는 이상 추위를 견딜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올해가 가장 추운 것 같다"며 "길거리에서 평생을 살았어도 겨울을 견디는 것은 늘 힘들다"고 했다.


길거리 생활만 수십 년 했다는 김모(64)씨도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시설이 바로 앞에 있지만 가지 않는다. 시설 직원들이나 관리인들이 코로나 시국이라 우리를 더 험하게 대하는 것 같다"며 "우리는 코로나에 걸릴까 봐 불안한 것보다, 직원들이 코로나 때문에 우리를 더 경계하는 것 같아 그 점이 더 불편하다. 차라리 길거리가 편할 지경"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요즘은 코로나라 그런지 시설에 들어가는 절차도 더 복잡해져서 이 겨울에 노숙인들이 다 밖으로 나왔다"며 "우리는 영하 20도의 추위에도 길에서 잔다. 따뜻한 물로 씻는 게 작은 소원 중 하나"라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1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광장에서 한 노숙인이 얇은 종이 한 장을 이불삼아 잠을 청하고 있다. 사진=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1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광장에서 한 노숙인이 얇은 종이 한 장을 이불삼아 잠을 청하고 있다. 사진=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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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노숙인들을 위한 복지시설 중 일부는 코로나19로 인해 제약이 생긴 상태다. 서울역 인근에 위치한 희망지원센터는 원래 입장 인원 제한이 없었으나, 지난달 20일 한 노숙인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뒤 낮 시간에는 선착순 15명만 출입을 허용했다. 취침 가능 인원도 49명에서 35명으로 줄였다. 결국 노숙인들은 복지시설을 이용하는 데 일종의 제약을 받게된 셈이다.


이를 두고 서울시 한 관계자는 "현재 센터나 시설에 노숙인분들을 위한 잠자리는 여유 있게 마련된 상태"라며 "다만, 노숙인분들이 센터에 들어오지 않으려고 한다. 설득해도 센터에 자발적으로 들어오지 않으려고 해 걱정"이라고 했다.


한편 방역당국은 노숙인 등 사회 취약계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독거노인과 노숙인, 치매 등 만성질환자는 한파에 특히 취약하므로 지자체와 이웃, 가족의 각별한 관심을 당부드린다"며 "취약계층에 대한 한랭질환 예방을 위해 관계부처 및 지자체와 지속 협력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김영은 기자 youngeun92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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