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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으려 '혈안'이 된 사람…참전 작가의 마지막 베트남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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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붉은 눈동자'로 돌아온 소설가 이상문

살아남으려 '혈안'이 된 사람…참전 작가의 마지막 베트남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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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베트남전쟁을 다룬 영화 '지옥의 묵시록(1979)'에서 남편을 잃은 프랑스인 여자가 주인공 월러드 대위에게 말한다. "당신 안에는 두 사람이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살인하는 사람."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작 가운데 '짐승 같은 사람'이라는 제목의 유화가 있다. 네 발 달린 짐승의 몸뚱아리에 좌우로 뿔 달린 인간의 머리가 달렸다. 2년간 해병대 첩보대원으로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최동열 화백이 1986년 그린 작품이다.

전쟁이란 피아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내 속에 숨어 있던, 나도 몰랐던 괴물이 등장하는 혼돈이 아닐까.


소설가 이상문이 베트남전쟁을 소재로 쓴 신간 소설 '붉은 눈동자'에도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두 인물 황덕수와 구종구가 나온다. 지난 1일 신사동의 한 식당에서 만난 작가는 "황덕수는 가장 인간 같은 모습, 구종구는 가장 짐승 같은 모습으로 그린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이상문은 베트남 참전 군인이다. 1970년 3월부터 1972년 1월까지 베트남에 있었다. 그는 1983년 베트남전쟁을 다룬 단편소설 '탄흔'으로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을 받아 등단했다. 1987년 다시 베트남전쟁을 이야기한 장편소설 '황색인(전 3권)'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1994년에는 장편소설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립니다(전 5권)'를 펴냈다.

'붉은 눈동자'는 26년 만에 출간된 작가의 네 번째 베트남전쟁 소설이다. 제목은 혈안을 뜻한다.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다.


"베트남에서 귀국선을 타면 한국까지 5박6일이 걸렸다. 배에서 눈이 뻘건 사람들을 꽤 봤다. 저 사람 고생 많이 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특수부대원들은 대부분 눈이 빨갛다. 사람들의 처참한 모습도 많이 보고 항상 목숨 내놓고 움직이는 사람들이라 그렇다. 그런 사람들은 한국으로 돌아와도 빨간 눈 때문에 서너 달 고생한다."


황덕수와 구종구가 특수부대원이다. 구종구는 부대원 중 가장 용감하지만 가장 잔인한 인물이다. 악마 같다. 그런 구종구에게 황덕수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갖게 된다. 둘 사이에 베트남 여고생 티엉마이가 얽혀든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지 40여년 만에 구종구가 황덕수에게 연락해온다. '멧돼지 구종구, 그 인간 같지 않은 자가 내게 전화를 했더란 말이지.'


황덕수는 전쟁에서 돌아온 뒤 위문편지를 주고받던 정미연이라는 여성과 결혼한다. 하지만 정미연은 당뇨와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한다. 작가는 정미연이 베트남전쟁의 2차 피해자라고 설명했다. "황덕수는 겉이 멀쩡하지만 속은 병들어 있다. 자기 상황이 그 지경이니 아내가 자기 때문에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위로하거나 해명할 방법도 없고, 그래서 2차 피해자가 발생한다."


소설은 황덕수가 꿈에서 아내와 만나는 이야기, 현실에서 구종구와 만나는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전개된다. 황덕수는 꿈에서 죽은 아내와 살아생전 못 나눈 얘기들을 나누며 화해한다. 구종구와도 화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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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황색인' 쓴 참전 작가의 네번째 베트남전쟁 소설
인간답지만 속은 병든 황덕수·짐승같지만 내면은 선한 구종구
대비되는 인물로 전쟁 참상 그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최선"

작가는 구종구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의 연결고리라고 설명했다. "구종구가 절대악에 가까운 인물인데 내면에는 인성이 살아 있다. 구종구는 자기 이익 챙기기에 바쁜 장교들을 보면서 자신도 내 것을 챙겨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베트남전쟁에서 보상받아 귀국 후 6·25 피해자들을 돕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이 워낙 강하기에 전과를 올려야 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모습이 안타깝고 악마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작가는 베트남전쟁을 한국전쟁과 연계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우리 민족의 비극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6·25가 없었다면 우리나라와 미국의 관계도 달랐을 것이다. 우리의 비극은 6·25, 분단 그리고 베트남전쟁으로 이어진다고 봐야 한다."


작가는 1990년 4월 서울신문 객원기자로 베트남 르포 취재를 다녀왔다. 당시 베트남이 한국과 수교하기 전이어서 태국에서 비자를 받아야 했다. 게다가 베트남은 작가가 적으로 싸웠던 북베트남이 통일한 국가였다. 작가는 베트남에 도착하기 전 두려움이 없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당시 개방 정책을 막 도입한 베트남에 외국인의 안전은 중요한 문제였다.


약 20년 만에 다시 밟은 사이공공항(현 떤선붘국제공항)은 기억 속 그대로였다. 검게 그을린 활주로가 눈에 띄었다. "제초기가 없어 불을 지른 것이었다." 북베트남은 전쟁에서 이겼지만 가난을 해결하지 못했다. 1989년 개혁·개방 정책인 '도이모이 정책'을 도입했다. 그 덕에 비수교국 한국의 이상문이 입국할 수 있었다.


이상문은 같은 해 12월 부산일보의 지원으로 베트남 취재를 다녀왔다. 두 차례 베트남 방문 기록을 '베트남 별곡'과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르포집 두 권으로 발간했다.


이상문은 이제 베트남전쟁 관련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했다. 지쳤다고 했다. 지금 사회의 주축은 베트남전쟁을 머리로 왼 세대들이다. 베트남 전쟁을 뼈에 새긴 작가와의 간극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글을 쓸 때 떠오르는 당시의 기억은 작가에게 고통이다. 더 힘든 점은 더 이상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사회에 반향을 주지 못 하고 묻혀버린다는 점이다.


"헛발질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많이 든다. '붉은 눈동자'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최선을 다해보자고 쓴 소설이다. 베트남전쟁은 우리나라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어떻게 갔으며, 왜 갔으며, 어떤 일이 있었으며, 돌아온 사람들이 어떤 상처를 안고 살았는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해 지금까지 소설을 쓴 것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한다. 과거가 거짓이고 감춰져 있으면 대화할 수 없으니 미래는 없는 것이다. 미래야 있겠지만 참미래는 아닐 것이다."


작가는 내년에 한지와 관련한 책을 낼 것이라며 500매 가량 써놓았다고 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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