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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어떻게 D램 최강자가 됐을까 [임주형의 테크토크]

최종수정 2020.11.01 07:00 기사입력 2020.11.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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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세계 반도체 2위로 끌어올려 준 D램
PC 시대 예견, 수율과 가격에 초점 맞춰
올해 2분기 시장 점유율 43.5%, 압도적 1위
中 기업 도전, 또 다른 치킨 게임 불러올 수도

삼성전자 사옥. /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 사옥. / 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컴퓨터의 D램(DRAM)은 많을수록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부품에 비해 비교적 저렴해 쉽게 구할 수 있고, 본체 내 슬롯에 끼우기만 하면 즉각적인 성능 향상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지요.


현재 D램를 가장 많이 만들고, 또 가장 잘 만드는 기업은 삼성전자입니다. 2019년 기준 인텔에 이어 세계 2위의 매출을 기록한 삼성의 수익 대부분이 이 D램에서 나옵니다.

지금이야 D램이 만만한 부품으로 취급 받지만, 사실 과거에는 고급 부품이었습니다.


1980년대까지만해도 ‘컴퓨터’라는 단어는 메인프레임을 의미했습니다. 메인프레임은 거대한 본체가 특징인 컴퓨터로, 주로 기업이나 연구소에서 막대한 데이터를 처리할 때 쓰입니다. 오늘날 컴퓨터의 대세가 된 PC와 비교하면 매우 비쌉니다.


당시 D램은 메인프레임의 성능을 결정짓는 핵심 부품이었습니다. 그만큼 매우 비싼 가격에 거래됐습니다. 당시 D램의 가격은 같은 무게의 금보다 더 비쌌다고 할 정도입니다. 이렇다보니 이 시기 D램을 구매하는 업체들은 부품의 성능과 수명을 중시했습니다.

미국 기업 'IBM'이 개발한 메인프레임. 메인프레임은 기업, 관공서 등에서 사용하는 대형 컴퓨터를 뜻한다. / 사진=위키피디아 캡처

미국 기업 'IBM'이 개발한 메인프레임. 메인프레임은 기업, 관공서 등에서 사용하는 대형 컴퓨터를 뜻한다. / 사진=위키피디아 캡처



이 때문에 높은 기술력과 신뢰성을 갖췄던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메모리 업계를 독식했습니다. 80년대 중반만 해도 엘피다, 도시바, NEC 등 일본 기업들은 D램 시장의 80%를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컴퓨터의 크기가 줄어들고 가격도 저렴해지면서, 우리에게 친숙한 PC가 개발됩니다. 또 PC가 각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컴퓨터를 이루는 부품의 요구사항도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시기에 삼성전자가 신규업체로써 반도체 업계에 진입했습니다.


◆스택이냐 트렌치냐

80년대에 이미 세계 D램업계 1위를 달성한 일본 업체들은 여전히 고성능과 극한기술을 고집했습니다. 반면 삼성 등 한국 업체들은 수율과 가격 경쟁력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당시 D램 설계의 가장 큰 화두는 ‘스택(stack)’이냐 ‘트렌치(trench)’냐의 문제였습니다. 컴퓨터가 작아지면서 D램은 크기를 줄이는 동시에 회로는 늘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는데, 이를 위해 회로를 위로 쌓아가는 방식인 스택과 아래로 파고드는 형식인 트렌치로 나뉜 것이지요. 이때 삼성은 스택을 채택했고, 도시바를 위시한 일본 업체들은 트렌치를 사용했습니다.


트렌치는 공정이 복잡한 대신 성능 면에서 뛰어났지만, 스택은 생산하기 쉽고 불량을 확인하기 용이했습니다. 당시 이건희 삼성 회장은 반도체 연구원들로부터 스택과 트렌치의 장단점에 대해 두루 들은 뒤 “더 단순하다”는 이유로 스택을 채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결정이 삼성과 일본 반도체 업체들의 운명을 결정 지었습니다.


세계 최초 64M D램(왼쪽)과 국내 최초 64K D램. / 사진=연합뉴스

세계 최초 64M D램(왼쪽)과 국내 최초 64K D램. / 사진=연합뉴스



스택 공법을 채용한 삼성은 D램을 더 저렴하고 빠르게 생산할 수 있게 됐고, 이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저가 공세를 펼쳤습니다. 이후 삼성의 생산력 때문에 ‘출혈 경쟁’에 휘말린 일본 업체들은 하나 둘 무너지게 됩니다.


◆반도체 치킨 게임의 도래

삼성으로 인해 D램 시장의 룰은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성능과 수명이 아닌 수율과 가격이 시장의 승자를 결정짓게 된 겁니다.


살아남은 D램 업체들은 라이벌 기업의 시장 지분을 몰아내기 위해 최대한 생산량을 늘려 저가공세를 펼쳤고, 이로 인해 이른바 ‘반도체 치킨게임’이 펼쳐지게 됩니다.


치킨게임은 어떤 사안에 대해 대립하는 두 집단이 있을 때, 둘 중 하나가 완전히 망하거나 포기할 때까지 경쟁을 하는 겁니다.


삼성이 개발한 D램. / 사진=한국공학한림원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삼성이 개발한 D램. / 사진=한국공학한림원 [이미지출처=연합뉴스]



D램 제조 기업들은 D램의 가격을 극단적으로 낮춰, D램 1개를 팔 때마다 오히려 회사가 손해를 보는 저가 경쟁을 하게 됩니다. 적자를 감당할 자신이 없는 회사는 결국 D램 시장에서 철수하게 되고, 남은 지분을 승자가 모조리 가져가는 잔인한 게임입니다.


반도체 치킨 게임으로 인해 지난 2009년 독일 D램 반도체 업체 ‘키몬다’가 파산했고, 2012년에는 과거 일본 최대의 D램 기업이었던 엘피다가 5분기 연속 적자를 낸 끝에 쓰러졌습니다.


긴 치킨 게임 끝에, 현재 D램 시장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미국 마이크론 사 등 이른바 ‘빅3’이 장악한 상황입니다. 이 중에서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기준 43.5%의 시장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어 독보적 1위입니다.


◆역사는 반복될까

현재 D램 시장은 빅3 업체들이 나눠 가지고 있지만, 새로운 도전자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최근 중국 IT 기업들은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에 힘입어 직접 반도체 생산에 나섰습니다. 일부 기업은 본격적으로 D램 양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직 메모리 분야에서 한국은 중국 기업들에 비해 5년 이상의 기술 격차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는 중국 기업들이 과거 치킨 게임처럼 출혈 경쟁에 나선다면,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판도가 또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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