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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이쯤되면 집단 '리플리증후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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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난처할까. 명색이 부동산정책의 컨트롤타워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임대차2법의 덫에 갇혀 전셋집에서 밀려난데다 잉여주택 처분을 솔선수범하기 위해 내놓은 집마저 세입자의 변심으로 매도계약이 어그러지게 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아시아경제가 이같은 사실을 지난 14일 단독 보도한 이후 국정감사 자리에서도 이 사실이 거론되며 홍 부총리 본인은 물론 정부도 곤혹스러운 눈치다. 정부의 정책에 반발하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자승자박"이라는 반응이 쏟아진다.

그런데 누구도 이 상황이 마냥 편치많은 않다. 홍 부총리 본인이 집주인이면서 동시에 세입자이듯, 앞으로 일어날 임대차 계약에서 어느 누구에게든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일이어서다.


운이 좋았는지 기자는 20년 가까이 세입자로 살면서 '선한 임대인' 덕을 많이 봤다. 8년 동안 한 집에서 계속 전세를 살기도 했고, 번듯한 대단지 새 아파트에도 임차인 자격으로 5년이나 거주했다. 이 과정에서 무리하게 보증금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요구도 없었다. 적당히 집주인이 부담할 부분은 집주인이, 세입자가 해결할 일은 적당히 처리하며 말 그대로 '좋게 좋게' 지냈다. 굳이 '주택임대차보호법' 규정을 일일이 따져보지 않아도 상식선의 협의가 가능한 전세살이였다.


그런데 느닷없는 임대차2법 시행으로 갑자기 집주인과 세입자는 '법'부터 앞세우는 세상이 되버렸다. 계약갱신은 물론 새로 임대차 계약을 체결할 때마다 '법'을 놓고 머리를 싸매야 할 판이다.

내년 봄 전세계약 2년이 끝나는 지인은 계약갱신청구 '찬스'가 달갑지 않다고 한다. 당장 이사하지 않고 보증금을 5%만 올려주면 2년 더 살 수 있음에도 말이다. 오히려 그는 4년 거주가 끝나는 2023년 봄을 생각하니 막막하다. "두달 사이 전셋값이 1억원 넘게 올랐어. 3년 후에는 얼마까지 올라 있을지 걱정"이라는 그의 한탄은 세입자들이 하나같이 안고 있는 고민이다. 세입자 걱정 덜어주겠다고 만든 임대차2법이 세입자에게 걱정과 불안만 잔뜩 안긴 셈이다.


이제 집주인은 세입자가 두렵다. 4년동안 꼼짝없이 세를 놓아야 하니 면접이라도 봐야 할 판이다. 세입자도 집주인이 편치 않긴 마찬가지다. 무엇을 꼬투리잡아 자신을 내쫓으려 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우려 탓이다. 더이상 시장에는 '선한 임대인'도 '선한 임차인'은 없다.


실상이 이러할진데, 계약갱신청구권으로 세입자의 주거가 안정됐다고 주장하는 정부의 인식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전셋집 구하고 보유 주택 파는 과정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는 홍 부총리 자신조차 정작 임대차2법 시행으로 "임차인의 주거안정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하니 의아할 지경이다.


집주인 실거주를 이유로 계약갱신을 거절당한 세입자는 당장 한두달 사이 작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1억원 이상 오른 보증금 마련하느라, 없는 전셋집 찾느라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가 보다. 만약 보이지 않는다면, 혹 보이는데도 애써 이를 외면하는 것이라면 부동산 정책 당국자들이 '리플리 증후군'을 겪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스스로 만들어낸 세계관,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고 싶어하는 것일까.


화살은 거대한 관료조직으로도 향한다. 윗분들 입맛에 맞춘 정책을 제대로 된 검토조차 없이 뚝딱 만들어내 놓고는 온갖 부작용이 잇따르자 뒷수습하느라 허둥대는 모습이다.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다양한 연구 검토 과정에서 효과 보다는 부작용이 더 많다고 결론 내려졌던 임대차2법이 이렇다할 의견수렴 절차도 없이 하루아침에 시장을 안정시킬 만병통치약으로 둔갑한 과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골경지신.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부동산 정책 컨트롤타워의 목에 생선가시가 걸린듯한 직언을 해줄 사람 하나 없다는 사실이 더 우려스럽다. 혹시 그 거대한 관료조직 전체가 집단적으로 리플리 증후군에 빠진 것일까.






정두환 부국장 겸 건설부동산부장 dhjung6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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