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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프런티어]"위기의 급식사업, 기회로 바꾼 건 엄마의 마음과 정성"

최종수정 2020.09.29 11:20 기사입력 2020.09.2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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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아시아여성리더스포럼 9기 멘토
여성 최초 서울상의 부회장 이름 올린 정기옥 엘에스씨푸드 회장 인터뷰

정기옥 엘에스씨푸드 회장이 2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인터뷰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정기옥 엘에스씨푸드 회장이 2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인터뷰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현실판 '응답하라 1999' 한 편을 본 느낌이다. 때는 바야흐로 1990년대 후반. 초중고교에서 도시락 문화가 사라지고 단체 급식이 보편화하면서 어느 전업주부의 인생이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아들 둘을 둔 '엄마'에서 '최고경영자(CEO)'로. 둘째 아들이 다니던 고등학교 급식위원이었던 엄마는 급식의 낮은 질과 위생이 늘 걱정이었다. 그러던 중 급식 업체가 부도를 맞자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 가족에게 직접 밥을 먹인다는 일념으로 얼떨결에 급식 사업에 뛰어들었다. 창립 21년 만에 30여개 학교와 100여개 관공서·산업체 급식 기업으로 성장한 엘에스씨푸드 창업주 정기옥 회장의 이야기다.


정 회장과의 첫 만남 장소는 대한상공회의소 내 회의실이었다. 그가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을 맡고 있어서다. 서울상의 부회장단에 여성이자 중소기업 경영인이 이름을 올린 것은 정 회장이 최초다. 급식으로만 매출 400억원의 회사를 운영하고 수십만 명의 상공인을 대변하는 비중 있는 자리에 있는 그이지만 인터뷰 내내 "나는 결코 성공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쳤다. 정 회장에게 성공의 의미는 다른 데 있었다.

가정주부에서 급식하는 CEO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타고난 人福

'엄마의 마음과 정성'을 회사 운영의 기본 원칙으로 한 엘에스씨푸드는 순식간에 입소문을 타고 학교 급식계의 샛별로 떠올랐다. 현재까지 위생 사고가 단 한 건도 없었다. 하지만 2006년을 떠올리면 악몽 그 자체다. CJ 식중독 사건으로 학교 급식이 모두 직영으로 바뀌면서 일감이 뚝 끊긴 것이다. 생사기로에 선 정 회장은 구조조정 없이 100% 정규직 채용이라는 역발상 경영으로 가족같이 끈끈한 조직의 기틀을 다졌다. 정 회장은 "기존 거래처가 직영으로 전환하면서 경영난을 겪었지만 급식을 먹으면서 공부하는 학생들 피해가 적었으면 하는 바람에 집기류를 그대로 두고 회사 소속 영양사를 설득해 잔류하도록 했다"면서 "이는 훗날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계기가 됐고 정규직 채용으로 직원들과의 관계도 돈독해져 여기까지 오는 원동력이 됐다"고 회상했다.


대한상의와 연을 맺은 것은 정 회장에게 또 한번의 터닝 포인트였다. 여성 최초 타이틀을 달고 서울상의 노원구상공회 회장을 2연임하고 서울상의 부회장, 대한상의 중소기업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그의 인맥은 폭과 깊이를 더했다.


2018년 초 정 회장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을 씩씩하게 찾아갔다. 대기업이 5조원 규모 급식시장의 80%를 차지하면서 중소기업의 설자리가 위태로운 현실을 털어놓자 정 부회장은 신세계푸드 사업장을 중소기업에 맡기는 말 그대로 '상생 결단'을 내렸다. 입찰 경쟁 공식 절차를 거친 끝에 엘에스씨푸드는 3개 사업장 운영을 따냈고 이마트 직원들에게 호평을 받아 2년여 만에 사업장 개수를 21개로 늘렸다. 정 회장은 "대기업 오너를 만나기 두려웠던 게 사실이지만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과 몸에 밴 겸손, 세심한 배려, 소탈한 인간적 풍모에 큰 감동을 받았다"면서 "위기 때마다 만나는 은인 덕분에 갚아야 할 마음의 빚이 너무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멋진 인연을 만난 것 자체가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인생의 가치"라며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인이나 소상공인을 발 벗고 뛰쳐나가 돕는 것은 개인적으로든 상의 부회장으로서든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창업을 희망하는 후배에게는 "아이템만으로 창업하는 시장은 과부하 상태"라며 "미래에는 사회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마음가짐으로 창업해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가가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워킹맘 정기옥의 삶… "내가 행복해야 주변도 행복해진다"

엘에스씨푸드는 1000여명의 고용 인원 중 여성 비율이 90%에 달하는 여성친화 기업으로 유명하다. 출산 전후 휴가, 난임치료 휴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 일과 가정 양립에 대한 지원도 아낌없다. 흔히 말하는 '경단녀'에게도 취업의 문을 활짝 열어뒀다.


정 회장은 "엄마, 아내, 직장인, 딸, 며느리로 살면서 대한민국 대다수 여성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포기하지 말고 용기를 갖고 자신이 가진 능력과 재능에 10%는 항상 투자하면서 사회에 환원할 길을 찾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내가 행복해야 내 주변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노력하는 삶을 살라는 선배의 당부다. 엘에스씨푸드는 50세 이상 장년 비중 55%, 특히 정년 60세 이후 고용 유지 중인 근로자가 전체의 16%로 고령화 사회 일자리 창출에 적잖이 기여하는 회사로 인정받아 고용노동부로부터 일자리 으뜸기업으로도 선정됐다.


정 회장은 시간이 비는 점심 때마다 사업장을 도는 '암행어사'를 자처한다. 감시 차원이 아니라 더 베풀기 위해서는 고객과의 소통이 필요해서다. "내가 하는 일이 있고 매일 아침 눈을 떠서 갈 수 있는 세상 밖에 내 책상이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그녀의 삶은 임중도원(任重道遠)하다고 지인은 이야기한다. 기업과 사회, 가정의 무거운 책임을 평생 짊어지고 가는 숙명에 그녀 스스로도 공감하는 바다.


정기옥 회장의 인생 멘토는? "봉사·기부 실천하는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내 부족함 일깨워"

정 회장에게는 닮고 싶은 경영인이자 하루하루 인생을 배우는 스승이 있다. 그를 만난 것을 '운명'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각별하다. 그녀의 멘토는 다름 아닌 두산그룹 회장을 지낸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인연의 다리를 놓은 곳은 상의다. 2015년 박 회장은 서울상의 25개구 대표 격인 서울경제위원장을 역임하던 정 회장을 서울상의 부회장으로 전격 발탁했다. 중소기업 경영인으로도, 여성으로도 상의 역사상 최초 사례였다. 높고 두껍기만 하던 금녀(禁女)의 벽을 박 회장의 도움으로 깬 셈이다.


정 회장은 "기업가로서도 존경받는 분이지만 남 모르게 봉사와 기부를 실천하는 모습은 나의 부족함을 일깨워줬다"고 했다. 정 회장이 바쁜 일정을 쪼개 틈 날 때마다 봉사의 손길이 절실한 곳을 찾아나서는 것도 박 회장을 만난 뒤부터다. 상의 본사 인근에 있는 택배기사에게 식권을 무료로 제공하라는 박 회장의 지시로, 2017년 겨울부터는 엘에스씨푸드가 운영하는 구내식당에서 따뜻한 식사 한 끼를 매일 대접하고 있다.


박 회장의 유명한 경영 철학인 '따뜻한 성과주의'는 큰 울림을 줬다. 박 회장이 중시하는 사람과 소통하는 경영을 늘 가슴에 두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그녀다. 정 회장은 "리더는 차가운 평가의 눈이 아니라 따뜻한 육성의 눈으로 구성원을 바라봐야 한다면서 사람을 강조하는 박 회장의 정신과 기업 문화를 닮고 싶다"고 전했다. 사람에 의해 기업이 성장하고 다시 기업이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박 회장의 경영론은 정 회장의 마음을 늘 다잡는다. 지난 20년 동안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운동을 하기 전 감사 기도를 하는 정 회장은 박 회장과 천주교 신자로서도 깊이 통하는 멘토와 멘티 사이다.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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