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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 치킨배달 가장의 참변, 여전히 법은 음주에 관대

최종수정 2020.09.24 11:26 기사입력 2020.09.24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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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새벽 인천 중구 을왕동 한 편도 2차로에서 A(33·여)씨가 술에 취해 몰던 벤츠 차량에 오토바이를 타고 치킨 배달 중이던 B(54·남)씨가 치여 숨졌다. 2020.9.11 [연합뉴스=인천 영종소방서 제공]

지난 9일 새벽 인천 중구 을왕동 한 편도 2차로에서 A(33·여)씨가 술에 취해 몰던 벤츠 차량에 오토바이를 타고 치킨 배달 중이던 B(54·남)씨가 치여 숨졌다. 2020.9.11 [연합뉴스=인천 영종소방서 제공]



[아시아경제 박혜숙 기자] "아버지는 일평생 단 한번도 열심히 안 사신 적이 없다. 알바생을 쓸 수 있었지만 본인 가게니까 책임감때문에 직접 배달일을 하셨다". 치킨배달을 가다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목숨을 잃은 아버지를 딸은 이렇게 기억했다. 주문이 많아 저녁식사도 못 한 채, 자정 넘어 마지막 배달을 다녀오겠다던 아버지는 평생을 성실하게 사신 보람도 없이 허무하게 세상과 이별했다. 딸은 "7남매 중 막내인 아버지가 죽었고, 제 가족은 한순간에 파탄났다"며 "살인자가 법을 악용해 빠져나가지 않기를 국민들이 지켜봐달라"고 호소했다.


지난 9일 새벽 인천 을왕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던 50대 가장이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가던 길에 역주행하던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숨졌다. 가해 운전자인 30대 여성은 음주운전을 하다가 사망사고를 내면 처벌을 강화하는 이른바 '윤창호법'이 적용돼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치사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동승자인 40대 남성도 음주운전 방조와 함께 이례적으로 '위험운전치사 방조' 혐의가 적용돼 불구속 입건됐다. 음주운전 방조죄의 경우 통상 벌금형이 나오지만 윤창호법인 특가법상 위험운전치사 방조죄까지 적용되면 징역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있다. 음주운전 사망사건에 대해 경찰도 엄중 수사 의지를 보인 것이다.


피해자 딸은 지난 1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음주운전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글을 올렸고, 24일 현재 61만 4000명 이상이 동의를 할 정도로 가해자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거세다. 하지만 국민의 법 감정이 그대로 재판결과로 이어질 것인지에 대해선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올해 4월 서울 금천구에서 횡당보도를 건너던 남성을 치어 숨지게 한 음주운전자는 과거 두차례 음주운전으로 집행유예를 받은 전력이 있었지만, 최근 검찰이 구형한 징역 12년에서 훨씬 못 미치는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반성하고 있고, 고령에다 척추 장애가 있다는 점이 고려됐다. 인천 서구에서 올해 6월 발생한 보행자 사망사고는 음주운전자가 뺑소니까지 저질렀지만 징역 3년의 판결이 나왔다. 야간에 도로 중앙분리대를 따라 보행한 피해자의 과실을 감안하더라도 윤창호법이 적용된 사건에 대해 가벼운 형량이 아닐 수 없다.

2018년 12월 시행된 윤창호법은 사망사고를 낸 운전자에 대해 3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과거 '1년 이상의 징역'에서 형량이 크게 강화됐지만 실제로 중형을 판결받는 경우는 드물다. 윤창호법을 만들 당시 국회 법사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음주운전과 관련해 중형을 선고해달라고 사법부에 주문했다지만, 지금의 법원 판결은 '특별한 사정'이 국민의 법감정과 피해자의 울분보다 더 우선해서, 자주 고려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적할 수 밖에 없다.


'음주운전은 실수다, 사람을 죽일 의도나 고의성은 없었다'는 사회적 인식도 여전하다.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 그 가족을 하루 아침에 파탄내는 행위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 아니라고 누가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인가. 음주운전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대함이 마약이나 도박처럼 습관성을 키우고, 이들 범죄보다 더한 자신과 타인의 삶의 파괴를 야기한다는 경각심이 둔화돼있다.


음주 운전자 A씨(가운데)가 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 중부경찰서를 나오고 있다. 2020.9.14 [사진=연합뉴스]

음주 운전자 A씨(가운데)가 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 중부경찰서를 나오고 있다. 2020.9.14 [사진=연합뉴스]



25일은 고(故) 윤창호씨가 만취운전 차량에 의해 사고를 당한 날이다. 윤씨는 사고 직후 뇌사상태에 빠져 40일 넘게 투병하다 끝내 숨을 거뒀다. 그는 비록 안타깝게 삶을 마감했지만 전 국민적 지지속에서 '윤창호법'은 만들어졌고, 지금 또다시 관련입법을 강화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음주운전을 방조한 동승자도 강력히 처벌하고, 사망 또는 중상해를 낸 상습 음주운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


을왕리 음주사고의 가해자가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언론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네티즌들은 분노했다. 패팅점퍼를 입고도 담요로 온몸을 감싸고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꽁꽁 숨긴 가해자의 모습에서 일종의 허탈감 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당시 취재현장에 있었던 기자들 사이에서도 '이렇게까지 가해자를 보호해야 하냐'는 웅성거림이 있었다.


음주운전자의 신상공개가 입법과정에서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피해자와 그 가족의 고통보다 더 우선해 가해자의 인권을 말해서는 곤란하다.




박혜숙 기자 hsp066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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