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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 착해야 살아남는 코로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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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에서 2단계로 하향 조정된 14일 서울 명동에서 직장인들이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에서 2단계로 하향 조정된 14일 서울 명동에서 직장인들이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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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착하다(善)'는 표현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종합 찬사다. 영어의 굿(good), 나이스(nice)와는 결이 다르게 표준 이상으로 바르고, 상냥하고, 친철하게 베푸는 듯한 모양새가 있다. 일면 타고나는 것이기 때문에 웬만한 일 앞에서는 잃지 않을 성정이자 손해를 입더라도 염화미소로 웃어 넘기는 아우라다. 반면 그 정도를 측정하거나 표준화하기는 어려워 손에 꽉 잡히지는 않는 상대평가 지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모든 사회ㆍ경제 화두를 집어삼킨 요즘, 이 종잡을 수 없으면서도 강력한 형용사를 떠올렸다. 아무래도 코로나19 시대를 사는 최고의 덕목은 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특히 정부가 최근 내놓은 다양한 정책의 덕을 보거나 불만 없이 수용하기 위해서는 본인 또는 주변인이 이 덕목을 탑재하고 있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 탓에 관광객이 끊기고 길거리를 다니는 유동인구가 줄자 소상공인은 생계를 위협받기 시작했다. 매출이 제대로 발생하지 않을 경우 소상공인에게 가장 타격이 되는 것은 고정비, 그중에서도 임대료다. 하지만 그에게 착한 임대인만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 정부 정책에 따라 낮춰준 임대료 인하분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을 받게 되더라도 임대인은 사실상 손해이지만, 그에게는 착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괜찮다. 임대인이 부모에게 물려받은 건물로 젊어서부터 편하게 살고있는 금수저인지, 빚을 내 상가 하나를 매입해 괜찮은 노후를 꿈꾸는 환갑의 은퇴자인지는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가 착하냐 아니냐다. 게다가 지난달 코로나19가 재확산하자 정부는 착한 임대인 대상의 50% 세액공제를 연말까지 연장하기로 발 빠르게 결정했다. 참고로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2018년 기준)은 25.1%인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7위로, 미국의 4배 수준이며 일본의 2배 이상이다. 이 치열한 경쟁에서 폐업하지 않기 위해서는 옆 가게보다 맛있는 음식과 좋은 서비스, 낮은 가격, 그리고 착한 임대인과의 계약이 필수요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정부는 얼마 전 사태의 조기해결을 위해 일정기간 일부 점포의 폐쇄나 영업제한을 강제했다. 사업주에게 선택권은 없고, 어길 경우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고발당하는 조치였다. 미증유의 상황이었음을 감안해 정부는 4차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 이들 소상공인에게 100만~200만원 수준의 지원금을 주기로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조치로 아예 문을 닫았다면(집합금지업종) 200만원을, 영업에 제한을 받았다면(집합제한업종) 150만원을, 연매출 4억원 이하의 영세 소상공인이면 1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그 외 조건은 단 하나인데, 업종이 사회 통념상 '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댄스홀이나 콜라텍처럼 무도장이 있다거나 접객원이 있는 유흥주점 등은 안 된다. 세금을 걷어가고 식품위생법에서 그 기준을 명시해 인정하는 합법 업종이지만 향락적인 업장에 세금 지원은 좀 그렇지 않으냐는 판단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착한 식당', '착한 가격'이라는 오래된 표현이 있다. 언뜻 값이 매우 싸고 맛도 괜찮은 음식을 파는 식당에 보내는 손님들의 박수다. 하지만 그렇게 불리는 곳의 가격구조는 대부분 비슷하다. 나홀로 사장님이나 그의 가족이 재료를 직접 재배하고 자신의 인건비를 갈아 넣어 원가를 떨어뜨리는 곳들이다. 이를 착하다 이름 붙인 쪽의 의도는 너무도 선명하다. 주인의 노고나 시장평균가격은 상관없이, 일단은 내게 재화와 서비스를 지금처럼 값 싸게 제공해달라는 암시인 셈이다. 모든 형용사를 걷어내고 보면 사악하기 그지없는 요구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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