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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두 달 걸려도 공장 돌려야죠"…섬진강 둑 무너진 날 물에 잠긴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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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터까지 파고든 수마에 참담…그래도 복구 해야죠”
‘물폭탄’ 맞은 구례, 공장·시장 등 복구 작업 계속

8일 500mm 넘게 쏟아진 물폭탄에 물에 잠겼다가 10일 모습을 드러낸  구례군 마산면 소재 동방산업 레미콘 공장의 모습. 사진 = 동방산업 제공

8일 500mm 넘게 쏟아진 물폭탄에 물에 잠겼다가 10일 모습을 드러낸 구례군 마산면 소재 동방산업 레미콘 공장의 모습. 사진 = 동방산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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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지붕까지 물이 차올랐지요. 다 잠겼어요."

물이 빠져 모습을 드러낸 사일로(레미콘 생산·저장시설)를 망연자실 바라보던 김성대(57) 동방산업 대표는 미처 말을 잇지 못했다.


전남 구례군 마산면 지리산 남동쪽 자락 끝 섬진강 상류에서 15년째 레미콘공장을 운영하는 김 대표는 지난 8일 새벽 갑작스럽게 밀려든 강물에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다. 이 지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던 지난 토요일 아침 섬진강 제방이 무너졌다. 공장과 사무실은 30분 만에 물에 잠겼다. 발목에서 찰랑이던 빗물은 강물과 섞여 눈 깜짝할 사이 사무실 천장 높이까지 차올랐다. 생명을 위협하는 순간이었다. 몸만 간신히 빠져나왔다. 대피해 있던 김 대표와 직원들은 공장이 잠기는 모습을 바라봐야만 했다. 공장에 세워져 있던 레미콘 차량 9대와 페이로더(모래를 퍼 나르는 차) 모두 물에 잠겼다. 변전실과 기계장치도 못쓰게 됐다. 10일 오전까지 양수기를 돌려 간신히 물을 빼냈다.

이제부터가 다시 시작이다. 김 대표는 공장 재가동까지 한 달은 넘게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두 달이 걸려도 공장은 돌아가야지요. 저와 직원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동방산업은 광주와 남원, 순천 광양, 하동 등 인근 건설현장에 레미콘을 공급하는 중소기업이다. 인근지역인 전남 곡성에 있는 레미콘공장도 마찬가지로 수해피해를 입은 상황이다.


복구 작업에 사용 중인 중장비와 양수기를 빌려달라는 군청의 지원요청이 왔다. 누구를 도울 처지는 아니지만 더 힘든 지역민을 위해 흔쾌히 장비를 보냈다. 건설경기 악화로 작년에도 힘들었던 동방산업은 올 상반기에는 코로나19 때문에 공장을 돌리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았다. 거기에 홍수까지. 무심한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에도 김 대표는 공장 안 물과 진흙을 퍼내며 말했다. "코로나19로 힘든 와중에 이번 장마는 직격탄이었습니다만 다시 일어나야지요. 사람이 하는 일, 뭔들 못하겠습니까."


수마는 구례 오일시장의 267개 점포를 순식간에 휩쓸고 지나갔다. 10일 복구 작업으로 상인들이 꺼내놓은 물건이 쌓여있는 모습. 사진 = 독자 제공

수마는 구례 오일시장의 267개 점포를 순식간에 휩쓸고 지나갔다. 10일 복구 작업으로 상인들이 꺼내놓은 물건이 쌓여있는 모습. 사진 =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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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진흙이 널브러진 구례 오일시장 입구. 물에 잠긴 점포에서 꺼낸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주단 가게를 운영한 이을재(73) 상인회장은 젖은 베와 비단을 바닥에 놓고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말로 표현을 못 허제. 우리 맞은편 쌀가게도 폭삭 주저앉고, 생선가게도 주저앉고 너나 할 거 없이 시장이 통째로 주저 앉았당께"

시장 267개 점포는 지난 8일 오전 제방이 무너지고 읍내로 밀려든 강물에 순식간에 모두 잠겨버렸다. 물건을 챙길 새도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 목만큼 차오른 물에 천이며 생선이며 가판의 물건이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가게 안채에서 생활하던 이씨는 아내와 물살을 헤치며 가까스로 시장을 빠져나왔다.


자원봉사자들이 분주히 복구작업을 돕고 있지만, 수도와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젖은 물건을 빼내기도 쉽지 않다. 퍼내도 퍼내도 빠지지 않는 흙더미와 물건을 치우는 상인들은 이따금 멍하니 하늘만 바라봤다. 코로나19에 길어진 장마까지, 손님 발길이 끊어진 시장을 덮친 수마에 상인들은 망연자실해 했다.


"광주서 군 병력이 오고 있다 하니 그것만 기다리고 있제. 근디 또 비가 온다네." 마을회관으로 대피한 지 이틀째, 집과 가게를 잃은 이씨는 그래도 가족이 많은 자신은 다행이라고 했다. "자식 없이 혼자 장사하는 양반들은 수습이 막막할 것이여. 그래도 다 도와서 얼른 복구 해야제." 이씨는 바쁜 손길로 젖은 물건을 쌓아올렸다.


쏟아진 집중호우에 물에 잠긴 구례읍 전경. 구례군은 이번 수해에 따른 피해액을 최소 568억원으로 집계했다. 사진 = 독자제공

쏟아진 집중호우에 물에 잠긴 구례읍 전경. 구례군은 이번 수해에 따른 피해액을 최소 568억원으로 집계했다. 사진 = 독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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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ㆍ전남 등 남부지역은 지난 주말까지 500mm 안팎의 '물폭탄'을 맞았다. 섬진강 제방 붕괴 등의 영향으로 전북 남원과 전남 담양ㆍ구례, 경남 산청 등에서 2000여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남부지역을 덮친 물폭탄은 10~11일 다시 중부지방과 수도권을 덮쳤다.


이번 집중호우로 피해가 큰 전남북지역 주민들은 정부가 신속히 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 피해복구에 도움을 주길 바라고 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경기 안성과 강원 철원 등 7개 시ㆍ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한 바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3일 재난상황실을 설치하고 집중호우 피해 복구 지원에 나서고 있다. 재난상황실은 각 지역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유관기관과 협력해 시설 피해복구 지원, 피해 업체에 대한 정책자금 지원 제도 안내 등을 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은 현장 긴급지원 전문가 앰뷸런스맨과 패스트트랙 제도 등을 통해 피해복구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강성천 중기부 차관은 "계속되는 집중호우로 피해가 큰 지역이 추가로 발생한 만큼 이 지역들을 포함한 추가지원 대책을 마련해 조속히 정상화를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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