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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17일간 제주 '지하궁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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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과 바람, 시간이 빚은 곳
韓 유일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거문오름'
8000년 신비, 내달 4일부터 20일까지 일부 개방

만장굴

만장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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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이 쉬어간다는 제주 오름. 거문오름(천연기념물 제444호)이 증명한다. 제주 오름 368곳 가운데 숲이 가장 울창하다. 그 속에서 삼나무ㆍ편백나무ㆍ붓순나무ㆍ소나무 등은 바람과 구름을 벗삼아 춤춘다. 1만년 전 두 나그네는 지금의 거문오름을 만들었다. 기생화산 활동으로 발생한 용암을 식히고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생성된 돌과 흙은 유난히 검다. 거문오름이라 불릴 정도. 땅속도 다르지 않다. 곳곳의 빈 공간이 어둠에 뒤덮여 있다. 벵뒤굴, 웃산전굴, 대림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라고 통칭한다. 처음 형성됐을 당시 한 줄기로 연결돼 있었다. 거문오름에서 분출된 현무암질 용암류가 북동쪽 지표면 경사를 따라 해안으로 흘러가면서 조성됐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다. 빼어난 경관 가치와 독특한 지질학적 환경을 인정받았다. 그런데 만장굴 일부 구간만 공개됐을 뿐 진면목은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용암동굴이 지닌 가치는 물론 보존에 대한 인식조차 빈약한 실정이다.


김녕굴

김녕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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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과 제주도는 다음달 4일부터 20일까지 하는 세계유산축전에서 거문오름과 용암동굴계 일부 구간을 공개한다. 용암의 흐름 따라 세 트래킹 코스를 조성한다. 특별 탐험대도 모집해 주요 동굴을 탐험한다.


김태욱 세계유산축전 총감독은 "화산, 바람, 구름이 빚은 생명과 역사야말로 제주 세계자연유산의 핵심"이라며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체감하며 정체성 확보에 나서고자 한다"고 말했다.

하늘에서 본 거문오름 전경[사진=제주세계유산센터 제공]

하늘에서 본 거문오름 전경[사진=제주세계유산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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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장본인은 숙종 38년(1712) 제주 판관으로 부임한 남구명(1661~1719). 산 넘고 물 건너 산천, 형승, 기후, 풍토 등을 기록했다. 4대손 남홍양이 시가 등과 묶어 '우암문집(寓庵文集)'으로 간행했다. 다음은 김녕굴 탐사 기록이다.


"굴은 평지에 있는데, 입을 크게 벌린 모양이 마치 도자기 가마 아궁이 같았다. 여럿이 횃불을 들고 속으로 들어가니, 높이가 수십 길이 되고, 크기는 누각을 들일 만했다. 열 걸음쯤 가니 서쪽으로 난 굴이 문처럼 좁았는데, 떨려서 더 나갈 수 없었다. 마을 사람에게 물으니, '그 안으로 들어가면 넓고 크기가 바깥 굴의 배가 되고, 그 깊이는 땅 밑바닥까지 뚫렸는지 종일을 걸어도 그 끝을 알 수 없습니다. 북쪽으로 뚫린 굴은 바다에 닿는데 조개껍데기와 자라ㆍ물고기의 뼈가 높다랗게 쌓여 무더기를 이루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당처물동굴

당처물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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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 년 전 바다였을 수 있다. 인근 당처물굴과 용천굴은 종유석, 석순 등 스펠레오뎀(speleothemㆍ동굴 형성 후 동굴 속에 생긴 결정질 침전물) 용암동굴의 신비를 간직하기도 한다. 조개껍데기가 주성분인 모래에 빗물이 스며들어 화려한 지하궁전을 연출했다.


전형적인 용암동굴인 만장굴과 대림굴은 전혀 다른 지하 세계를 보여준다. 미처 식지 않은 용암이 천장이나 벽면에 흘러내리면서 다양한 생성물을 남겼다. 용암선반, 용암유석, 용암종유, 용암석순 등등. 이번에 공개되는 만장굴 1.2㎞ 구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그마가 닦은 길은 지하 1층과 2층 두 갈래다. 입구는 하나같이 낙반으로 가득하다. 뾰족한 암석 지대를 통과하면 긴 용암선반이 나온다. 벽면을 흐르던 용암이 긴 널빤지처럼 굳어 만들어졌다. 탐험에서 무난한 통로가 돼 준다. 따라 들어가면 바닥을 가득 메운 승상용암이 눈에 들어온다. 용암이 천천히 흐르면서 줄이 여러 겹으로 겹쳐진 것처럼 굳어졌다. 표면에 은백색 광택이 감돌아 경탄을 자아낸다.


만장굴

만장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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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구간에서는 용암유석도 만날 수 있다. 용암이 벽면을 따라 흘러내리다 굳어서 생긴 덩어리다. 표면이 매끄러워 물이 흘러내리는 듯한 착각을 준다. 천장에는 용암종유가 고드름처럼 달려 있다. 석회동굴 종유석보다 짧고 넓적한 모양이 화살촉을 닮았다. 뾰족한 암석 틈새에는 가늘고 긴 뿌리가 내려와 있다. 지상에 있는 나무의 것이다. 돌 틈을 파고들 만큼 생명력이 넘친다.


태초의 인간도 동굴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 이곳에서는 흔한 현무암을 떼어내어 찍개, 긁개, 돌칼, 톱날 같은 도구로 만들었을 것이다. 바깥으로 터전을 옮기면서 동굴은 궤(위로 큰 바위나 절벽 따위로 가려져 있고 땅속으로 깊숙이 파여 들어간 굴)와 함께 신이 깃드는 당(堂)으로 여겨졌다. 주로 토착신앙 속 여신들의 자궁을 상징했다.


주민들은 전쟁이나 환란이 닥칠 때마다 동굴로부터 보호받았다. 특히 제주 4ㆍ3 사건 때는 중산간 지대로 피신한 이들에게 피난처가 됐다. 아픔의 흔적은 온데간데없다. 세월이 흐르면서 희미해졌다.


용천동굴

용천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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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도 어렵다. 용암동굴은 지하수의 용식작용으로 계속 성장하는 석회동굴과 달리 줄곧 붕괴과정을 밟는다. 한 번 훼손되면 복원이 불가능하다. 만장굴의 경우 낙반 지대만 스물세 곳에 이른다. 지하수 유입과 파쇄작용으로 천장 암반이 불안해 낙반은 계속될 듯하다.


주기적인 모니터링만으로는 부족하다. 후손에게 온전히 물려주려는 미래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번 탐사의 콘셉트는 숨결이다. 물과 시간이 빚은 신비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데 한정하지 않는다. 환경과 역사의 변화가 담긴 대지의 명멸한 숨결을 함께 파악한다. 기억하고 보존하는 마음으로….




제주=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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