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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두려워서, 미안해서" … 시청 직원들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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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두려워서, 미안해서" … 시청 직원들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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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서울시가 방조했다', '조직적 은폐가 있었다' 같은 말이 나오면서 말단 직원인 저조차 죄인인양 주눅이 들더라고요."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 이후 시청 고위 간부부터 직원들까지 일제히 입을 닫았다. 박 전 시장의 측근이나 책임자급 공무원들이 "나는 몰랐던 일이다"며 침묵하는 것과는 달리, 일반 직원들은 뒤숭숭하고 혼란한 상황 속에서 답답한 심정을 숨기며 3주째 말을 아끼고 있다.

본청에 근무하는 한 주무관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직후 상부에서 2차가해가 발생하면 당사자 뿐 아니라 부서장까지 엄중하게 징계한다는 경고가 나온터라 이후 사석에서조차 찌라시나 인터넷에 올라온 내용을 거론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내부 문책도 두렵지만, 같은 직원으로서 피해자가 받고 있을 고통을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더 조심들 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또 다른 직원은 "이번에 '6층 사람들(정무라인)'의 세계가 철저히 폐쇄적인 성역이었다는 게 드러나지 않았느냐"며 "그 정도는 아니지만, 대부분 평생을 동료로 지내야 하는 공무원 사회의 특성상 성추행 피해를 당했을 때조차 문제를 제기하기 쉽지 않은 건 사실"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과 관련해 "침묵을 강요받은 적은 없지만 침묵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있다"고도 했다.


외부에서 서울시청 전체를 '문제집단'으로 여기는 따가운 시선이 두렵지만 화를 낼 수도, 변명을 할 수도 없는 처지다. 시 산하기관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아내나 부모님마저 회사에서 괜한 오해살 처신은 하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하니 착잡하다"며 "지인들의 안부 전화나 메시지에도 회사 이야기가 나오면 딱히 뭐라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시장 궐위와 성추행 의혹이라는 사상 초유의 상황에서 서울시는 처음엔 경찰의 수사 결과를, 나중엔 여성가족부의 현장점검 결과를, 이제는 국가인권위인권위원회의 직권조사를 기다리고 있다. 합동조사단을 꾸리려 했으나 여성단체가 참여를 거부해 무산됐다는 해명도 냈다.


하지만 제기된 의혹과 관련해 내부에서조차 아무런 설명도 없이 외부기관의 조사·수사 결과만 기다리겠다는 태도가 과연 진상 규명에 도움이 될지, 진정 피해자를 위한 일인지 묻고 싶다. 이미 직원들 중엔 제대로 된 진상 조사나 처벌이 이뤄지지 못한 채 시간만 흐르다 또다시 실효성 없는 대책들만 남게 될까 염려하는 이도 있다. 시장 권한대행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은 '공직자의 책무'를 강조하며 각자의 역할과 업무에 충실하자고 직원들을 독려하고 있지만, 직원조차 안전하지 못한 서울시청이 과연 1000만 시민의 안전과 미래를 위한 시정을 해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시청으로 자리를 옮겨온지 4년째라는 한 직원은 "조직의 한 사람으로서 '침묵도 2차가해'라는 말을 곱씹을수록 마음이 괴롭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부디 제대로 된 조사로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시청 뿐 아니라 우리사회 전체에 강력한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책이 마련되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피해자를 위해서도, 또다른 피해자가 될까 두려운 다른 구성원들을 위해서도 서울시 스스로의 노력과 개선안이 신속히 나와줘야 한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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