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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한국판 Tea Party' 안 나오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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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3년 12월16일 밤 미국 보스턴 항구에 아메리카 원주민 복장을 한 미국 식민지 주민 100여명이 나타났다. 손에는 도끼를 들었고, 얼굴에는 석탄 가루를 바르고 있었다. 이들은 차(茶)가 가득 실린 동인도회사 소유의 무역선에 올라타 선장과 선원을 협박하고 화물칸에 쌓여 있던 차 상자들을 모두 바다에 내던졌다. 당시 영국은 미국 식민지 상인에 의한 차 밀무역을 금지하고 동인도회사에 무역 독점권을 부여하는 관세법을 제정했다. 이에 격분한 보스턴 시민들이 일으킨 사건이었다.


이른바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을 계기로 미국 지식인들 사이에는 영국으로부터 독자적인 조세권을 가져야 한다는 의식이 싹텄고 이는 1775년 미국 독립전쟁으로 이어졌다. 보스턴 차 사건은 현재까지도 명맥이 이어져 보수 성향의 극우 단체 '조세저항운동(Tea Partyㆍ티파티)'으로 남아 있다. 티파티는 2009년 초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가 7800억달러를 투입하는 경기 부양책을 발표하자 국가 부채 급증에 반발하는 시민운동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조세저항운동은 며칠 전 국내에도 등장했다. 지난 13일 오후 한때 네이버 급상승 검색어 1위에 '조세저항 국민운동'이 오른 것이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반발하는 네티즌들이 포털 사이트에 이 문구를 반복적으로 입력해 급상승 검색어 1위를 만들었다. 최근 정부가 부동산 세제에 초점을 맞춘 6ㆍ17 대책 및 7ㆍ10 대책을 잇달아 내놓자 이에 불만을 품은 네티즌들이 조직적으로 나선 것이다. 이 밖에 최근 '김현미 장관 거짓말' '헌법13조2항' '6ㆍ17위헌 서민피눈물' '문재인 지지철회' '소급위헌 적폐정부' '국토부 감사청구'가 실시간 검색어 상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6ㆍ17 대책에도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자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0일 보완 대책을 발표했다. 한 달도 안 돼 추가 대책을 내놓은 것으로 세제 강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정부와 여당은 부동산 폭등의 주원인을 다주택자와 단기 매매자로 보고 이들에 대해 강도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3주택 이상과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에 대해서는 종합부동산세 최고 세율을 6.0%로 확대했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세율도 종전보다 30%포인트 상향해 72%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1년 미만 보유 단기 매매의 경우 양도소득세율을 70%까지 물리는 방안도 포함했다. 취득세도 2주택에는 8%, 3주택 이상에는 12%까지 부과했다.

취득부터 보유, 매매에까지 주택과 관련한 모든 세금을 높이면서 퇴로를 막아놨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부동산을 핑계로 사실상 증세를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토끼몰이 규제' '망치증세' '두더지 잡기 증세'라는 얘기도 나온다.


정부와 여당은 다주택자를 겨냥한 것으로 1주택자는 이번 대책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정부 대책을 뜯어보면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을 올리면서 자연스럽게 1주택자의 세 부담도 함께 증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획재정부가 예를 든 사례만 보더라도 올해 서울 공시가격 31억원짜리 아파트 1채를 보유한 A씨(3년 보유 가정)의 경우 내년 공시가격이 40억원으로 올라갈 경우 올해 내지 않아도 됐던 종부세 1048만원을 내야 한다.


"집값이 올랐으니 그 정도 세 부담은 당연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은퇴해 소득이 없는 노년층에게 세금 1000만원은 형벌이나 다름없다. 최근 2~3년간 공시지가가 크게 오르면서 고가 아파트뿐 아니라 중저가 아파트를 보유한 중산층 역시 이번 대책으로 세 부담 증가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더욱 큰 문제는 정부의 세금 폭탄에도 부동산시장이 안정되지 않을 경우 국민의 불만이 폭발할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판 티파티 운동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정부ㆍ여당은 공급 대책 없이 세제만으로는 집값을 잡을 수 없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귀담아 듣기 바란다.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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