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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가을귀]이제는 스토리를 풀어야 먹힌다

최종수정 2020.05.22 13:57 기사입력 2020.05.22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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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맥키와 토머스 제라스 '스토리노믹스'

[이종길의 가을귀]이제는 스토리를 풀어야 먹힌다


광고ㆍ마케팅 시장은 빠르게 변한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제작업체 어도비가 2015년 마케터들에게 물어본 결과 응답자의 76%는 마케팅 분야에서 지난 2년간의 변화가 TV 등장 이래 수십 년 동안의 변화보다 크다고 답했다. 소비자는 광고에 갇힌 미디어를 배제하기 시작했다. 특히 젊은 세대는 유료 구독과 광고 차단 프로그램의 숲으로 자취를 감췄다. 이런 경향은 매체 선호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지난 5년 사이 넷플릭스 같은 무광고 온라인 콘텐츠 서비스 이용자는 급증했다. 반면 40세 이하의 TV 시청률은 큰 폭으로 하락했다.


로버트 맥키와 토머스 제라스의 '스토리노믹스'는 광고 중심 마케팅 시대가 끝났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관심을 자연스럽게 붙잡고 유의미한 정서적 경험도 선사하는 '스토리 중심 마케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스토리는 인간 정신에 가장 부합하고, 한 사람의 생각을 다른 사람의 생각과 잘 이어주는 소통양식이다. 이성적 메시지의 명료함을 감정의 포장 안에 잘 감싸 강력하게 전달한다. 우리가 그 속의 인물들과 공감하므로 정서적인 성격도 있다. 주인공의 행동이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전하고 있어 유의미하다.

평생 스토리를 보고 들었으니 하나쯤 만들어내기가 쉬위리라 짐작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는 연주회에 다녀봤으니 작곡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나 다름없다. 잠자리에서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나 술자리에서 주거니 받거니 푸는 '썰'도 물론 스토리다. 그러나 단순히 즐겁게 해주려고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어떤 스토리는 인간의 시선까지 바꾼다. 수십억 인구가 따르는 문명이나 종교를 일으키기도 한다. 미국 작가 해리엇 비처 스토(1811~1896)의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정치 운동을 촉발해 전쟁의 불씨가 됐다. '올 인 더 패밀리(1971)', '윌 앤 그레이스(1998)' 같은 TV 시리즈물은 편견의 공론화로 성적소수자(LGBT) 평등에 이르는 길을 닦았다. '스토리노믹스'는 이런 효과에 주목하며 스토리를 '궁극의 정보통신(IT)'이라고 정의한다.


"스토리텔링에는 인간의 본성, 그리고 인간이 사회적, 물리적 영역과 맺는 관계에 대한 깊고 폭넓은 지식으로서 정보가 필요하다. 그리고 잘 짜여진 스토리는 내부의 기술, 즉 행동/반응의 구조, 가치값의 전환, 역할, 갈등, 전환점, 정서적 역동성 등을 능숙하게 수행해야 한다. 기술이 예술의 버팀목이다."


많은 이가 스토리를 내러티브로 착각한다. 내러티브란 정해진 시공간에서 인과관계로 이어지는 허구 또는 실제 사건들의 연속을 뜻한다. 어딘가 학문적이거나 과학적인 말처럼 들리지만 비즈니스 맥락에서 보면 비논리적이고 부정확한 용어다. 모든 스토리는 내러티브가 맞다. 하지만 모든 내러티브가 스토리는 아니다. 내러티브는 밋밋하고 단조롭고 지루하고 반복적인 사건의 열거가 되기 십상이다. 아무 긴장감 없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는 사건들이라서 변변한 영향력조차 행사하기 힘들다.

이와 달리 스토리는 가치를 에너지 삼아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삶에 유의미한 변화를 야기하는 갈등 중심 사건들이 역동적으로 상승한다. '스토리믹스'는 그 기법이 무르익으면 스토리텔링에 쓰이는 자본금의 규모와 출처 또한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일 거라고 예견한다.


"스토리텔러들은 광고 위주 모델의 종말에 박차를 가하는 동시에 증강현실, 가상현실, 게임 같은 급진적 미디어의 혁신을 북돋을 것이다. 그러면 다시 이런 혁신적인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얻어, 우리가 아직 상상하지 못하지만, 스토리화된 지식과 엔터테인먼트를 더 여러 사람이, 더 많이, 더 오래 소비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이 등장할 것이다. 브랜드 스토리텔링이 제대로만 된다면 견실한 비즈니스 성과에 동력이 될 뿐 아니라, 마케터들에게 이제껏 상상하지 못한 기회의 문이 열릴 것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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