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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악마를 만든 사회①] 과거에도 현재도, 언제나 ‘박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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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넷'에서 'n번방'까지 형태만 바뀐 디지털 성범죄
솜방망이 처벌과 사후약방문 대처가 부른 비극
전문가들 "범죄예방, 범행의지 위축에 초점 맞춰야"

[n번방, 악마를 만든 사회①] 과거에도 현재도, 언제나 ‘박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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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성필 기자, 송승윤 기자] 이른바 ‘n번방 사건’으로 불리는 일련의 디지털 성범죄 사건들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벌어진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늘 호시탐탐 여성을 노리는 ‘박사’들이 곳곳에 존재해왔다. 최근 경찰에 덜미가 잡힌 조주빈(24)의 범행도 이전에 있었던 여타 범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무대와 배경만 바뀌었을 뿐이다.


◆시초는 소라의 가이드=디지털성범죄의 역사는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개설된 ‘소라의 가이드(Sora‘s Guide)’라는 이름의 불법 음란물 유통 사이트가 시초 격이다. 이후 '소라넷'으로 이름을 바꾼 이 사이트는 한때 회원이 100만명을 넘기는 등 국내 최대 규모로 몸집을 불렸다. 이 사이트에도 각종 불법촬영물과 아동·청소년 음란물 등이 수시로 올라왔다.

이 사이트 운영자는 전 세계로 서버를 옮기면서 수사당국의 추적을 피해왔지만 결국 2016년 경찰에 덜미를 잡혀 폐쇄됐다. 경찰은 2018년 이 사이트의 공동운영자 송모씨도 검거했다. 송씨는 아동·청소년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및 음란물 유포 방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그가 13년 넘게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비롯한 불법촬영물로 수백억 원대로 추정되는 부당이익을 거둬들인 대가는 고작 징역 4년이었다.

28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에서 열린 '웹하드 특별수사 촉구 기자회견'에 참가한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를 비롯한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디지털성범죄 산업에 대한 특별수사를 촉구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28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에서 열린 '웹하드 특별수사 촉구 기자회견'에 참가한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를 비롯한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디지털성범죄 산업에 대한 특별수사를 촉구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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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음지 찾는 디지털 성범죄=소라넷이 폐쇄된 이후에도 '에이브이스눕(AVSNOOP)‘, '꿀밤' 등 제2, 제3의 소라넷으로 불리는 대형 음란물 사이트가 잇따라 생겨났다. 이 사이트 운영자들은 ‘박사’ 조주빈처럼 가상화폐를 통해 금전 거래를 하며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했다.


2018년에는 일명 ‘웹하드 카르텔’의 실체가 드러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 사건에 온 나라가 들썩였다. 양 회장은 2013년 12월부터 경찰에 검거되기 전까지 위디스크와 파일노리 등 웹하드 업체를 운영하면서 불법 촬영된 음란물 등 5만2000여건과 저작권 영상 등 230여건을 유포해 수십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를 받았다. 양 회장이 유포한 영상 가운데는 불법 촬영된 몰카 영상을 비롯해 일명 '리벤지포르노'(복수 목적으로 유포한 영상)도 상당수였다.


양 회장은 디지털 장의업체와 결탁해 피해자들이 불법 촬영물 삭제를 요청하면 그들로부터 돈을 받고 이를 지워주는 시스템을 갖추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삭제된 불법 촬영물은 또다시 웹하드를 통해 올라왔다.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 등 수십 명의 여성을 협박, 촬영을 강요해 만든 음란물을 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씨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나오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 등 수십 명의 여성을 협박, 촬영을 강요해 만든 음란물을 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씨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나오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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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된 솜방망이 처벌, 대책은?=웹하드 서비스와 온라인 사이트에서 소비되던 음란물의 무대는 텔레그램을 비롯한 인터넷 메신저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옮겨왔다. 이렇게 점점 음지로 숨어든 디지털 성범죄는 급기야 ‘n번방 사건’이라는 비극을 불러왔다.

과거 수사당국은 이 같은 사건이 있을 때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엄단하겠다”는 약속을 되풀이했지만 결국 디지털 성범죄는 자취를 감추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검찰 등 수사당국은 이번 n번방 사건에 대해서도 엄정한 대처를 예고했다.


전문가들은 이번에야말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최근 문제가 된 범행들의 수법이 마치 신종인 것처럼 알려지고 있지만 이 같은 수법은 과거에도 있어왔다”면서 “자꾸 일이 터진 이후 사후약방문식의 대책이 쏟아져 나오지만 중요한 것은 범죄 예방과 범행 의지 위축에 초점을 맞춘 대책”이라고 말했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송승윤 기자 kaav@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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