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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의 배달부, 우정의 라이벌 곁으로…

최종수정 2020.01.21 23:04 기사입력 2020.01.21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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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코미디언 남보원 폐렴으로 별세…향년 84세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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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는 삐에로~ 연지곤지 분 바르고~ 멋쟁이로 차려입은~ 나를 보고 웃어봐 (중략) 맨땅에다 헤딩하고 웃음 파는 삐에로~ 나는 나는 웃음의 배달부~” 원로 코미디언 남보원(본명 김덕용)이 부른 노래 ‘삐에로’의 가사다. 그의 삶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구구절절 애환이 깃들었다.


남보원은 우리나라 원맨쇼의 대부다. 1960~70년대 팔도를 넘나드는 성대모사로 많은 사람을 웃기고 울렸다. 유명 인사와 온갖 동물은 물론 뱃고동, 기관총, 전투기, 기차 소리까지 너무나 흡사하게 흉내냈다. 능청스런 얼굴로 해학이 넘치는 만담까지 늘어놓아 사람들의 정신을 쏙 빼놓았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추억으로 남는다.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는 용산구 순천향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남보원이 21일 오후 3시40분께 별세했다고 밝혔다. 향년 84세. 협회에 따르면, 남보원은 연초부터 건강에 이상이 있었다. 치료와 퇴원을 번복하다가 결국 폐렴으로 사망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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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1963년 영화인협회가 주최한 ‘스타탄생 코미디’에서 1위로 입상하며 코미디 무대에 데뷔했다. 그는 극장과 텔레비전을 가리지 않고 한국 코미디계 대표주자로 활동했다. 주특기는 원맨쇼. 한 번 들은 소리를 그대로 복사해내는 성대모사와 구수한 평안도 사투리로 청중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고인은 2018년 KBS 1TV ‘아침마당’에 출연해 “성대모사를 100개 정도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옆에 있던 김학래가 “그냥 건드려도 툭 튀어나온다”고 말하자 바로 색소폰, 뱃고동, 갈매기 소리를 선보였다. 또 10살 때 개천에서 들은 일본 천황의 항복 목소리와 루이 암스트롱 목소리를 흉내내 ‘역사의 산증인’임을 증명했다.

고인은 빼어난 능력으로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초대도 받았다. 지난달 OBS ‘독특한 연예뉴스에 출연해 “제가 (박 전 대통령에게) 초대를 한번 받았었다. 본인의 성대모사를 해 보라고 하길래 성대모사를 한 뒤 막걸리도 받아 마시고 파티에도 참석했다”고 밝혔다.


기막힌 성대모사는 타고난 재능만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생전 ’소리를 들으면 다 따라할 수 있냐‘는 물음에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엄용수 한국코미디언협회장은 “전수가 불가능한 재능”이라고 말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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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2010년 7월 먼저 세상을 떠난 코미디언 백남봉과 ’쌍두마차‘로 불렸다.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 등에 콤비로 나와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맞추려고 애쓰면 맞는데, 맞지 않을 때도 많았다. 무대에서는 친한 척했지만, 내려오면 자주 싸웠다. 우리가 봐도 웃겼다”고 회고했다. 백남봉 타계 당시에는 사흘간 빈소를 지키며 “나보다 어린놈이 먼저 가다니 말이 안 된다. 하늘에서 다시 만나 ’투맨쇼‘를 하자”고 비통해했다.


고인은 코미디언으로서 가장 보람 있었던 공연으로 늘 백남봉과 함께 했던 평양 ’투맨쇼‘를 꼽았다. 1985년 남북예술인교환방문단 일원으로 방문했는데, 걸핏하면 눈물이 나서 애를 먹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북한 평안남도 순천 출생이다. 부잣집 외아들로 곱게 자라다가 공산당 세상이 되자 1·4후퇴 때 월남했다. 35년 만에 찾은 고향 인근에서의 공연이 감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고인은 생전 부모님에 대해 “부산 피난 시절 고생을 많이 하셨다. 나를 뒷바라지하지 못한 것에 대하 한을 품고 돌아가셨다”고 회고했다.


그는 지난해 내내 감기를 앓으면서도 컨디션이 조금 좋아지면 행사 출연을 강행했다. 스스로 영원한 현역임을 자처할 만큼 코미디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조언도 잊지 않았다. 고인은 “요즘 코미디는 임기응변으로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개인기를 갖지 않으면 나중에 설 땅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이 젊은층 위주로 흘러가는 경향에 대해서는 “프로듀서들이 어려서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는 이제 어른들을 즐겁게 하는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장수시대인데, 텔레비전은 기성세대를 너무 냉대한다”고 서운해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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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꾸준한 활동으로 서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한 점을 높이 평가받아 예총예술문화상 연예부문(1996), 대한민국연예예술상 대상 화관문화훈장(2007), 대한민국 신창조인 대상 행복한사회만들기 부문(2015), 제7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2016) 등을 받았다. 빈소는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9호실이다. 이튿날부터는 19호실로 옮길 예정이다. 영결식은 오는 23일 오전 11시에 치러진다. 발인은 낮 12시, 장지는 남한산성 가족묘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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