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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가을귀]"그리스도는 영화…유다는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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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에버트 '위대한 영화'

[이종길의 가을귀]"그리스도는 영화…유다는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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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영화감독이 예수의 희생을 다뤘다.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마태복음(1964)’ 등 대다수 작품들은 예수를 정갈하고 심지가 곧은 인물로 표현했다. 마틴 스코세이지가 1988년 연출한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은 다르다. 예수(윌렘 대포)를 인간으로 묘사한다. 논란을 우려해서인지 도입에 특별한 문구를 삽입했다. “이 영화는 복음 성경이 아닌 영원한 영혼의 갈등에 대한 허구적인 탐구를 근거로 한 것이다.”


기독교 우파는 이 영화를 신성 모독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예수가 소녀 천사를 만나 십자가에서 벗어나는 장면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당신의 아버지는 처벌이 아닌 자비의 하느님이세요.” 천사는 가시면류관을 벗겨주고 몸에 박힌 못을 빼준다. 고통에서 해방된 예수는 인간으로서 평온한 삶을 영위한다. 그러나 부활한 예수를 만났다는 사도 바울과 언쟁하고, 임종 직전 만난 유다로부터 배신자 취급당한다. “당신이 있어야 할 곳은 십자가였어. 그런데 죽음이 닥쳤을 때 무서워서 도망갔지. 인간의 삶으로 자신을 숨겼어.” 예수는 소녀 천사를 가리키지만 천사의 정체는 사탄이다.

영화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 속 예수

영화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 속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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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당시 평론가들은 예수가 인간인지 신성의 존재인지를 결정하는 결정권자를 자임했다. 평론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로저 에버트(1942~2013)도 그랬다. 그는 이단이라는 비난에 맞서 스코세이지를 옹호했다. 20여년 뒤 나온 저서 ‘위대한 영화’에서도 같은 주장을 펼친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건 영화나 감독이 욕구하는 그 외의 어떤 것도 불경스러울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가 영화의 내적인 제작 의도에 대해 확신하면서 품는 소망은 그 영화가 제작진이 만들 수 있었던 능력만큼 훌륭한 영화이기를 바라는 것에만 국한돼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통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제시하면서 그에 대한 유용한 사실과 정보를 밝히는 건 분명히 가능하다. 그러한 수정주의의 전통은 유구하다.”


스코세이지는 예수의 핵심적인 미스터리, 즉 그가 신이면서 인간이라는 것을 두고 고심한다. 이 패러독스가 끼친 영향을 탐구하기 위해 ‘픽션’이라는 자유로운 형식을 활용한다.

영화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 속 유다

영화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 속 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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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 원작을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하느님이 삶이라는 선물을 내리신 것이므로 예수 또한 우리처럼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은 유혹을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스코세이지는 예수가 신인 동시에 인간이라면 그의 희생이 지니는 의미가 무엇일지에 주목한다. 영화에서 예수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하느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그래서 절절한 고뇌는 죽음에 대한 공포는 물론 평범한 사내의 현세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난다.


에버트는 이런 면면이 유다에게서도 보인다고 역설한다. ‘위대한 영화’에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을 스코세이지의 걸작 중 한 편으로 만든 건 예수를 참되게 다룬 영화라는 점이 아니라 스코세이지 자신을 참되게 다룬 영화라는 점이다”라고 썼다. 그가 주목하는 캐릭터는 유다(하비 케이틀)다.


“스코세이지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과 비슷하게 그리스도 이야기에서 자신에게 호소력을 발휘하는 측면을 찾아냈다. 이 영화의 예수는 그의 자전적인 모습을 가장 잘 반영한 두 캐릭터인 ‘비열한 거리(1973)’의 찰리 카파와 ‘누가 내 문을 두르리는가?(1968)’의 J. R.과 비슷한 존재다. 두 캐릭터 모두 카이텔이 연기했다. 스코세이지가 이번에는 카이텔을 유다를 연기할 배우로 선택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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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유다는 예수 옆을 걷는, 언젠가는 죽을 운명인 남자다. 예수에게 잔소리하고 으름장을 놓으면서도 그가 더 나은 존재가 되기를 희망한다. 해야 한다면 배신할 준비도 되어 있다. 에버트는 “그리스도는 영화고, 유다는 감독이다”라고 썼다. 단순한 영화평이나 헌사가 아니다.


최근 스코세이지는 “마블 영화는 시네마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모든 영화에 놀이공원 같은 게 침투하면 안 된다”라고도 말했다. 에버트는 이미 오래 전에 스코세이지의 생각을 간파하고 있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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