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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그날엔…] 잘 나가던 초선 오세훈, 정치인생 바꾼 ‘불출마의 변’

최종수정 2019.11.23 14:00 기사입력 2019.11.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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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제17대 총선 앞두고 ‘정치개혁’ 불씨 살리며 불출마…“정치권 전반에 내탓이오 정서의 시발점이 되길”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27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차기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기 위한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도전중인 오세훈 후보가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27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차기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기 위한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도전중인 오세훈 후보가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현실과 이상 사이의 힘겨운 갈등에 가슴 아파했고, 이것은 정치개혁과 깨끗한 정치의 실현을 위해 참여한 제게 참으로 견디기 힘든 자기모순이었다.”


2004년 1월6일 오세훈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제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선거를 불과 3개월 앞둔 상황에서 잘 나가던 초선 의원이 자신을 던지자 여의도 정가는 충격에 빠졌다. 제16대 총선에 서울 강남을 지역구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59.4%의 득표율로 당선됐던 인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진행자 출신. 외모와 언변, 개혁적인 이미지까지 갖춘 그는 정치에 입문하자마자 여의도 정가의 기대주로 인식됐다. 한나라당 소속이었지만 그의 정치적인 메시지는 중도와 합리적인 진보 쪽도 수용 가능할 정도로 스펙트럼이 넓었다.


17대 총선에 다시 강남에 출마했다면 재선 의원이 돼서 정치적인 영향력이 커질 수 있는데 그는 불출마라는 의외의 선택을 했다. ‘정치 개혁’을 촉구하며 여의도 무대에서 물러난 것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12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기 위해 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오 전 시장은 이자리에서 전당대회 복귀를 선언했다./윤동주 기자 doso7@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12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기 위해 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오 전 시장은 이자리에서 전당대회 복귀를 선언했다./윤동주 기자 doso7@



오세훈 당시 의원은 불출마 선언문을 통해 “정치개혁의 실현을 목표로 삼았던 시대에 오히려 '개혁의 상실'을 경험했으며, 그 현실에 대해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오세훈 의원은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제 자신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며, 조그마한 기득권이라도 이를 버리는 데에서 정치개혁이 시작된다고 주장했던 대로 이제 실행하려 한다”면서 “정치권 전반에 ‘내 탓이오’ 정서가 만들어지는 시발점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당시 오세훈 의원 불출마의 변은 메시지가 간결했고 분명했다. 정계 은퇴를 선언한 것이란 관측도 있었지만 정치적으로 여운을 남겼다. 그는 “국회만이 국민을 위하는 유일한 장소는 아니다”라면서 “어디에서든 정치개혁의 완성을 위하여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고 말했다.


오세훈 의원이 이런 말을 남기고 자신을 내려놓자 ‘아름다운 퇴장’이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역대 총선에서 여러 정치인들이 불출마 선언을 통해 관심을 받았지만 2004년 오세훈 의원만큼의 임팩트를 전한 인물을 찾기는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그의 내려놓음은 정치 인생 반전의 계기가 됐다. 2004년 17대 총선 당선자들보다 더 주목받는 정치인으로 그의 이름이 각인됐기 때문이다.


[정치, 그날엔…] 잘 나가던 초선 오세훈, 정치인생 바꾼 ‘불출마의 변’


정치인 오세훈은 불출마 이후 행보도 남달랐다. 환경운동연합 중앙집행위원을 역임했고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자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보수정당 정치인의 일반적인 엘리트코스와는 거리가 먼 행보를 이어간 셈이다.


정치인 오세훈의 퇴장은 결과적으로 또 다른 전진의 시작이었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한나라당에서 3명의 유력 정치인이 서울시장을 놓고 경쟁했다. 정치인 박진, 맹형규 그리고 홍준표였다. 저마다 자신이 적임자라고 주장했지만 본선 경쟁력이 문제였다.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와의 맞대결에서 당선 가능성이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구원투수를 올렸다. 2년 전 총선 불출마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렸던 정치인 오세훈이었다. 그가 서울시장 도전을 선언하자 판도는 급변했다. 선거 결과는 압승이었다.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의 득표율은 61.1%, 강금실 열린우리당 후보는 27.3%로 집계됐다.


때로는 '불출마의 변'이 정치적인 도약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본인은 여의도 정치 무대에서 퇴장을 결정했지만 대중의 선택에 따라 언제든 다시 부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04년 1월 정치인 오세훈의 불출마 선언문도 결과적으로 정치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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