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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 여성들 용기 냈으면" 3년 만에 가해자 고소한 피해자 외침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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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 여성 인터뷰…'동의 없는 관계'는 강간
피해자 "피해 여성들 자책하지 말고, 용기 냈으면"
국회, 비동의간음죄 통과 추진
청와대 국민청원 "성범죄 양형기준 재정비" 촉구

피해 여성이 아시아경제에 공개한 한 정신과 진단서.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피해 여성이 아시아경제에 공개한 한 정신과 진단서.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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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자책하지 말고 스스로를 돌봤으면 좋겠어요"


평소 호감이 있던 대학 남자 선배 자취방에 갔다가 성폭력을 당한 A(26·여) 씨가 사건 발생 3년 만에 가해자 처벌에 나선 가운데, 자신과 같은 피해를 당했을 여성들에게 "본인 잘못이 아니다. 용기를 내라"고 목소리를 냈다.

18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A 씨는 "강간이나 강간미수 사건 이후 여성 피해자들의 경우 '내 잘못이다'라는 인식을 많이 하는 것 같다"면서 "저도 그랬지만, 정말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A 씨는 "피해 여성들은 정말 아무 잘못 없어요. 또 성폭력센터나 해바라기 센터, 스마일 센터의 도움을 받아봤으면 좋겠어요. 생각보다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강력히 저항했어야지" 성폭력 당했지만 오히려 손가락질

경찰 등에 따르면 A 씨는 2016년 평소 호감이 있던 모 대학 같은 과 선배 B(27·남) 씨 자취방에 놀러 갔다가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


두 사람은 술에 취해있었고, 호감이 있던 B 씨에게 A 씨가 짧은 입맞춤을 하자 B 씨는 A 씨의 다리를 강제로 벌린 뒤, 피해자 속옷 위로 자신의 신체 주요부위를 비비는 등 강제로 성관계를 하려고 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성폭행 시도에 A 씨는 "내 몸 만지지 마"라며 소리치는 등 강하게 저항했다. 이어 피해자는 가해자를 향해 욕을 하고, 이름을 부르며 뺨을 때리는 등 강하게 저항했다. 그러자 B 씨는 결국 피해자에게서 떨어졌다.


이후 성폭행 위험에서 벗어난 A 씨는 술에 취했고 또 지친 나머지 자취방에서 그대로 잠들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A 씨는 자신의 스타킹이 바닥에 놓여 있었지만, 왜 스타킹이 그렇게 되어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해당 사건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는 A 씨 행동에 잘못이 있다고 손가락질을 했다.


호감이 있다지만 술에 취해 어떻게 남자 혼자 사는 방에 들어갈 수 있냐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에게도 성폭력 책임이 있다는 전형적인 2차 가해다.


A 씨는 자신을 둘러싼 각종 비난에 "이것도 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고 생각해요. '너도 좋으면서 튕기는 거 아니야?' '네가 진짜 싫었으면 도망갔어야지', '강력히 저항했어야지'라고 법이 말하는 것 같아요"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만 알 수 있는 상황이 있는 건데 본인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피해자, 본인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범죄가 있는 것 같다. 이 부분은 정말 개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불필요한 오해를 받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는 "사실 제가 정말 흔한 케이스라고 생각해요. 호감 사이에, 혹은 연인 사이에 둘 중 한 명이 싫다 했는데 강제로 성관계를 하려고 하는 게 정말 많잖아요"라며 "보통 주위를 보면 그럴 때 많은 피해자가 본인 탓을 많이 하더라고요. 저도 그랬고"라고 토로했다.


A 씨는 "호감 사이에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었던 게 다였어요. 놀러 간 제가 잘못이 아니에요. 흑심을 품고 그런 행동을 한 가해자가 잘못이죠"라고 지적했다.


가해자 고소 이후 상황에 대해서도 A 씨는 개선해야 할 것이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에 고소하면서 느낀 건데 폭행과 협박이 있었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뭐 맞기라도 해야 성범죄가 성립하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 인터넷에서 성범죄 변호하는 변호사들 변론을 보니, 대부분이 '항거 불능하지 않았다' '항거 불능할 정도로 폭행과 협박을 하지 않았다'로 많이 변론을 하더라고요. 이것도 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고 생각해요"라고 강조했다.


A 씨가 강간미수라고 주장하는 이 사건 가해자는 강제추행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고, 검찰은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담당 변호인은 기소유예 처분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변호인은 "(가해자가 성관계를 시도할 때) 피해 여성이 명시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혔고, 가해자도 인정했다"면서 "그럼에도 검사가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것은 적절해 보이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강간미수 적용 논란과 별도로 강제추행 역시 처벌 대상이다. 그런데 기소를 유예하겠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변호인은 향후 계획에 대해 "검찰의 항고를 낸 상태이며, 가해자에 대해 민사소송도 제기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 참가자들이 지난9월18일 국회 앞에서 강간죄 구성요건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 참가자들이 지난9월18일 국회 앞에서 강간죄 구성요건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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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 동의 없으면 무조건 강간…동의 있어도 위계 등 따져 성폭행 처벌

이런 가운데 20대 국회 막바지에 이른 지금 비동의간음죄 통과를 더 이상 나중으로 미뤄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 소속 여성의원 7명(민주당 남인순·백혜련·권미혁·정춘숙, 정의당 심상정·이정미, 바른미래당 김삼화 의원) 등은 지난 13일 성폭력 판단 기준을 '폭행과 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로 삼아야 한다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는 현직 판사·검사와 경찰행정학과 교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등이 참석했다.


토론에 참여한 박은정 부장검사는 "성폭력을 피해자 의사를 기준으로 판단하게 되면 당연히 비동의간음죄가 가장 기본적인 구성요건이 될 수 있다"면서 "이는 유엔(UN) 등 국제법과 미국·영국·스웨덴 등 서구 선진국 대부분 나라에서 강간을 규정하는 기본 개념"이라 강조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성폭력과 관련해서는 폭력을 당했는지, 협박을 입증할 수 있는지, 이런 말이 주도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며 "이제는 '동의를 했느냐'만을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관련해 208개 여성단체로 구성된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가 전국 66개 성폭력상담소에 올해 1~3월 진행 및 접수된 강간 상담사례 1,030건을 분석한 결과 직접적인 폭행ㆍ협박이 없었던 강간(유사강간 포함)은 71.4%에 달했다. 가해자가 직접적인 폭행ㆍ협박을 하지 않더라도 피해자가 벗어나기 어렵고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저항을 포기한 사례들이 많았다.


연대회의에 따르면 영국, 스웨덴, 독일, 캐나다, 미국 등은 이미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성폭행을 정의하고 있다. 형식적으로 동의가 있어도 폭행협박, 위계나 위력, 피해자의 연령, 장애 유무, 공포 등을 고려해 실질적인 동의가 불가능한 경우까지 '동의 없음'으로 판단해 처벌한다.


A 씨는 청와대 청원을 통해 성범죄 양형기준 재정비를 호소하고 나섰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A 씨는 청와대 청원을 통해 성범죄 양형기준 재정비를 호소하고 나섰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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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A 씨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성범죄 양형기준 재정비를 호소하고 나섰다.


지난 15일 '가해자 중심적인 성범죄의 양형기준을 재정비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을 올린 A 씨는 "우리나라의 성범죄 처벌은 아직도 가해가 중심적입니다. 성범죄의 성립조건이 '비동의'가 아닌 '항거 불능할 정도로 폭행과 협박'으로 이를 피해자가 직접 증명해야 합니다"라고 지적했다.


A 씨는 "'호감이라서 감형' '폭행과 협박이 없어서 무죄' '그 후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않아서 감형' 이 모든 가해자 중심적 성범죄 양형기준의 재정비를 바랍니다"라고 호소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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