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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이야기 시즌2] 동의보감의 고향에서 교육특구로 떠오른 '양천'

최종수정 2019.11.17 10:20 기사입력 2019.11.1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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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구 신정동과 목동 일대 전경(사진=양천구청)

양천구 신정동과 목동 일대 전경(사진=양천구청)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양천구는 서울의 대표적인 교육 특구다. 이에 대입 시즌이면 강남8학군 지역과 함께 뉴스에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특목고 및 자사고 폐지, 대입 정시확대 등 굵직한 교육 정책들이 줄줄이 발표되면서 부동산 시장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지금은 교육 특화 지역으로 주목을 받고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알부자들의 땅으로 유명했다. 당시 양천구는 한강이 해마다 범람해 물난리를 겪던 지역이었다. 그런데 한강 수운 교통의 중심기지 중 하나라 수해가 날 때마다 조정의 지원과 복구가 계속 이어지다보니 오히려 이곳에 땅을 가진 사람들에게 혜택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이 고을의 사또인 양천현감 자리를 두고 "울면서 들어갔다가 울면서 나오는 곳"이라고 소문이 돌기도 했다. 홍수가 잦은 곳이라 매년 수해를 감당하기 어려울것으로 여겨 울면서 들어왔다가 이후에는 조정의 지원금으로 부를 추적하게 돼 떠나기 싫어 운다는 것.


동의보감(東醫寶鑑)이 탄생한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조선 최고 명의로 알려진 허준의 고향이며 허준의 본가인 양천 허씨(陽川 許氏)가문의 발상지로도 알려져 있다. 당시에는 강서구 일대도 모두 양천지역에 포함돼 있었는데 현재 강서구 가양동에 있는 '허가바위'라는 곳에서 양천 허씨가문의 시조인 고려 태조때 공신'허선문'이 태어났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해방 이후인 1963년에 김포군 양동면과 양서면이 양천구로 병합, 영등포구에 편입돼 서울로 들어왔다. 이후 1988년 오늘날 강서구에서 분리돼 양천구가 탄생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김포공항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골목에 있는 양천구 일대에 대한 신시가지 개발계획이 수립됐고, 이에따라 오늘날 교육특구의 중심인 목동 신시가지가 탄생하게 됐다.


지금은 교육 호재 뿐만 아니라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대상에서 제외, 기타 지역에서 수요가 몰려들면서 아파트가격 상승세가 더욱 힘을 받고 있다. 한국감정원의 11월 둘째주 서울 아파트가격 동향 조사에서 양천구 아파트 값은 0.11% 상승한 것으로 나와 서울 평균 0.09%를 웃돌았다. 이는 비강남권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이기도 하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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