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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요일에 읽는 전쟁사] 임진왜란에 진 사무라이들, '태국'으로 간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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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www.pintere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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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임진왜란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611년, 현재 일본 시즈오카 태생의 한 가마꾼이 무역선을 얻어타고 오늘날 태국인 아유타야 왕국으로 넘어갔다. 그는 그곳에 이미 존재했던 일본인 마을인 '방이푼(日本町)'에 있던 사무라이 수천명을 규합해 사무라이 용병대를 구성했고, 아유타야 왕국을 침범했던 에스파냐 군을 무찌른 뒤, 왕위 계승전에도 참전해 일약 영웅이 됐다.


이 입지전적이면서 국제적이었던 가마꾼의 이름은 '야마다 나가마사(山田長政)'로 오늘날 시즈오카에 그의 동상이 세워져있으며 매해 9월에 태국과의 우호를 상징하는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이 축제에선 코끼리에 올라탄 사무라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정부가 해외에 가라고 돈을 줘도 무서워서 나가지 않는다는 폐쇄적인 현대 일본인들의 눈에도 희한한 그의 일대기는 지난 2010년 태국에서 '무사 야마다'라는 영화로 나오기도 했다.

사실 그의 일대기는 17세기 초 임진왜란 직후 사무라이들의 대량 해외이민과 연결돼있다. 그가 1611년 태국에 도착했을 때 이미 일본인 정착촌에는 3000명에서 7000명 사이의 일본인들이 거주했다고 알려져있으며, 상당수가 크리스트교를 믿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들은 도대체 왜 수만리 떨어진 태국까지 흘러들어가 정착촌을 건설하고, 태국왕의 사무라이 용병단 노릇을 했던 것일까?


시즈오카시에 세워진 야마다 나가마사의 흉상 모습(사진=www.shizuoka-bunkazai.jp)

시즈오카시에 세워진 야마다 나가마사의 흉상 모습(사진=www.shizuoka-bunkazai.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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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임진왜란 직후 일본의 정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군은 1598년 11월, 전쟁의 원흉이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사망과 함께 대거 패퇴, 조선에서 완전히 밀려나 돌아왔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또다른 거대한 내전이었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를 분기점으로 본래 도요토미 히데요시 계열 영주들은 대부분 숙청당하거나 명목만 남게 됐으며, 그들 밑에 고용돼있던 사무라이들은 대거 실업자 신세가 됐다.


뒤이어 1614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의 거성인 오사카를 포위, 섬멸시키는 오사카 전투가 끝난 후 또 한번 수많은 사무라이들이 숙청당했다. 이러한 일련의 정치적 변화와 도쿠가와 막부의 크리스트교 탄압이 겹쳐지면서 많은 사무라이들이 국외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당시까지는 일본이 완전히 쇄국무역으로 돌아서기 전 상황이었고, 동남아시아로 진출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와의 교역도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무역선을 타고 동남아시아로 이동한 일본인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태국 뿐만 아니라 동남아 전역으로 흩어졌으며 네덜란드, 스페인, 영국 등 당시 동남아 일대 식민지 건설에 나섰던 서양세력의 용병으로 활약했다. 야마다 나가마사가 정착한 일본인 정착촌에는 수천명 규모의 용병대가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이들은 동남아의 덥고 습한 환경과 밀림 속에서도 뛰어난 인내력과 전투력을 보여줬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흑인이나 백인용병보다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야마다 나가마사의 일대기를 기념하는 일본 내 축제의 모습(http://shinjo-matsuri.jp)

야마다 나가마사의 일대기를 기념하는 일본 내 축제의 모습(http://shinjo-matsuri.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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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 나가마사의 경우 가마꾼으로 알려져있지만, 훗날 태국에서 보여준 전투에서의 활약상을 생각하면 단순한 가마꾼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출생연도는 모르지만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몰락한 사무라이 가문의 후손이거나 아니면 크리스트교를 믿다가 박해받은 가문의 일원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론 정권다툼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본을 탈출, 태국의 용병부대가 됐다는 점에선 그보다 먼저 태국에 도착한 일본인 정착촌 주민들과 같은 신세였을 것으로 보인다.


성공한 이민자로 끝날 것 같았던 그의 인생은 말년으로 흘러가면서 위기를 맞는다. 아유타야 왕국에선 점차 일본인 세력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나가마사와 정착촌 주민들을 핍박하기 시작했고, 이에 그는 남은 사무라이 세력들을 이끌고 보르네오 섬에 새로운 정착촌을 만들던 도중 1630년, 현지 원주민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한편 그 사이 중국 대륙을 비롯한 동북아에는 새로운 외교 역학관계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기존의 중국을 지배하던 명 왕조가 1644년 무너지고, 청 왕조가 들어섰으며 도쿠가와 막부는 1637년 일본 내 크리스트교인들이 주축이 돼 일어난 것으로 알려진 시마바라의 난을 계기로 쇄국정책으로 돌아선다. 일본인들의 사사로운 해외 이민이 금지되면서 각지의 동남아 정착촌은 점점 세력을 잃고 사라지게 됐다. 이후 이들은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에 의해 역사의 무덤에서 끄집어 올려져 새롭게 주목 받게 된다. 나가마사가 일본 내에서 유명하게 된 것도 그 이후부터 였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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