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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어떻게 석달만에 국회를 통과했나

최종수정 2019.07.21 09:38 기사입력 2019.07.2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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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어떻게 석달만에 국회를 통과했나

"이제 아빠 할 것은 다 했다. 이제 조금 쉴 거다."


2016년 직장 내 성희롱과 괴롭힘으로 고인이 된 딸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하던 아버지는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지난해 10월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 현장에서다. 직장 내 괴롭힘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참고인으로 출석한 김영수씨는 "우리 아이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일밖에 다른 일은 할 수 없었다"고 했다. 37년간 한 자리에서 약국을 운영해온 김씨는 딸 나영씨의 사고 이후에 약국 문을 닫았다. 김씨는 지속적으로 고용노동부와 국민신문고, 언론을 통해 딸의 억울함을 호소했고, 가해자로부터 무고죄로 고소를 당하면서 소송전을 치르기도 했다. 유학 중이던 딸에게 한국거래소 입사를 권했던 김씨는 아직도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린다고 한다.


◆직장 괴롭힘으로 극단적 선택까지= 김씨의 딸 나영씨는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한국거래소에서 성희롱과 조직적 따돌림, 괴롭힘 등 2차 피해를 당해 극심한 우울증을 호소하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상사 A씨의 성희롱은 2012년 일본 출장에서 시작됐다. 당시 샤워가운만 입은 A씨가 계약직 신분인 나영씨를 자신의 호텔방으로 불러내 성적 농담을 했고, 출장 이후에도 성희롱은 계속됐다. 회사는 성희롱 사실을 알면서도 또다시 나영씨와 A와의 동반 해외 출장을 계획했다. 나영씨는 2014년 정규직 전환 이후 간부에게 성폭력 사실을 알렸지만 매번 묵살당했다. 오히려 업무 미부여, 감봉 등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고 사내 악성소문에 휘말렸다.


극심한 괴로움에 시달리던 나영씨는 회사에 '자살 위험이 있어 즉시 입원치료와 최소 3개월의 휴직에 안정을 요함'이라고 쓰인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사측은 휴직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취업규칙도 어겨가며 2주간의 휴가만 주고 출근을 지시했다. 아침저녁으로 우울증 약을 복용하던 나영씨는 정신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여야 한목소리…일사천리로 국회 통과= 지난 16일부터 시행된 일명 '직장 괴롭힘 금지법'의 필요성을 두고 논란이 한창이다. 그렇지만 이 법은 모처럼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한목소리를 내며 일사천리로 진행된 법이다. 지난해 7월 정부가 '생활 적폐' 청산의 일환으로 직장 내 괴롭힘 근절대책을 발표한 후 국회에 계류 돼있던 법안들이 빛을 보게 됐다. 한정애, 임이자, 이용득, 이정미, 강병원 등 여야를 불문하고 무려 14명의 의원들이 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지난해 9월 환노위에서 본격적으로 논의가 진행된 이후 그해 12월 석달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특히 국감에서 재조명된 한국거래소 사건은 법안 처리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당시 법안은 환노위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에 회부된 상황이었다. 국감장에 있었던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근로복지공단에 있으면서 이런 상황을 몇 건 경험해보고 처리해봤다"며 "(직장 내 괴롭힘의 심각성을) 저도 너무나 처절하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준 '양진호 사건'과 간호사 '태움' 문화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필요성을 보여줬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어떻게 석달만에 국회를 통과했나


◆직장 괴롭힘, 방치하면 회사에도 손해=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7명은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 일주일에 1차례 이상 반복적으로 괴롭힘을 당한 경험자도 20%가 넘는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건강상의 문제를 경험한 피해자는 58.2%로 절반 이상이고, 자살 시도를 경험했다는 응답도 10.6%에 달했다.


직장 괴롭힘으로 인한 근무시간 손실비용은 연간 4조7000억원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괴롭힘 한 건당 1550만원에 달하는 사회적 손해 비용이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한국직업능력개발원, 2016년)도 있다. 피해자 결근 등에 따른 근로시간 손실분, 대체인력, 괴롭힘 조사비용 등을 바탕으로 계산한 것이다.


이직이 늘고 업무능력이 저하돼 생산성이 감소하고, 기업 이미지도 하락하는 등의 손실도 발생할 수 있다.


◆직장 괴롭힘 예방의 좋은 예= 직장 내 괴롭힘 근절을 위해 일찌감치 예방책을 마련한 세운 기업도 있다. 코오롱글로텍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게시판을 운영하고 있다. 상사의 부당한 행위에 대한 제보가 있을 때에는 관련 부서에서 즉시 확인·조사를 실시해 필요 시 인사조치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포스코는 2009년부터 직장 내 성희롱 문제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성윤리상담센터'를 운영해왔다. 2015년부터는 인간존중 직장문화 정착을 위해 직장 내 괴롭힘 예방에도 집중했다. 지속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특이사항이 감지되면 빠르게 감사를 진행했다. 초반 회사 방침에 신뢰를 보이지 않던 직원들도 점차 태도를 바꾸며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포스코는 문제가 접수되면 가장 먼저 신고자에 대한 보안에 신경을 썼다. 시간을 끌며 갈등을 키우는 상황을 최대한 차단하고 '솜방망이 처벌'로 사건을 대충 마무리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고 있다.


또한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되면 이를 인사에 반영한다. 실제로 직장 내 괴롭힘 문제로 직책에서 물러난 경우가 있으며, 최대 퇴사까지 가능한 강력한 조항이 있다. 인사 조치가 시행되면 내용을 자세히 밝히고 사내에 공유한다. 반면교사로 삼기 위함이다.




세종=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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