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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이케아 옷장에 숨었다 영국으로 배달된 남자

최종수정 2019.07.18 13:21 기사입력 2019.07.18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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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케아 옷장에서 시작된 특별난 여행'

[이종길의 영화읽기]이케아 옷장에 숨었다 영국으로 배달된 남자


가구는 부모에게 물려받는 재산이었다. 소파 하나도 죽을 때까지 쓰려고 샀다. 이케아는 그런 가구의 개념을 일시적으로 바꿨다. 스스로를 표현하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집을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9ㆍ11 테러 사건 뒤 나타난 현상이다. 바깥세상은 통제할 수 없지만 집안은 제어할 수 있다. 근사해 보이게 꾸밀 수도 있고.


영화 '이케아 옷장에서 시작된 특별난 여행' 속 아자타샤트루 라바쉬 파텔(다누쉬)에게는 꿈 같은 일이다. 인도 뭄바이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심마 비스워스)는 온종일 빨래터에서 일한다. 파텔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삶을 산다고 생각한다.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경험하지 못했다. 학교에 입학해 더 넓은 세상을 배운 뒤에야 가난을 자각한다. 바로 어머니에게 달려가 따지듯 묻는다. "우리 가난해요?" "아니." "맞잖아요. 왜 아니라고 해요? 저 이제 학교 다녀요. 많은 걸 안다고요. 우린 엄청 가난해요."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으니 부자나 마찬가지야." "그렇다고 부자는 아니에요."


파텔은 우연히 이케아 카탈로그를 접하면서 꿈을 키운다. 가구마다 멋진 이름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돈을 모으기 시작한다. 이케아는 개개인을 디자이너로 만드는 매개체와 같다. 최신 유행하는 저렴한 스웨덴 가구로 인테리어를 업데이트하는 '방 바꾸기' 세대를 이끌어냈다. 이들은 값싼 소품으로 가득한 쇼핑백 하나로 생활공간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에 행복해한다. 단순히 새 옷을 산다는 개념이 아니다. 조그만 액세서리 하나로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자기만족에 가깝다.


[이종길의 영화읽기]이케아 옷장에 숨었다 영국으로 배달된 남자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일찍이 '파이트클럽'을 통해 이런 세대의 위험성을 직시했다. 주인공 잭(에드워드 노튼)은 스타벅스(회사)와 이케아(집)의 세계에서 불면증에 시달린다. 그가 사는 아파트는 이케아의 카탈로그를 옮겨놓은 듯하다. 화면 안에서 가구 옆으로 설명, 가격, 주문 정보 등이 배치된다. "난 이케아 가구의 노예가 되었다. 신제품이나 특이한 건 꼭 사야 직성이 풀렸다. (중략) 카탈로그를 휙휙 넘기다 보면 이런 의문이 든다. '어떤 종류의 저녁식사 세트가 나를 그럴듯한 사람으로 만들까?'" 물질적으로 부족하지 않은 후기 자본주의의 피폐한 인간 군상이다. 존재감을 폭력에서 인지하면서 점차 파멸해간다.


이케아 옷장에서 시작된 특별난 여행은 이런 피폐한 삶을 피해가는 파텔의 동화 같은 이야기다. 후기 자본주의를 만나기 전의 순수한 마음이 끝까지 변색되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그가 동경하던 프랑스 파리의 이케아 매장에서 마법의 동력을 얻는다. 무일푼 신세라서 매장에 진열된 옷장에 숨어 잠을 청하는데, 이 가구가 배달되면서 의도치 않게 영국에 당도한다. 파텔은 그곳에서 난민으로 전락한 불법체류자들과 함께 생활한다. 공항에 발이 묶여 옴짝달싹 못 하지만, 세상을 보는 눈은 조금씩 달라진다.

[이종길의 영화읽기]이케아 옷장에 숨었다 영국으로 배달된 남자


성숙해진 시선은 다시 찾은 이케아 매장에서 구매하는 물건으로 엿볼 수 있다. 어머니의 유골을 담은 파란색 유리병이다. "54유로입니다." "엄마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이케아의 물건들은 하나같이 세월의 시험을 통과하지 않는다. 애당초 그런 목적으로 제작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슈퍼마켓에서 파는 물건과 같이 일시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유골함의 성격은 이와 정반대다. 영원한 보존을 가리킨다. 대대로 전해지는 해묵은 감정의 보물이라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매개체가 된다. 파텔은 예상하지 못했던 여행으로 그 가치의 중요성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기회가 난민을 포함한 모두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그걸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1회용으로 취급받던 이케아 물건조차 영원불멸의 유산이 되듯.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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