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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희의 갤러리산책] 에트루리아 없었다면 로마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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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 토스카나 지역 고대국가 유물 300점 전시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展
아가멤논부터 알렉산드로스 시대까지 유물 350여점 '그리스 보물전'展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가 묘사된 장식판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가 묘사된 장식판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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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에트루리아인이 로마인에게 미친 영향은 많은 점에서 헤아릴 수 없이 크다.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6세기까지 에트루리아의 세력은 로마 따위는 감히 따라가지도 못할 만큼 막강했다."


일본 소설가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 1권에서 쓴 글이다. 시오노는 1937년 일본에서 태어났고 1964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다. 그는 역사가가 아니라 소설가다. 그래서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지만 로마에 대해 지나친 환상을 갖고 있어 객관적이지 않다는 비판도 받는다. 에트루리아는 그런 시오노가 로마가 감히 따라갈 수 없었다고 높이 평가한 문명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지난 9일 개막한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 전시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로마 이전에 에트루리아가 있었다는 전시 제목은 '에트루리아가 없었다면 과연 로마가 존재했겠느냐'라고 묻는다.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등에서 수집한 유물 약 300점이 전시된다.


에트루리아는 기원전 9세기부터 기원전 1세기까지 현재의 라치오 북부, 토스카나 지역에 존재한 고대 국가다. 비옥한 평원과 풍부한 광물자원을 바탕으로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다. 기원전 9세기에 이미 철기 제조법을 알고 있었다.


에트루리아는 열두 개 도시국가로 이뤄졌다. 하지만 종교를 제외하고는 군사·정치·경제적으로 느슨한 연대를 유지했다. 주도적인 힘을 가진 도시가 없어 단합하지 못했고, 뒤처져 있던 로마에 복속됐다.

전시를 준비한 노희숙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우리나라의 마한과 많이 닮았다"고 했다. 삼한 중 가장 강했던 마한은 54개 부족국가의 연합이었고, 백제에 통합됐다. 이탈리아인들이 생각하는 에트루리아는 우리가 생각하는 마한 이상일 가능성이 크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공인구 이름은 '에트루스코 유니코(Etrusco Unico)'였다. 에트루스코는 '에트루리아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축구에 대한 사랑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탈리아인들이다. 그런 그들이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의 공인구 이름에 에트루리아를 담았다는 사실은 에트루리아의 위상을 확인시켜준다.


오늘날 지명에서도 에트루리아의 위상이 확인된다. 코르시카·사르데냐·시칠리아섬으로 둘러싸인 이탈리아 서쪽 바다는 '티레니아해(Tyrrhenian Sea)'라고 불리는데 '에트루리아인의 바다'라는 뜻이다. 토스카나(Toscana)라는 지명은 로마인들이 에트루리아인들을 투스키(Tusci), 그들이 살던 지역을 투스키아(Tuscia)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 노 학예연구사는 "토스카나 지역 사람들은 지금도 문화적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했다.

알렉산드로스-판 조각상, 초기 헬레니즘 시대, 대리석, 펠라 고고학박물관 [사진=그리스 보물전 사무국 제공]

알렉산드로스-판 조각상, 초기 헬레니즘 시대, 대리석, 펠라 고고학박물관 [사진=그리스 보물전 사무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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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트루리아는 그리스 문명을 로마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스 문명과 로마 문명의 연결고리였다. 마침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그리스 보물전: 아가멤논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 전시가 열리고 있다. 지난달 5일 개막했다. 아테네 고고학박물관, 아크로폴리스박물관 등 그리스 전역의 스물네 개 박물관에서 유물 350여점을 모았다. 기원전 6000년 선사시대부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은 기원전 323년까지의 그리스 유물을 볼 수 있다.


그리스는 12세기 미케네 문명이 몰락한 후 인구가 감소하고 경제가 위축되면서 이른바 '암흑시대'를 보냈다. 이때 철기 문명이 보급되고 기원전 7세기를 전후해 전환기를 맞으면서 다른 지역과 활발히 교류했다. 에트루리아가 전성기를 보낸 시기와 겹친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강성했던 에트루리아는 그리스와 교류하며 그들의 문명을 흡수했다. 두 전시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인들과 에트루리아인들이 사용한 도기, 봉헌용 부조, 유골함 등에서 유사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노 학예연구사는 "에트루리아인들이 다신 사상 등 그리스의 문화를 받아들여 로마에 전달해준다. 로마인들이 입은 헐렁하게 주름이 잡힌 옷 토가는 그리스인들의 히마티온이 에트루리아인의 테베나를 거쳐 로마에 계승된 것"이라고 했다. 올림포스 12신도 에트루리아를 거쳐 로마에 수용됐다. 그리스의 제우스, 헤라, 아테나는 에트루리아의 주요 3신인 티니아(Tinia), 우니(Uni), 멘르바(Menrva)를 거쳐 로마의 주피터(Jupiter), 주노(Juno), 미네르바(Minerva)로 계승됐다.


대단한 문명을 꽃피웠지만 에트루리아는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에트루리아인들이 지은 신전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무너지기 쉬운 나무와 테라코타를 이용해 지은 탓이다. 그들이 남긴 금석문자도 아직 거의 해독되지 않았다. 에트루리아 사람들이 어디서 왔는가에 대해서도 견해가 엇갈린다. 아시아에서 기근을 피해 온 이민자이라는 설도 있고, 이탈리아 본토인이라는 주장도 있다.


영국 소설가 데이비드 허버트 로런스도 에트루리아에 큰 매력을 느꼈다. 그는 생의 마지막 10년간 프랑스, 멕시코, 호주, 실론섬 등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글을 썼다. 대표작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그가 1926~1928년 이탈리아에 머물며 쓴 소설이다. 로런스는 '에트루리아 유적 기행'이라는 책도 냈는데 "로마가 에트루리아를 무너뜨렸다고 해서 더 위대한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의 핏속에는 로마보다 훨씬 많은 에트루리아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썼다.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 전시는 오는 10월27일까지, 그리스 보물전: 아가멤논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 전시는 9월15일까지다.

유피테르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유피테르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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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티리의 소년 벽화, 기원전 17세기, 프레스코 석회석고와 안료, 테라 아크로티리 주거지 선사시대 테라 박물관 [사진=그리스 보물전 사무국 제공]

아크로티리의 소년 벽화, 기원전 17세기, 프레스코 석회석고와 안료, 테라 아크로티리 주거지 선사시대 테라 박물관 [사진=그리스 보물전 사무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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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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