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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 "김정은은 등소평이 될 수 없다…北경제개발 실패할 것"

최종수정 2019.06.17 12:00 기사입력 2019.06.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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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 창간 특별 대담

"중국 베트남은 주민 '이동자유' 보장

지식·정보 접근도 자유롭게 가능해

폐쇄사회 북한에선 있을 수 없는 일

6070세대 권력 쥐는 한 변화 어렵다

계획경제-시장경제 모순 10~20년 갈 것"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시대에 들어 북한은 과학기술과 인재 교육에 많은 공을 들인다. 사회주의 강국, 경제 강국을 건설하려면 '과학 강국'이 돼야 한다는 의지다. 그러나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는 김 위원장의 과학 강국의 꿈, 사회주의 지상낙원의 꿈은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결코 그 꿈을 실현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현대 과학기술 문명의 발전은 정보의 자유로운 공유와 지식의 융합에 기반해 이뤄졌는데 북한은 지구상 그 어느 나라보다 폐쇄적인 국가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북한이 개방을 한다면 중국, 베트남처럼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나.

▲불가능하다. 같은 공산권이라도 정치 구조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중국과 베트남은 공산당 일당 독재이긴 하지만 임기제다. 지도자의 임기가 끝나면 새 사람이 들어왔다. 그런데 북한은 세습제다. 김씨 가문이 끝까지 간다. 일단 여기서 큰 차이점이 있다. 또 중국과 베트남은 경제 개혁에 앞서 주민들에게 '이동의 자유'를 줬다. 미국 갈 사람도 가라고 했다. 북한이 개혁ㆍ개방과 관련해 이동의 자유를 준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주민들이 다 해외로 나가버릴 거다. 그 정책의 후폭풍을 결코 소화할 수가 없다.

-김 위원장은 과학기술을 강조하고 있다. 혹자는 북한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의 중심지가 될 수도 있다고 하는데.

▲덩샤오핑 전 중국 군사위원회 주석은 개혁ㆍ개방을 하면서 가장 먼저 '흑묘백묘론'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이 넓어지게 했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것으로 각자가 자유롭게 의사를 표시하게 했고 정보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가능케 했다. 북한은 이게 안 된다. 주민들이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폐쇄 사회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인데 북한은 그 폐쇄성이 없이는 세습 통치가 불가능하다. 내부 세계와 외부 세계가 연결된다면 절대 존립할 수 없는 체제가 바로 김씨 정권 세습 체제다.

 과학기술의 발전도 첫 번째 조건은 정보의 자유로운 이동이다. 인터넷에 들어가서 필요한 것을 찾고, 외국인과 교류하고 세미나도 해야 한다. 교류와 접촉을 통해 지식도 발전하는데 북한은 그 모든 걸 원천적으로 고립시켜놨다. 북한은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가졌지만 정작 자전거도 자기 힘으로 변변히 못 만들고 있다.


-북한의 시장경제라고 할 장마당이 커지고 있다. 계획경제와 시장경제, 공존이 가능한가.

▲북한이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를 완전히 유지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최대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통해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현 북한 경제에서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전기를 만드는 것이다. 전기 외에도 탄광, 광물 생산 등과 기간공업을 시장경제로 돌릴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또한 북한은 주민과 국가가 선순환하는 구조가 없다. 북한은 세금이 없는 나라다. 세금이 없다 보니 국가재정 구조를 만들지도 못한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시장의 힘이 커지고 경제관념이 바뀌고 있는 거 아닌가.

▲북한의 시장을 자유 진영의 시장은 물론이거니와 중국, 베트남의 시장 형성 과정과 비슷하게 보면 안 된다. 중국은 마오쩌둥 전 국가주석 시절에도 주민들이 자기 월급을 갖고 살았다. 그 월급으로 쌀도 사고 옷도 사는 등 노임에 기초한 체제였다. 그런데 북한은 그렇지 않다. 내가 외무성 부국장 때 월급이 2900원이었는데 당시 농민시장에서 쌀 가격이 1㎏당 3200원이었다. 내 월급과 시장이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스마트폰 개통이 북한에서 400만대를 넘었다고 한다. 북한 경제 변화의 어떤 계기가 될 수 있나.

▲한국이 생각하는 스마트폰의 개념을 북한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도 곤란하다. 우리야 스마트폰을 정보의 원천으로 본다. 근데 북한에서는 아직도 말을 주고받는 전화기 역할이다. 인터넷은 가능해도 내부 망에만 접속이 된다. 스마트폰 보급이 늘고 있긴 한데 이를 통해 '많은 지식이 유입될까' '젊은 세대의 사상이 변할까' 하는 기대를 하기는 좀 어렵다.


-그럼 언제쯤 변화를 기대할 수 있나.

▲지난주 노동신문에 '비사회주의 투쟁을 강화하자'라는 기사가 크게 나왔다. '비사회주의'는 시장경제, 장마당을 말한다. 위에서는 그렇게 아래로 지시를 내리고 있다. 주문과 현실이 상충하는 한계점으로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 충돌이 당장의 시스템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 보는 건 어렵다. 그럼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가능할까 고민해봤다. 내 생각엔 6070세대가 북한의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한 어렵다고 본다. 10년, 20년은 더 갈 것으로 본다.

-남북 경협은 꽁꽁 막혔는데 중국인, 싱가포르인 등은 북한을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인적 네트워크도 쌓고 비즈니스를 한다. 나중에 제재가 풀리고 우리 기업인이 북한에 진출하더라도 그때면 이미 기회를 많이 놓치는 게 아닐까 우려된다.

▲쉽지 않은 문제다. 향후 한국 자본이 북한에 들어가더라도 김정은 체제에서 한국 기업이 투자해 큰 이익을 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주민들이 남한 사람과 접촉하는 걸 최대한 통제한다. 남북한 사람이 교류하면서 주민들이 북한 체제의 모순과 그늘을 볼까 봐 두려워한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대북 제재로 인한 경제 위축이 김 위원장의 통치 자금에도 영향을 줄 것 같다. 해외 대사관의 외화 벌이도 이 때문이 아닌가.

▲북한의 대사관은 진짜 외교 사업만 하는 외교 라인이 있고, 외교관 여권을 갖고 경제활동을 하는 부서도 있다. 그런 부서에 소속된 이는 각자 상납해야 할 할당량이 있다. 이를 채우기 위해 밀수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데 대북 제재가 강화되면서 이런 구조가 대단히 축소된 건 맞는 것 같다. 다만 이것을 북한 경제가 흔들린다는 징후로 보는 건 곤란하다. 북한 해외 공관의 이런 모습은 1960년대, 1970년대에서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예전부터 그래왔다.


◆태영호는 누구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공사로 근무하던 태영호는 2016년 7월 한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망명을 결심하고 대사관을 빠져나오면서 자녀들에게 '이제 노예사슬을 끊어주겠으니 너희들은 자유롭게 살아라'고 했다.

한국으로 오기 전 그는 제빵책을 그러모았다. 빵 가게라도 열어서 먹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이었다. 막상 한국에 와보니 한국이 북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또 잘못 알려진 게 너무 많았다. 통일은 남북한의 현실에 대해 서로가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제는 남북 간 소통의 가교를 자처하고 있다.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공사로 근무하던 태영호는 2016년 7월 한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망명을 결심하고 대사관을 빠져나오면서 자녀들에게 '이제 노예사슬을 끊어주겠으니 너희들은 자유롭게 살아라'고 했다. 한국으로 오기 전 그는 제빵책을 그러모았다. 빵 가게라도 열어서 먹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이었다. 막상 한국에 와보니 한국이 북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또 잘못 알려진 게 너무 많았다. 통일은 남북한의 현실에 대해 서로가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제는 남북 간 소통의 가교를 자처하고 있다.

#약력
 ▶1962년 평양시 출생
 ▶1980 베이징외국어대학 부속중학교 영어과 졸업
 ▶1984 평양국제관계대학 졸업
 ▶1988 베이징외국어대학 영문학부 졸업
 ▶1988~1996년 북한 외무성 유럽국 지도원
 ▶1996~1998년 덴마크 주재 북한대사관 3등 서기관
 ▶1998~2000년 스웨덴 주재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
 ▶2000~2004년 외무성 유럽국 영국 및 북유럽 담당과 과장
 ▶2004~2008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2008~2013년 외무성 유럽국 부국장
 ▶2013~2016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2016년 여름, 대한민국 망명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백종민 선임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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