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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박해일이 그린 인간 仁祖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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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혁 감독 '남한산성'

배우 박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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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황동혁 감독(46)은 영화 '남한산성'의 각본을 쓰며 인조의 불안에 주목했다. 얼굴을 찡그리지 않아도 궐 안에 무거운 구름이 끼길 바랐다. 무심한 얼굴에서 새어나오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 '살인의 추억(2003년)'에서 박해일(40)이 연기한 박현규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도 침착한 표정을 유지한다. 두꺼운 장막처럼 보이지만 금방이라도 외풍에 쓰러질 듯 유약하다. 왕의 권위에 가린 고뇌를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두 차례 사양에도 끝까지 매달려 익선관과 곤룡포를 입혔다.

박해일은 인조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배제했다. 번뇌에 시달린 인간으로 보이길 바랐다. 무능한 면이 나타날 수 있는 지점에서도 괴로운 심정이나 사정에 신경을 기울였다. 그는 "한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에게 매 순간은 선택"이라고 했다. "피나는 번민을 통해 옳은 길을 택해야 한다. 인조를 향한 세간의 시선이 곱지 않지만, 그를 연기하면서 조금이나마 무거운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남한산성' 스틸 컷

영화 '남한산성'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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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은 우리 역사에서 치욕스런 사건 가운데 하나인 병자호란을 다룬다. 청나라의 태종은 군신관계를 요구하며 조선을 침공한다. 인조는 한양을 지키는 요새였던 남한산성으로 피신한다. 50여일분의 식량과 군사 1만3000명으로 45일간 청나라에 맞서 싸운다. 그러나 강화도가 함락되고 왕실 가족이 모두 인질로 잡히자 남한산성 밖으로 나와 투항한다. 청 태종에게 항복의 표시로 세 번 큰절을 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바닥에 박는다.

박해일은 아픈 역사를 절제된 표현으로 재현한다.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청 태종 앞에 무릎을 꿇는다. 담담한 표정으로 머리를 숙이며 참담하게 가라앉은 어둠을 나타낸다. 느리고 긴 호흡이지만 무너질 듯 말 듯 위태로운 돌탑과 같다. 그는 "보다 참담하게 그릴 수 있었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많은 관객이 차분하게 3배 9고두를 곱씹길 바랐다. 인조가 무릎을 꿇으면서 말하고자 한 무언가를 그대로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 '남한산성' 스틸 컷

영화 '남한산성'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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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에게 3배 9고두는 숙명이었을 수 있다. 그의 동생 능창군은 광해군의 의심을 받아 역모의 수괴혐의로 체포되고 자살했다. 광해군에게 집까지 빼앗기고 아버지 정원군마저 4년 뒤 세상을 떠났다. 절망과 불안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인조는 태조 이성계 이래의 외교노선인 존명사대를 앞세워 반정을 일으키고 왕위에 올랐다. 당연히 국왕으로서 인조의 존재근거는 존명사대였다. 정묘호란으로 후금과 형제의 맹약을 맺으면서 유명무실해졌으나 심리적으로는 전혀 굴복하지 않았다. 공포상황에서 도피하기보다 정면으로 부딪혀 반정을 성공시켰을 만큼 그는 용감하고 고집이 세었다.
박해일은 이런 면면을 주화파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과 척화파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의 대립 신에 반영했다. 설득과 신념이 오가는 첨예한 대립에서 흘러나오는 격한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그치지 않는다. 고뇌에 찬 얼굴로 그들의 말을 되뇌며 적절한 해결책을 희구한다. 이들을 따로 불러들여 강구책을 세우는 신에서는 보다 분명한 말투를 구사하기도 한다. 무능함이 드러나는 대사에서도 다르지 않다. 군량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에 "식량을 적게 먹이되 너무 적게 먹이지는 말라"고 지시하는데, 군사들의 참혹한 현실을 이해하는 태도를 보인다.

영화 '남한산성' 스틸 컷

영화 '남한산성'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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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일은 "신하들의 이야기에 좌지우지되는 듯 보일 수 있으나 합당하지 않은 의견이 나오면 바로 맞받아칠 줄 아는 능동적인 인물"이라며 "최명길, 김상헌과의 삼각 구도에서 화학작용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절제된 톤으로 신하들과 커다란 파도의 출렁임을 보이면서 세세하게 감정을 조절했다"고 했다. 인조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기 때문일까. 그는 주화파와 척화파 어느 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았다. "판단을 유보하고 싶다. 생존에 마음이 더 쏠리지만, 관객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고 싶다. 소통이 정치의 기본 아닌가(웃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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