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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 가이드]박제가 된 명절, 당신에겐 어떤 의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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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의 과거, 현재, 미래...고유 의미 사라지고 '휴일'이 된 명절, 시대적 변화에 따라 계승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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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 다가왔다. 한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있었다. 조상에 정성들여 차례를 지낸 후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음식을 즐기며 도란도란 정을 나눴다. 그러나 요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추석이라고 하면 조상, 차례라는 말 대신 연휴, 휴가 등이 떠오른다. 이혼 급증, 가족ㆍ이웃간 다툼, 명절 증후군, 꽉 막히는 고속도로, 비싼 물가 등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칠되고 있다. 추석과 설 등 명절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변화를 진단해 본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 불만인데 명절을 굳이 지내야 하나요?" 직장인 이모(45ㆍ남)의 말이다. 10일간 이어지는 추석을 맞아 벌써부터 '명절증후군'에 시달리는 집 사람과의 신경전에 지쳤다. 긴 연휴 동안 며칠을 처갓집에서 보내고 며칠을 본가에서 보낼 지에서부터 의견이 갈렸다. 안 그래도 빡빡한 살림살이에 경기가 어려워 보너스를 못받는 바람에 경제적 어려움도 만만치 않다. 장남이라 제수 비용과 부모님 용돈까지 챙겨야 하는 데다 본가-처가를 왔다 갔다 하려면 교통비 부담도 크다. 장시간 운전을 하고 달려가 가족ㆍ친척들과 만나도 어렸을 때와 달리 재미도 없다. 오랜만에 만난 조카들의 얼굴이 낯설고 '상처준다'는 말을 하도 들어 꺼낼 말이 없이 서먹서먹할 뿐이다.
워킹맘 조모(43)씨도 설ㆍ추석이 반갑지 않다. 손도 까닥 안하고 누워서 TV만 보는 남자들의 뒤통수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몇시간씩 쪼그리고 앉아 전을 뒤집고 설겆이를 하다 보면 손목 근육통과 주부습진이 도진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이 생각없이 툭툭 던지는 말이나 어르신들의 '비교'에 마음도 상한다. 특히 시어머니와의 신경전은 견디기 힘들다. 아들들이 손 끝에 물도 묻히는 꼴을 보지 못하는 시어머니는 며느리들의 중노동은 당연스럽게 여긴다. 이런 저런 말을 던질 때마다 눈치를 봐야 하는 것도 괴롭다. 조씨는 "오죽했으면 가짜깁스가 명절 인기 상품이 됐겠냐. 가능하면 직장에서 당직이라도 섰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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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요즘 추석을 비롯한 명절은 온 나라가 잔치 분위기였던 이전과 크게 다르다. 농경문화의 산물이었던 명절은 제사ㆍ휴식을 통해 공동체를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명절의탄생' 저자인 하수민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위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명절의 전통은 고려에서 삼국의 명절을 통합해 국가 의례로 제도화하면서 설, 정월보름, 한식, 삼짇날, 단오, 추석 등 오늘날과 유사한 모습을 갖게 됐다.

특히 한국인들은 일제시대ㆍ군사독재의 민족문화 말살 정책에도 불구하고 설과 추석 등 명절을 지켜냈다. 일제는 그레고리 양력 도입, 근대화와 게으름 타파 등을 명분으로 공휴일 제도를 도입하면서 설과 추석 등 민족의 명절을 모두 배제시켰다. 해방 이후에도 국제사회의 명절을 의식하고 생산성을 중시하는 지식인층의 인식과 군사독재 정권의 부정적인 정책에 따라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끊임없이 명절에 생업을 멈추고 쉬며 즐기는 문화를 유지해왔다.

민족의 명절은 한강의 기적을 세계에 알린 1988년 서울올림픽 전후로 설과 추석이 본래 이름을 되찾고 공식화되면서 제도권에서 정식으로 부활했다. 하수민 전 연구위원은 "구한말 이래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도태되었다는 위기의식이 명절 문화를 비판하게 된 바탕이었다"며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명함을 제대로 갖추게 된 것이 우리 전통 문화를 돌아보게 하고 자부심을 가지게 한 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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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00년대 들어 명절은 또다시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산업화ㆍ개인화로 인해 '제사와 휴식', '공동체의 강화'라는 본래의 의미가 사라지는 대신 '휴일'의 의미가 강조되는 등 변화의 물결이 거세다.
추석의 상징인 벌초의 경우 문중별ㆍ집안별로 하다가 요즘은 벌초 전문업체에 의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제수도 직접 장만하기보다는 장이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다. 울산 사는 주부 박은경씨(남구 달동 거주)는 "차례음식은 주로 농수산물 도매시장, 대형마트에서 주로 본다"며 "설 전날 가족들과 함께 다같이 장을 보러가서 떡과 전 등 필요한 모든 음식물과 반찬거리, 해산물들을 구입한다"고 말했다. 아예 제사를 지내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서울시 성북구 정릉의 한 주민은 "명절에는 따로 제사를 지내거나 하지 않고 고향에 간다"며 "명절마다 가는 편이라 일년에 최대 6차례까지 고향에 간적이 있다"고 말했다.

명절을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한다는 의식도 옅어지고 있다. 지난해 3월 여론조사업체 '마이크로밀엠브레인'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1.3%는 "설날이라고 항상 가족들이 모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66%는 "앞으로 가족 및 친지가 모두 모여 차례를 지내는 모습을 보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어르신들의 역귀성도 이젠 흔한 일이 됐다.

명절을 단순히 '휴일'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명절이 어떤 의미인지 묻는 질문에 '휴일'이 74.3%로 가장 많았고, 이어 가족을 만날 수 있는 좋은 날(71%), 가족ㆍ친척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느껴지는 날(65.2%) 등의 순이었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1인가구로 급격히 분화하고 있는 가족 구성으로 인해 취업준비생ㆍ독거노인 등 혼자서 추석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혼추족'이라 불리는 이들은 대부분 명절이라고 해서 특별히 하는 일이 없이 집에서 친구들을 만나거나 영화를 보는 등 휴식을 즐기는 경우가 많다.

명절을 맞아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상당수다. 특히나 올해는 사상 최대 10일간 연휴가 지속되면서 해외 여행객이 최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인천공항공사에 따르면, 오는 29일부터 10월 9일까지 11일간 인천공항 이용객이 약 195만 명으로 예상된다. 여행업계는 올해 추석 연휴 출국자는 사상 최대인 1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추석 등 명절은 본래의 의미를 잃어 버린 채 사라져 버릴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차례가 없어지는 등 전통의 양식과 의미는 퇴색하더라도 휴식을 취하며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고 유대와 연대감을 강화하는 계기로 계속 자리를 잡아갈 것이라는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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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번 추석처럼 임시공휴일까지 지정해 국민들의 휴식 시간을 늘려 소비를 촉진, 경제 활성화의 원동력으로 삼으려는 정책을 펴고 있다. 경제연구기관들은 임시공휴일 지정에 따른 경제 파급효과가 최소 5조원에서 최대 19조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수민 전 연구위원은 "제사는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 명절은 원래 제사와 축제가 공존하는 장이었지만 조선시대부터 제사가 전부인 것 처럼 된 측면이 있다"며 "오늘날에는 명절이 황금 연휴로 인식되고 있고 그 주된 행사는 가족여행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립민속박물관 관계자는 '모두가 즐거운 명절'을 강조했다. 그는 "가사 노동의 균등한 분배와 친척ㆍ가족간의 배려, 다같 이 즐길 수 있는 행사ㆍ이벤트 마련 등을 통해 즐거운 명절이 되어야 한다"며 "형식과 내용이 변하겠지만 휴식날이고 함께 즐기며 어우리지는 축제의 장으로써 친구ㆍ친지들을 만나 모임과 놀이를 통해 연대감과 정체성을 확인하는 자리로 시대적 변화에 맞게 계승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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