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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국정교과서가 우리에게 깨우쳐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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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건데 중·고교 시절 역사 수업시간은 솔직히 재미 없었다. 한자로 된 역사 용어가 생소한데도 일일이 그 뜻을 짚어가며 공부할 시간이 없다 보니 통째로 외우기 일쑤였고, 그래서 시험을 앞두고 벼락치기로 공부하는 따분하고 졸린 암기과목 중 하나였다.

언제부턴가 유명 한국사 강사가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연예인들에게(시청자에게) 한국사를 가르치거나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걸 듣다 보면 "왜 역사 공부에 소홀했나" 후회가 됐다. 흘러간 그 엉겁의 역사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노라면 "아, 그래서 그랬구나",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똑같구나" 하고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비슷한 처지의 어른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유튜브에 올라온 한국사 강의에 접속자 수가 폭주하고, 서점가에서 역사를 다룬 책들이 불티나게 팔린다는 소식에 은근히 마음이 놓였다. 한 케이블채널에서 방송한 스타강사의 역사 강의가 최고시청률 10%대를 기록한 것을 봐도 역사공부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같은 한국사 열풍에 국정 역사교과서도 한 몫을 했다. 박근혜정부 들어 역사교과서 국정화 파동이 일자 '교과서 어느 부분이 어떻게 잘못됐느냐' 하는 논란에 국민적인 관심이 높아졌다. 2015년 10월 정부가 중ㆍ고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확정하고 한달 뒤부터 집필 작업을 시작하더니 1년여만인 지난해 11월28일 교과서 현장검토본이 나왔다. 하지만 그 사이 '최순실 게이트'라는 전대미문의 국정농단 사태로 국정교과서 정책은 이미 추진동력을 잃은 뒤였다. 급하게 나온 교과서는 그만큼 오류도 많았다.

교육부는 결국 '2017년 3월부터 전국 모든 중·고교에 국정 역사교과서를 전면 적용한다'는 당초 계획을 철회하고, 대신 "2017년 3월부터 연구학교를 지정해 교과서를 시범 사용한 뒤 2018년 3월부터는 학교 선택에 따라 국정과 검정을 혼용하겠다"고 밝혔다. 연구학교를 희망한 학교는 전국에서 단 한 곳에 불과했고, 또 다른 대안으로 제시한 보조교재도 전체 학교의 1.4%만이 신청했다.
논란과 혼란의 연속인 이 과정은 소모적이지만 동시에 적지 않은 교훈을 주고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이 나오게 된 과정 자체가 권력의 횡포였고, 국민 대다수의 뜻에 역행해 추진된 국정교과서가 끝내 '식물교과서'로 전락하는 과정은 민의를 저버린 정권이 어떻게 몰락하는지를 그대로 보여줬다.

국정 역사교과서는 이제 폐기 수순에 들어가고, 검정교과서는 다시 쓰여질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마지막 페이지에는 겨울을 난 20번의 촛불집회와 이듬해 봄에 결정된 대통령의 탄핵, 그리고 파면 이틀만에 청와대를 떠나면서도 해맑게 웃던 전직 대통령이 기록될 지 모른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혼란한 격동의 역사, 그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조인경 사회부 차장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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