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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다큐멘터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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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가 탄핵 정국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 영화는 영남과 호남이 지역감정 없이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추적하며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을 촬영한 다큐멘터리이다. 상영관조차 찾기 힘든 열악한 환경을 뚫고 박스오피스에서 10위권을 오르내리며 어느덧 20만 관객을 목전에 두고 있다. 작품의 아쉬운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흥행(역대 다큐멘터리 흥행순위 4위)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가결 이후 촛불 정서가 관람 열기로 이어진 결과로 볼 수 있다.

때를 잘 만난 '무현, 두 도시 이야기'와는 달리 독립영화진영에서 만들어진 대부분의 다큐멘터리는 개봉관에서 단 하루도 상영하지 못한 채 사장된다. 제작자가 나서지 않아 자금난에 시달리고 우여곡절 끝에 완성을 해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개봉관조차 찾기 힘들어 흥행은 재앙을 맞이한다. 이 악순환은 오랜 기간 계속되고 있다. 100년이 넘는 영화의 역사 속에서 다큐멘터리는 ‘저주 받은 장르’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영화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과학에서 예술로 전화하던 영화의 모습을 다시 들여다보자. 영화라는 예술은 다큐멘터리의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1895년 파리에서 상영된 뤼미에르 형제의 세계 최초의 영화 ‘공장에서 돌아오는 사람들’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는 19세기 파리의 모습을 카메라라는 기계 장치로 기록한 다큐멘터리였다. 기록을 한다는 것은 영화의 본질이다. 자본과 손을 잡고 돈을 버는 새로운 수단으로 변하기 전까지 영화라는 새로운 예술 매체는 기록과 실험을 반복했다.

상업영화 역사의 이면에는 영화를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린 다큐멘터리 작가들의 계보가 있다. 러시아의 지가 베르토프는 모든 다큐멘터리 감독의 스승이다. 전통적 내러티브에 종속된 영화적 관습을 거부하면서 ‘카메라를 든 사나이’를 통해 새로운 기법으로 볼셰비키 혁명 이후의 세상을 찍었다. 네덜란드의 요리스 이벤스는 카메라를 들고 전 세계를 누볐다. 스페인 내란, 중국의 문화혁명, 베트남 전쟁의 한복판에 그가 있었다. 그의 카메라는 언제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 진영에 서 있었다. 프랑스에는 크리스 마르케가 있다. 다큐멘터리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은 그에게 다큐멘터리의 한계란 없었다. 마르케는 미디어가 현실을 어떻게 왜곡하는가를 역방향에서 파고들어 현실의 모순을 카메라에 담았다.

일본에는 양심과 성찰의 작가 오가와 신스케가 있다.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텍스트의 완성도가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믿었던 그는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피사체 속으로 직접 들어갔다. 1960년대 말 나리타공항 건설 계획이 발표되자 해당 지역 농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되었다. 농부들은 정부를 상대로 지난한 싸움을 시작했다. 오가와는 이들의 싸움을 기록하기 위해 현장을 찾아갔으나 촬영을 거절 당했다. 그러자 오가와는 영화 장비를 창고에 집어 던지고 농부들과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자신이 직접 신공항 건설의 피해를 경험하고 증인이 되었다. ‘농부’ 오가와 신스케는 9년에 걸쳐 ‘산리즈카 7부작’을 완성했다.
다큐멘터리는 이런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가 꿈의 공장에서 찍어낸 백일몽이라면 다큐멘터리는 영화의 육체이다. 영화의 피이며 살이면 뼈인 것이다.

P.S. 지난 13일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이 제작 3년 만에 방송을 통해 공개되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분노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진실규명의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다큐멘터리의 힘이다.





임훈구 편집부장 stoo4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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