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그 정경에선 지금 이 나라가 처해 있는 혼란과 위기는 멀어 보였다. 지리적으로도 그렇지만 도시 거리의 시위와 한가로운 그 풍경의 대조에서 그곳은 서울의 광화문 광장으로부터 꽤나 멀어 보였다.
그런데, 남도의 정경으로 내 마음이 순해진 것인가. 가냘픈 서정에 내 거친 심사가 관대해진 것인가. 나는 그런 분노와 자책을 너무 때늦은 후회라고 원망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의 재앙을 부른 어리석음이라고 질책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자연을 닮은 것인가, 자연이 사람을 닮은 것인가. 품에 안아주는 듯 이 유순한 산천에서 나고 자란 이들. 억센 사투리로도 따뜻한 인심을 감추지 못하는 선한 마음이어서, 그들은 부모를 잃은 것이 불쌍하다고 가여워하는 그 마음으로 온갖 결함과 미달에도 지금의 대통령을 뽑아 주었던 것이 아닐까. 그것은 해방 직후 일본인에 대한 보복이 없었던 것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모질지 않은 우리네 어진 마음이기도 한 것이었다.
100만명의 촛불이 외쳐도 ‘나는 잘못한 게 없다’며 버티는 청와대의 최고권력자가 봐야 할 것이 바로 그 마음이다. 그 어질고 선량한 마음이다. 그것이 자신에게 베풀어 준 선량한 백성들의 선량한 마음에 대해 최소한으로 보여야 할 예의며 의무다. 대한민국을 진창으로 밀어 넣었음에도, 자신과 주변을 오물 범벅으로 만들었음에도 뉘우칠 줄 모르는 어리석은 권력자가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길의 시작은 그 어진 마음을 보는 것이다.
그 아이들의 눈망울이 보내는 분노 이상의 분노, 함성 이상의 함성, 그것은 남해 금산 산장에서 만난, 배운 건 없으나 머릿속에 노래 2500곡을 갖고 있는 어느 총명한 할머니가 보여준 어진 마음이기도 하다. 착한 이 땅 백성들의 마음이며 이 금수강산 산천의 마음인 것이다. 오만한 권력자여, 부끄럽지 않은가. 아니 오히려 고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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