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민심이 폭발한 직접 원인은 박근혜 대통령의 헌정유린과 '비선 실세 국정농단' 사태가 꼽힌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세월호 사건, 위안부 한일합의, 노동시장개혁, 금수저·흙수저론 등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으로 켜켜이 쌓인 울분이 있었음은 두말이 필요 없다. 한마디로 시민들은 박 대통령이 '완전한 실정'을 했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렇지만 요구는 분명하고도 한결같았다. 박 대통령의 ‘하야’와 ‘퇴진’ 바로 그것이었다. 100만명이 운집해 손에 든 ‘평화 촛불’은 "청와대여 결단하라"고 촉구하는 울분의 함성이자 국민명령이었다. 이 함성은 과격시위가 아닌 평화로운 집회 속에 울려 퍼졌기에 전 국민의 공감을 얻었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빛난 집회였다. 그 함성은
헌법을 유린하고 불법행위를 저지르도록 방조한 박근혜정부와 최순실과 그 부역자들에 비해 국민이 헌법적 도덕적으로 더 우월하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보내줬다.
그렇기에 이번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대한민국이 바뀔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포털 네이버에는 "기득권은 법을 조롱하고 국민을 개·돼지 취급하며, 대통령은 국민의 뜻 대신 최순실의 뜻대로 국정을 운영하지만 국민들은 다시 한 번 희망을 염원한다. 믿을 것은 국민의 저력밖에 없다"거나 "정권이 위기일 뿐 대한민국은 건재하다", "국민은 1류인데 정치권은 3류"라는 글이 올라왔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촉발된 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측근 경질, 야권 국무총리 발탁, 검찰 수사 수용 선언, 총리 추천권 국회 이양 등의 민심 수습책을 잇따라 내놨지만 민심에 아무런 효험을 내지 못했다는 게 이번 촛불집회로 확인됐다. 단편 수습책으로 일관해서는 분노한 민심을 달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을 강조하고 국정 장악에 힘을 쏟는 것도 무리다. 여당인 새누리당 내부에서조차 하야·탄핵이 거론되고 있는 지경이다. 이 때문에 제 2의 6.29 선언 같은 결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촛불집회는 이번 주말에도 이어진다. 대통령이 결단을 늦추면 늦출수록 정국 안정은 멀어질 뿐이다.
박희준 편집위원 jacklondo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