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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읽다]수학과 천문학이 토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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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초과학의 현장을 가다

▲카블리연구소 연구원들은 매일 오후 3시 오픈 룸에 모여 티타임을 갖고 토론을 즐긴다.

▲카블리연구소 연구원들은 매일 오후 3시 오픈 룸에 모여 티타임을 갖고 토론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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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일본)=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일본의 기초과학은 매우 탄탄한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지난 26일부터 29일 동안 일본 도쿄에 있는 이화학연구소(RIKEN)와 고에너지가속기연구소(KEK), 도쿄대학에 있는 카블리연구소 관계자와 만나 일본 기초과학의 경쟁력에 대한 취재에 나섰습니다. 200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마코토 고바야시 박사를 만나 일본 기초과학의 현주소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RIKEN은 시부사와 에이이치 박사가 1913년 "지금부터 세계는 이화학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판단한 뒤 관계자들을 모아 1917년에 설립된 연구소입니다. 와코(Wako)에 위치하고 있는 RIKEN은 물리, 화학, 생물, 의과학, 뇌과학 등 기초과학의 전 분야를 아우르는 일본의 자연과학종합연구소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RIKEN이 발전하게 된 배경에는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1921년 '주임연구원 제도' 도입과 산학복합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시점이었습니다.
▲이화학연구소에서 한 여성이 3D 관련 영상을 보고 있다.

▲이화학연구소에서 한 여성이 3D 관련 영상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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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자율권과 벤처개념 도입=주임연구원제도는 인사, 연구테마 등을 주임연구원에게 맡겨 이른바 자율권을 제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산학복합체'라는 개념은 지금의 벤처 개념으로 연구소 내에 벤처기업을 키워 독립시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1921년부터 일본은 기초과학에서 연구원의 자율권이 중요하고 산학협력을 통한 기업체 육성이라는 모토를 내 걸었습니다.

RIKEN도 고난의 시절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젠스 윌킨슨 RIKEN 홍보실장은 "1948년부터 1958년까지 RIKEN은 순수연구만 하는 과학연구소로 축소됐다"며 "이 때를 두고 '우울했던 10년'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RIKEN은 주임연구원제도를 중심으로 기반센터와 전략센터, 산업환원본부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RIKEN의 뇌과학연구소(Brain Science Institute)도 찾았습니다. BSI는 1997년 RIKEN 내에 만들어진 연구소입니다. 2016년 현재 약 456명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BSI의 특징을 꼽는다면 기업과 공동연구센터가 많다는 데 있습니다. 토요타, 올림푸스 등 기업체와 협력센터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죠. BSI는 구성될 때부터 독특한 국제연구소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현재 18%는 일본인이 아닌 다국적 출신 연구원들입니다.
BSI는 특히 후학 양성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젊은 연구자를 위한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열고 한 달에 한 번씩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하게 합니다. 또 전 세계 뇌과학 분야 석학을 초청해 정기적으로 대화하는 행사도 개최하고 있습니다.

▲KEK 가속기

▲KEK 가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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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 과학의 정점, 가속기=쓰쿠바(Tsukuba) 에 있는 KEK에는 총 길이 약 3㎞에 이르는 원형 구조를 가진 가속기가 있습니다. 이 가속기는 기존 가속기보다 40배나 높은 휘도를 자랑합니다. 이번에 구축된 가속기는 전자 등의 소립자를 빛의 속도로 가속시켜 그 본질을 알아내는 기초과학의 최고 정점에 있는 장치입니다. 최근 우리나라 포항공대에도 방사광 가속기가 만들어졌고 현재 기초과학연구원(IBS)에 중이온 가속기가 건립 중에 있습니다.

200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고바야시 박사도 현재 이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고바야시 박사가 건넨 명함에는 독특한 직책이 쓰여 있었습니다. ‘특별영예교수(Honorary Professor Emeritus)'였습니다. 고바야시 박사는 "일본 기초과학의 역사는 메이지 유신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며 "일본도 처음에는 미국과 유럽 등 과학기술에 앞선 나라를 따라가는 추격자였다"고 설명했습니다.

고바야시 박사는 "추격자로서 학습과 연구 능력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 선도자로 나서는 것이 중요한데 일본은 적절한 시기에 선도자로 탈바꿈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고바야시 박사는 현재 일본의 기초과학이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차세대 연구자를 키워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죠. 그는 "자기 돈을 들여 공부해야 하는 대학원생들의 대우가 매우 좋지 않다"며 "차세대 연구자를 어떻게 효율적이고 집중적으로 육성할 것인지는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카블리연구소 전경

▲카블리연구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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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연구시스템, 카블리연구소=지난 27일 가시와(Kashiwa)에 위치한 카블리연구소를 찾았습니다. 카블리연구소의 공식 명칭은 '우주의 물리와 수학을 위한 카블리연구소(IPMU, Kavli Institute for the Physics and Mathematics of the Universe)'입니다. 카블리연구소 빌딩은 독특한 구조로 돼 있습니다. 나선형으로 이뤄져 있죠.

2층 오픈 공간에서부터 나선을 따라 한 계단 오를 때마다 연구실이 하나씩 배치돼 있는 구조입니다. 높은 계단으로 올라가면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낮은 층에서부터 높은 층으로 올라갈수록 수학, 물리, 천문 연구실이 들어서 있죠. 갈릴레오가 말한 "우주는 수학의 언어로 쓰여 있다"고 말한 문구가 큼지막하게 내걸려 있습니다.

하루야마 토미요시 카블리연구소 특임교수는 "카블리연구소는 우주의 기원은 물론 지구와 생명 과학을 연구 목적으로 하고 있다"며 "자유롭게 연구하고 서로의 연구 결과를 이야기하는 곳이 카블리연구소"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날 카블리연구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40분. 매일 오후 3시에 연구자들이 한 공간에 모여 간단한 음식을 들면서 '티타임'을 갖는다고 합니다. 이날도 어김없이 티타임이 열렸고 그곳에서 우리나라 연구원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서울대에서 석박사를 끝낸 뒤 현재 카블리연구소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고 있는 주창우 연구원은 "거대과학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커뮤니케이션"이라며 "카블리연구소의 티타임은 전 세계적으로 독특한 시스템으로 이 모임을 통해 연구자들은 서로의 연구결과를 나누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말했습니다.

일본 기초과학은 우리나라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무엇보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사회 인프라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선향 일본대사관 과학기술정보통신관은 "일본은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사회 인프라'의 일부로 보고 있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더라도 지속적으로 지원을 한다"며 "도로와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이 정권이 바뀌었다고 중단할 수 없는 만큼 일본은 기초과학을 이런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200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고바야시 박사.

▲200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고바야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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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코토 고바야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과학의 원동력은 호기심"

모코토 고바야시 박사는 '대칭성 붕괴'를 처음 규명해 우주와 인류의 존재에 관한 근원적 현상을 해명한 업적으로 200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현재 KEK에서 '특별영예교수'로 있다. 고바야시 박사는 "추격자에서 선구자로 나서는 시점이 중요하다"며 "과학의 원동력은 호기심이며 다양한 그 호기심을 사회가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노벨과학상의 경쟁력이 궁금하다
▲메이지와 근대시대를 거치면서 일본은 많이 변했다. 미국과 유럽을 따라가기 위해 무척 애썼다. 어느 정도 학습과 연구능력이 쌓였을 때 추격자에서 선두자로 나설 수 있었다. 그 시점이 무척 중요했다.

-강연을 많이 했을 텐데 특별히 강조하는 점이 있다면.
▲젊은 연구원들이 많아지기를 언제나 원한다. 과학의 원동력은 호기심이다. 개인의 교육과 경험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차이점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다양한 호기심은 사회가 인정해 주는 것, 그것이 과학이 필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한국의 기초과학에 대한 생각을 알고 싶다.
▲한국은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다. 젊은 과학자들도 많고 정책적 투자도 많은 것으로 안다. 경제적 발전이 있었기 때문에 이 같은 성과를 당연할 것이다. 다만, 기초부문에 이르면 부족하지 않나 생각한다.

-융합복 시대라고 한다.
▲인위적으로 과학은 융복합이 이뤄지는 학문은 아니다. 학문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융복합이 필요한 부분이 생긴다. 이는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가 깊어질수록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분야이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계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넓은 시야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과학자들에게 필요한 자세가 있다면.
▲자신의 머리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발견했다는 것을 기뻐할 줄 알아야 한다. 이 두 가지만을 생각한다면 과학자들은 행복할 것이다.




도쿄(일본)=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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