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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불륜' 주도권, 여성이 잡았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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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윤의 '시네한수' - 아내의 반란에서 결혼의 모순으로 초점 옮겨간 외도극

사진 = 영화 '질투는 나의 힘'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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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희윤 작가] “나는 간통은 해도 강간은 안 해!”
영화 ‘질투는 나의 힘’에선 꽃미남 박해일이 나이도 많고, 키도 작으며 성격도 별로인 문성근에게 번번이 여자를 뺏긴다. 결정적으로 아내와 자식까지 있는 이 남자, 간통은 해도 강간은 안 한단다. 한술 더 떠 나중엔 박해일 에게 훈수라도 두듯 “부인한테도 잘하고 애인한테도 잘하면 되지. 바람 안 피우고 부인한테 못하는 남편보다 그게 백배 더 낫다”고 항변한다. 처음엔 갸우뚱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설득(?)당하게 되는 문성근의 논리는 간통법이 건재했던 13년 전 그때나 간통법이 폐지된 지금에나 법의 테두리 밖에서 대중을 한결 같이 사로잡는다. 가정과 애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은 현대인의 욕망이 투영된 탓이다.

사진 =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 스틸 컷

사진 =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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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남편, 그리고 애인은 양립 불가능?

우리는 아직 두 집 살림을 완벽하게 해낸 이들의 모험담을 제대로 들을 기회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외도가 완전하려면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몰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밖으로 새어 나온 이야기는 어느 한쪽이 파탄 났거나, 이미 이별한 뒤의 고백일 테니 영화는 끊임없이 불륜을 소재로 굽고 볶고 찌고 썰고 짜내는 변용을 가해서 대중에게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엄정화는 대범하게 두 집 살림을 척척 해낸다. 위험한 관계가 폭로될까 걱정하는 애인에게는 당당히 말한다. “난 들키지 않을 자신 있어”라고. 많은 여성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박수를 보냈다. 결혼과 연애를 조화롭게 이끌어가는 그녀의 모습에 자신을 대입시키며 욕망을 키우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했다. 이게 벌써 14년 전의 이야기, 그렇다면 요즘엔 불륜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

사진 = 영화 ‘인간중독’ 스틸 컷

사진 = 영화 ‘인간중독’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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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일상을 적시는 봄비처럼

영화 ‘인간중독’은 정서적 교감이 실종된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송승헌과 임지연이 서로의 고독을 알아보고 치명적 사랑에 빠져드는 과정을 그려낸다. 전쟁 한가운데서 군인사회를 배경으로 부하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는 대령의 마음은 긴박한 상황, 금기시된 관계, 폐쇄적인 조직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더 위태롭고 불안하다. 그가 갖고 있던 전쟁 중에 생긴 트라우마를 아내 조여정이 살피고 어루만졌다면 그의 마음이 밖으로 향했을까? 이들 부부의 대화 씬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건조하고 공허하다. 말라붙은 관계는 의도했든, 무의식적 발현이든 외도의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모양이다.

핀란드의 아름다운 설경이 눈길을 사로잡는 영화 ‘남과 여’의 공유와 전도연은 일상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설원에서 순간적 감정에 이끌려 서로에게 몰입한다. 각자 가정이 있는 그들은 각각 우울증에 걸린 딸과 자폐증을 앓는 아들을 키우는 아빠와 엄마다. 공유의 아내는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전도연의 남편은 신경정신과 전문의지만 아내에게 무심하다. 가정에서 사랑과 충일함을 느낄 새 없이 자신을 끊임없이 고갈시키는 이들은 우연한 계기로 아이들을 각각 핀란드의 국제학교에 보내며 마주치게 되고, 급작스런 기상악화로 고립된 공간에서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들의 끝내 각자의 자리로 되돌아가지만, 배우자를 향한 사랑이 아닌 자식을 위한 책임감이 발목을 붙잡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이에 대한 헌신으로 스스로를 태워버린 채 마음에 재만 남은 그들의 마음을 서로의 반려자가 한 번이라도 제대로 살폈다면 차가운 설원의 로맨스는 그저 비슷한 처지의 학부형 사이의 친분과 우정에 그칠 수 있지 않았을까.

사진 = 영화 ‘춘희막이’ 스틸 컷

사진 = 영화 ‘춘희막이’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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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같은 처첩의 우정

‘불륜’이라는 단어가 주는 자극보다, 여기서 파생된 관계가 기적에 가까운 우정을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 ‘춘희막이’는 본처 최막이 할머니와 세컨부(Second + 婦, 최막이 할머니가 춘희 할머니를 지칭하는 단어로 ‘첩’의 다른 표현) 홍춘희 할머니의 기묘한 동거를 그려내고 있다. 사라호 태풍과 마을을 휩쓴 홍역에 아들 둘을 잃은 본처 앞에 어느 날 남편이 젊은 여인을 데려온다. 아들만 낳으면 보내버리려 했는데, 이 여인 지적장애가 있다. 결국, 함께 살게 된 두 여인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도 계속돼 46년이란 시간 동안 울고 웃으며 애증의 세월을 함께하고 있다. 시대적 상황이나 관습에 비춰볼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대를 잇기 위해 첩을 들인 일을 불륜이라 지칭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법이 일부일처제를 규정하고 있는 때였음을 상기할 때 아들 생산만을 강요한 가부장적 사고관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당사자인 할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남아있는 막이 할머니는 춘희 할머니를 보살피고 때로는 구박(?)하기도 하며 자신이 짊어지고 가야 할 운명이자 책무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다른 의미의 ‘너는 내 운명’인 셈이다.

사진 =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스틸 컷

사진 =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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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결혼생활 중에 여자를 만날 때 잠시 잠깐 쾌락의 도구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여자는 사랑에 빠진다는 게 남자와 다른 점이다.”

마초적 남성의 편협한 시선인가 싶은 발언은 가수 한대수가 한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속내다. 그는 과거 자신의 외도로 이혼 위기를 맞았으나 무사히 넘겼고, 이후 아내의 외도로 결국 첫 결혼 생활이 파경에 이르렀다고 고백한다. 1950년대 ‘자유부인’에서부터 60년대 ‘하녀’, 80년대 ‘애마부인’, 2010년대의 ‘하녀’까지 불륜을 소재로 한 영화의 제목에서부터 여성은 불륜의 대상으로 소비되어 왔다. 남성의 욕망이 사회적으로 쉽게 용인되고, 이를 감내하던 아내의 반란이 주 소재로 다뤄졌다면 최근 영화 속 불륜의 주제는 여성의 욕망과 ‘불륜’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결혼제도의 모순을 꼬집는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는 폴리아모리 (비독점적 다자연애)를 결혼제도 안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한 여자의 고군분투를 다뤘다는 점에서 혁신적인 내용으로 볼 수 있지만, 관객들의 거부감은 손예진의 미모로도 상쇄되지 않은 반응으로 이어졌다.

결혼과 가족에 있어 현실적 상황에 맞는 조율, 그리고 하나의 지배적인 통념을 넘어 다양한 개개인의 태도와 생활양식을 배려하고 이들이 공존하는 방향으로 부부관계가 나아가고 있는 사회적 추세에도 불구하고 불륜은 계속될 것이다. 생리학적으로 이성 간의 사랑의 유지 기간은 3년에 불과하며 자유를 희구하는 인간의 생래적 욕망이 일부일처제라는 법에 제한 한 것이 불과 200여 년에 불과한 점을 상기해본다면 말이다. 이왕에 다뤄질 불륜이라면 보다 새로운 시선과 생각할 논지를 제공하는 문제적 작품을 스크린에서 만나고 싶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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