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와 달리 지금 공방의 대상이 되는 반테러법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9ㆍ11테러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에서 제정한 애국자법(PATRIOT Act)이 그 시작이다. 물론 근대국가의 1차적 임무가 질서유지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나 테러에 대비하는 법체계를 원래 갖고 있는데, 애국자법의 특징은 정보기관의 활동에 대한 영장주의 등의 법적 제한을 외국인에 대한 정보수집의 경우에 풀어주었다는 데에 있다. 부시정부는 애국자법만이 아니라 국토안보부 등 대외적으로 배타적인 정책을 취했고, 이는 대내적으로도 영향을 미쳐 시민사회의 개방성과 자유로운 공기를 억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럽에서 9ㆍ11테러 이후 좀 더 정확히는 부시정권 이후의 미국을 이류국가로 평가한다는 점에서, 빈 라덴이 파괴한 것은 단순히 고층건물 두 동이 아니라 미국문명이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다.
지금 필리버스터에 대한 여론의 호응이 상당히 크다. 이번 정권 들어서 그동안 일방적인 여당 우위였다면, 야당이 처음으로 주도권을 쥐었다. 야당 원내대표의 기획과 설득능력을 다시 보게 된다. 그런데 시간이 없는 상황에서 장시간 토론을 한다는 것은, 소수자에게는 강력한 무기이지만 정치적 책임도 뒤따른다. 필리버스터를 통해 현안만이 아니라, 선거구획정의 확인을 위한 선거법과 같이 그에 후속되는 모든 안건은 진행되지 못한다. 정해진 날짜에 선거를 치르기 위한 선거법 처리시한이 2월 말이라고 한다. 필리버스터의 묘미는 물론 그 과정에서 법안에 대한 협상과 설득에 있다. 극단적인 경우에 선거가 연기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공직선거법으로 날짜가 정해지기는 하지만 조상님 기일도 아니고, 설날도 아니지 않은가. 총선이 연기되어 치러진다면, 위법하기는 하지만 무효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예측가능성과 신뢰를 해치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물러서고 물러서도 더 이상은 양보할 수 없는, 시민사회가 누려야 하는 최소한의 자유가 있다.
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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