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는 사람들의 눈길의 온기로
제 몸을 녹이려는 사람은
얼마나 추운 사람이냐
당신 만나고 나서 내 가슴에도
눈 많이 내렸다.
나무들은 울지 않는다.
나무들은 웃지도 않지만
부동자세의 뿌리에는
지나가는 것들을
존재를 뿌리째 얼게하는 세한을
무심히 받아내는 늙은 시인이 있다.
무엇인가를 그리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차라리 지우고
주검까지 가져갈 단단한 고갱이 하나만
남기는 절세의 화풍,
당신이 당신의 붓질 속으로 가뭇없이 들어가 앉은
-이빈섬의 '세한도 그 집'
추사의 '세한도'에는 개집같이 간소한 집이 하나 있다. 둥근 창이 있는 이 집은 비어있다. 집에 사람이 없으니, 집 전체가 인격화하여 하나의 고단한 사람이 웅크리고 있는 듯하다. 저 집 안에 누군가 들어앉아 있을까. 추사는 그림을 그리면서 집 안에 들어앉아있던 자신을 비워버렸다. 가려져 안 보이는 게 아니라 아예 빈 집이다. 나무 몇 그루가 지키는 황량한 세한보다, 빈 집 속에서 펼쳐지는 영혼의 세한이 더욱 깊고 치명적이다. 인기척이 없는 집은 텅빈 내부와 텅빈 외부를 오가는 바람들을 거느린다. 세한 속에 홀로 있는 자는 얼마나 간절히 누군가의 관심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가.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는다. 마음이 텅 비어가면서 존재는 저 빈 집 같은 껍질로 화하게 된다. 바람벽들이 이를 악물고 허우대를 지키는 빈 집. 바람이 불 때마다 집이 깊이 떠는 소리를 낸다. 이미 한 존재의 떠는 소리가 아니라 풍경 전체가 으드득거리는 소리다.
세한도라는 그림이 떠들썩한 소음을 달고 다니지만, 대부분 소통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저 빈 집을 들여다보는 시력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빈 집으로 들어찬 적막 속으로 많은 사람들은 따라 들어가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저마다 따뜻한 집을 가지고 있고 굳이 저 추운 집으로 들어가 볼 생각도 없다.
빈섬 이상국(편집부장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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