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그림의발견]인기척 없는 영혼의 빈 집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추사 김정희(1786~1856) '세한도'

추사 김정희(1786~1856) '세한도'

AD
원본보기 아이콘

돌아보는 사람들의 눈길의 온기로
제 몸을 녹이려는 사람은
얼마나 추운 사람이냐
당신 만나고 나서 내 가슴에도
눈 많이 내렸다.
나무들은 울지 않는다.
나무들은 웃지도 않지만
부동자세의 뿌리에는
지나가는 것들을
존재를 뿌리째 얼게하는 세한을
무심히 받아내는 늙은 시인이 있다.
무엇인가를 그리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차라리 지우고
주검까지 가져갈 단단한 고갱이 하나만
남기는 절세의 화풍,
당신이 당신의 붓질 속으로 가뭇없이 들어가 앉은
-이빈섬의 '세한도 그 집'


추사의 '세한도'에는 개집같이 간소한 집이 하나 있다. 둥근 창이 있는 이 집은 비어있다. 집에 사람이 없으니, 집 전체가 인격화하여 하나의 고단한 사람이 웅크리고 있는 듯하다. 저 집 안에 누군가 들어앉아 있을까. 추사는 그림을 그리면서 집 안에 들어앉아있던 자신을 비워버렸다. 가려져 안 보이는 게 아니라 아예 빈 집이다. 나무 몇 그루가 지키는 황량한 세한보다, 빈 집 속에서 펼쳐지는 영혼의 세한이 더욱 깊고 치명적이다. 인기척이 없는 집은 텅빈 내부와 텅빈 외부를 오가는 바람들을 거느린다. 세한 속에 홀로 있는 자는 얼마나 간절히 누군가의 관심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가.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는다. 마음이 텅 비어가면서 존재는 저 빈 집 같은 껍질로 화하게 된다. 바람벽들이 이를 악물고 허우대를 지키는 빈 집. 바람이 불 때마다 집이 깊이 떠는 소리를 낸다. 이미 한 존재의 떠는 소리가 아니라 풍경 전체가 으드득거리는 소리다.

세한도라는 그림이 떠들썩한 소음을 달고 다니지만, 대부분 소통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저 빈 집을 들여다보는 시력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빈 집으로 들어찬 적막 속으로 많은 사람들은 따라 들어가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저마다 따뜻한 집을 가지고 있고 굳이 저 추운 집으로 들어가 볼 생각도 없다.
 
빈섬 이상국(편집부장ㆍ시인)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슈 PICK

  •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국내이슈

  •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대학 나온 미모의 26세 女 "돼지 키우며 월 114만원 벌지만 행복"

    #해외이슈

  •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PICK

  •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매끈한 뒤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마지막 V10 내연기관 람보르기니…'우라칸STJ'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 용어]'비흡연 세대 법'으로 들끓는 영국 사회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