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활동한 거리의 사진작가 '비비안 마이어'를 찾는 여정 다룬 다큐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프랭크, 헬렌 레빗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거장의 발견이다." 비비안 마이어(1926~2009)의 사진을 본 이들이 쏟아낸 찬사다. 1950년대 미국 뉴욕에서 활동한 거리의 사진작가 마이어는 15만장이나 되는 필름을 남겼지만 이중 한 컷도 그의 생전에는 공개되지 않았다.
공원 벤치에서 자는 노숙자, 잔뜩 치장한 귀부인, 공사장에서 일하는 일꾼, 혼자 남겨진 채 우는 아이 등 그는 지나가는 행인들을 향해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아메리칸 드림'에 취해 있을 때, 마이어는 뉴욕과 시카고의 골목으로 눈을 돌려 거리의 약자들을 카메라 렌즈로 보듬는다. 사진작가이자 비평가인 엘런 세쿨라(64)는 그의 작품을 본 다음 "인간에 대한 이해와 온기가 느껴진다. 유머가 있고 비극을 볼 줄 안다"고 했다.
까마득히 묻힐 뻔한 마이어의 작품들이 세상에 공개된 과정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영화다. 2007년 역사책에 쓰일 사진을 찾기 위해 경매장을 찾은 사진가 겸 영화감독 존 말루프(35)는 그곳에서 필름 수십만 장이 들어 있는 상자를 380달러에 사들인다. 호기심에 한 장 한 장 인화해본 사진에는 20세기의 거리 풍경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한 눈에 사진의 비범함을 알아챈 말루프는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반응은 놀랄 만큼 뜨거웠다. 온라인에서 폭발한 관심은 언론으로 확대되었고, 미국 전역은 물론 영국과 스웨덴 등에서 전시회까지 열렸다.
말루프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15만장의 필름으로 남은 여인', 마이어의 행적을 찾아 나선다. 구글을 아무리 검색해도 마이어에 대한 정보가 나오지 않자 그는 닥치는 대로 마이어의 사진과 유품들을 사들였다. 이 미스터리한 추적극은 다시 필름에 담겨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됐다.
이렇게 해서 알아낸 마이어의 생애는 놀라움과 반전의 연속이다. 마이어의 직업은 당시 미국 사회 내에서는 하층민 취급을 받는 '유모'였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독특한 프랑스 억양의 말투를 썼고, 자기주장이 강하며, 직설적이었다"고 마이어에 대해 회상한다. 여러 집을 전전하며 유모 일을 하면서 자신의 방에는 절대로 못 들어오게 했고, 방 안 가득 신문 더미를 쌓아놓았으며, 자신을 이따금씩 스파이라고 소개했다는 일화는 그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킬 뿐이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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