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의 삶과 예술 살피는 영화, 미술관서 상영도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조국을 떠나온 이민자들. 디아스포라(Diaspora, 이주자)의 삶과 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문화행사들이 마련됐다. 재중작가 최헌기의 회고전과 '떠도는 몸들'이라는 작은 영화제다. 최헌기 작가(54)는 중국 문화계에 자리를 잡은 보기 드문 동포 화가로, 중국인과 한국인의 경계에서 살아온 자신의 삶을 20년 넘게 회화와 설치작품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속에는 정체성의 문제와 예술의 가치, 국제 정세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 있다. '이산(離散)'을 주제로 한 영화 상영에는 한국계 고려인이 지닌 이주의 기억 등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가 제작한 많은 작품에는 한자 서체 중 흘림체인 '초서(草書)'를 닮은 글씨들이 부유한다. 사실 실제 글자가 아닌, 작가가 그저 모양만 닮게 가공한 것이다. 작가는 이를 '광초(狂草)라 부른다. 그는 "10년 넘게 광초를 쓰고 있다. 동양예술철학 중에서도 서예를 통해 전통을 강하게 느낀다"며 "관객들이 작품을 보고 자신만의 생각을 갖게 하고 싶었다. 형태가 글씨 같아 보일 뿐 사실 아무 뜻은 없다"고 했다. 광초는 대형 캔버스 위에도, 천장 위에 매단 모빌, 조각에서도 보인다.
'6자회담'이란 작품에서는 디아스포라로서의 작가적 시각이 돋보인다. 남북한을 사이에 둔 미국·중국·러시아·일본을 상징하는 인물들 가운데 만국기로 꾸며진 미사일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6×9=96'라는 메시지가 쓰여 있다. 작가는 "6자회담이 해결책이 될 순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북핵 문제는 국제사회 모두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라며 "육 곱하기 구는 오십사지만, 사실 사회적 약속 또는 틀일 뿐 진실은 '우리가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작가는 중국 길림성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백두산 밀림에서 양봉을 했다. 작가는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중국 옌볜대학교 미술학과, 베이징 중앙미술학원에서 수학했다. 지난해에는 한국 홍익대학교 미대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동안 중국국립미술관, 광주비에날레 등에서 전시를 가진바 있다. 현재 베이징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향후 강원도 동해 망상해수욕장 인근에 화가촌을 만들 계획이다. 전시는 오는 5월 31일까지.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 전관. 02-737-8643.
◆'떠도는 몸들' 스크린 프로젝트= 디아스포라 예술을 폭넓게 이해하기에 좋을만한 영화도 기억해 두면 좋겠다. 미술관에서 전시형태로 진행되는 상영회는 지난해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에서 개최된 '아프리카 나우' 전시의 연장선상에서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아프리카-유럽-중앙아시아-한국으로 이어지는 이주자의 정체성과 디아스포라의 지형도를 살펴보고, 새로운 방향에 대하 논의하기 위해 기획됐다. 1980~90년대 영국에서 흑인 영화 르네상스를 주도하며 왕성한 활동을 벌였던 그룹 '블랙 오디오 필름 콜랙티브'의 작품과 함께,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난 고려인으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걸쳐 거주하고 있는 한국계 소수민족인 고려인의 디아스포라에 관한 영화를 선보이고 있는 송 라브렌티 감독(74), 한국 안산에서 거주 중인 고려인들의 삶을 조망하는 김 정 감독(54)의 영화를 상영한다. 이외에도 전시 기간 중 국내외 학자들을 초빙해 디아스포라와 국경 문제에 관한 강연도 개최된다. 오는 5월 17일까지. 서울 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프로젝트 갤러리. 02-2124-8800.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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