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반드시 지켜내는 원칙주의자다. 가능하면 대면보고 대신 서면보고를 받는다. 서면보고를 꼼꼼히 살피고 파악해 지시를 내린다. 대통령의 표정은 변덕스럽지 않다. 수석비서관회의나 국무회의에서도 필요한 말 외에는 말을 아낀다. 그가 강렬한 눈빛으로 쏘아붙일 때에는 꼬리를 내린 강아지처럼 쪼그라든다."
루이 14세의 권력유지를 위한 통찰력과 단호함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그의 통치 초기 재무장관이었던 니콜라스 푸케는 1661년 총리 쥘 마자랭이 죽자, 스스로 총리가 되고 싶어 했다. 푸케는 영리했고 왕의 신임도 두터워 보였다. 대부분 사람들은 푸케가 총리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왕은 2인자인 총리직을 없애려고 했다. 푸케는 왕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성대한 연회를 열었다. 왕에게 경의를 표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했다. 왕에게 바치기 위해 직접 희곡을 쓰고 작곡을 하기도 했다. 모두들 "이렇게 훌륭한 파티는 처음"이라고 칭송했다. 다음 날 푸케는 왕의 근위대장에게 체포됐다. 석 달 뒤에는 국고횡령죄로 재판을 받고, 피레네산맥의 외딴 감옥에 갇혔다. 푸케는 그곳에 20년간 쓸쓸히 지내다 죽었다.
푸케의 후임은 장 밥티스트 콜베르였다. 콜베르는 국고에서 나온 돈을 반드시 왕의 손으로 곧장 가도록 했다. 왕은 푸케의 보르비콩트성보다 더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을 지었다. 바로 베르사유 궁전이다. 그전까지 대중을 위해 광장에서 발레공연을 열기도 했던 왕은 이제 베르사유 궁전에서 그들만의 연회를 열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 역시 카리스마가 넘치는 지도자다. 값싸게 말하지 않았고, 한 번 내뱉은 말은 어떻게든 책임지려고 했다. 원칙을 벗어나면 가차 없이 정해진 데 따라 책임을 물었다. 그의 입술은 야무지고, 그의 눈빛은 단호하다. 그런데 카리스마 강한 대통령은 의사결정에서 함정에 빠졌다. 집무실보다는 관저에서 보고받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에게 직접 대면보고를 했다는 참모나 장관은 점점 줄어들었다.
얼마 전 '청와대 문고리 삼인방' '십상시(十常侍)' 논란이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었다. 비선실세 의혹이 겹치고, 대통령 측근 간의 권력 암투까지 덧씌워지면서 청와대의 부끄러운 속살이 드러났다. 이번 사태의 근본원인은 폐쇄적인 청와대와 독단적인 의사결정 구조에 있다. 300년 전 루이 14세는 독단적인 결정과 절대적 권력으로 한 나라를 통치할 수 있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소통과 설득, 안되면 다시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 움직인다. 아직 정권은 3년이나 남았다. 현 정권이 해야 할 일은 수두룩이 쌓여 있다.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반대로 마음을 잘못 먹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지금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가져야 하는 마음은 국민과 소통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부 측근들에 의지하는 의사결정 시스템부터 바꿔야 한다.
조영주 정치경제부장 yjch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