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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 정체성의 혼란 빚는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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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미국 인권단체 중에 '중국노동감시(CLW)'라는 단체가 있다. 지난 2000년부터 활동해 온 이 단체는 중국내 미성년 근로자 및 열악한 중국의 노동 실태를 파악해 전 세계에 알린다.

기업들 입장에선 CLW의 활동이 달갑지 않다. 몇몇 기업들은 CLW의 조사 결과가 사실과 다르다며 소송도 진행중이다. 논란의 여지는 많지만 원청 업체가 하청 업체의 기업윤리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CLW의 인권운동은 통했다.
CLW의 홈페이지에는 그들이 지금까지 했던 활동들이 기록돼 있다. 조사 결과에 대한 논란도 많았지만 조사를 시작한 배경, 방법, 경과, 결과 등을 상세하게 남겨 놓았다.

조금 다르지만 국내서도 반도체 노동자들이 직업병 문제로 고통 받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한 인권단체가 있다.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인권지킴이)이 주인공이다. 반올림의 공식 다음 카페를 살펴보면 활동 내역 거의 전부가 성명서와 집회 소식이다. 일방적인 주장과 성명만 있을 뿐 반도체 노동자들의 인권 실태를 조사한 결과나 화학물질 안전관리와 관련한 제언은 찾아보기 어렵다.

반올림측 활동가들은 백혈병 등 직업병 피해자가 233명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모두 제보를 통해 확보한 피해자다. 이들 피해자 중 반올림측이 명단을 공개한 사람은 산재신청을 한 33명에 불과하다. 반올림은 최근 10여명이 산재신청을 더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청 예정자를 더해도 43명에 불과하다. 200여명에 가까운 피해자들의 명단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산재신청 여부도 알 수 없는 단순제보자까지 피해자에 집계했기 때문이다.

반올림이 수년간의 활동 속에서 잦은 주장과 성명, 각종 구호를 외쳤지만 자신들의 주장을 반증할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은 함께 싸워온 피해자와 그 가족들뿐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들에게 "뜻이 다르니 나가라"며 내몰기까지 했다.

반올림에서 쫓겨나다시피 내쳐진 피해자 및 가족들은 그 배경으로 반올림 활동가들이 설립 초기의 순수한 목표를 잃어버렸다고 비난한다. 반올림이 삼성전자와의 협상에서 줄곧 고집했던 바가 있다. 삼성전자에 대한 종합진단과 화학물질 안전보건위원회 설치가 그것이다. 겉으로만 보면 당연히 삼성전자가 해야 할 일이지만 속내를 보면 사정이 다르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의 종합진단을 실시하는 제3의 기관은 반올림이 직접 지정해야 한다. 삼성전자 내부에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화학물질 안전보건위원회는 반올림측 추천 인사를 절반 이상 선임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제3의 기관, 외부 인사를 선임해도 믿지 못하겠으니 반올림이 직접 삼성전자를 진단하고 감사하겠다는 것이다. 협상이 될 리 없다. 기업 입장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다.

앞서 소개한 CLW는 중국내 노동자들에게 부당한 근로조건에 대한 기준 및 노동법을 교육시킨다. 아동 고용 의혹이 있는 기업에는 이메일과 전화를 해 항의하는 평화적 시위도 한다. 기업은 싸워야 할 상대가 아니라 변화시켜야 할 존재다. 일방적인 성명과 주장 대신 객관적인 데이터와 기업들에게 변화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보낸다.

반면 반올림에게 삼성은 싸워 이겨야 할 존재다. 7년 동안 함께 해 왔던 피해자 및 가족들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그들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삼성과 의견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 7년간의 동지는 이제 적이 됐다. 반올림의 정체성에 대해 의구심이 드는 것도 이 같은 사실 때문이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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