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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시대, 남자가 사는법(31)] 마음속의 괴물을 없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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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창환 대기자] "그 자식 나오면 안나갈 거야." 40년 지기인 A와 B는 서로 피한다. 둘은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이었다. 흔히 말하는 명문대를 나와 번듯한 직장에서 승승장구했다. 근무회사는 달라도 틈만 나면 함께 술을 마시고 붙어다닐 정도로 친했다. 이제는 동창모임이 있으면 상대방의 참석 여부를 꼭 확인한다. 꼴보기 싫어서다.

 은퇴 후의 동업이 40년 우정을 갈라놓았다. 사업의 이익배분을 두고 이견이 생겼다. A는 친구끼리 무조건 절반씩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고 B는 돈을 번 사람이 더 챙겨야 한다며 콧방귀를 뀐다. A는 무조건 절반씩 나누기로 약속했었다고 확신하고 B는 함께 한 일만 반씩 나누기로 했다고 믿는다. 사실, 아니 진실은 무엇인가.
 구로사와 아키라감독은 영화 '라쇼몽(羅生門)'에서 거짓과 사실이 날줄과 씨줄처럼 엮인 세상을 묘사하고 있다. 사실은 하나다. 사무라이 타케히로(모리 마사유키)와 아내 마사코(교 마치꼬)가 숲길을 가다 악명 높은 산적 타조마루(미후네 도시로)에게 마사코가 겁탈당한다. 결박당한 타케히로는 아내가 겁탈당한 뒤 죽는다. 나뭇꾼이 현장을 목격한다. 사실은 여기까지다. 연관된 이들(죽은 이의 영혼을 포함)의 주장은 다 다르다.

 사실에 자신의 입장이 덧대져 각기 다른 주장이 나온다. 관아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한 조사가 벌어진다. 산적은 마사코가 두 남자를 섬길 수 없으니 이기는 남자를 선택하겠다고 해서 당당한 결투 끝에 자신이 죽였다고 자랑한다. 죽은 사무라이는 무당에 빙의해 겁탈당한 아내가 자신을 배신하고 산적을 따라가려 해서 자결했다고 주장한다. 아내는 어쩔 수 없이 겁탈당한 자신을 남편이 경멸하는 바람에 찔러 죽인 듯 하다고 오열한다. 누구 말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목격자인 나뭇꾼은 여자가 두 남자의 결투를 요청했지만 사무라이가 아내를 포기해 싸우지 않으려 했다고 말한다. 여자가 난리를 치자 얼떨결에 싸움이 벌어져 사무라이가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산적은 흉포한 악명을 유지하기 위해, 사무라이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아내는 정숙하고 가련한 여인임을 강조하려고 사실을 변형하고 왜곡한다. 나뭇꾼은 이 사실을 관아에서 얘기하지 않는다. 현장에서 보석이 박힌 단검을 훔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뭇꾼의 말은 어디까지 진실일까.
 세상사에 늘 있는 일이다. 사람들은 사실이라는 재료에 갖은 양념을 버무려 자신에게 유리하게 세상을 요리한다. A와 B만의 일이 아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상관없다. 이해관계가 걸리면 달라진다. A는 찍쇠고 B는 딱쇠다. 영업이 능한 A가 일을 물어오면 꼼꼼한 B가 처리하기 위해 동업했다. 근데 B가 우연히 일을 가져왔다. 서로 다른 말을 할 상황이 된 것이다. 꼭 누가 누구를 속이려고 해서가 아니라도 서로 속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살다보면. 서로의 기대가 달랐기 때문이다.

 A와 B의 관계는 더욱 나빠지고 있다. 일관계가 아닌 인간관계가 파탄나기 일보 직전이다. 둘 다 돈이 필요한데 번 돈은 통장에서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 서로 상대가 친구들에게 자기를 음해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친구가 아니라 원수가 될 가능성이 많다. 친했기 때문에, 믿음이 컸기 때문에 배신감은 더 커진다. 상대에 대한 분노가 눈더미처럼 부풀어 오른다. 흔히들 동업하지 말라고 한다. 동업은 대표적인 사례일 뿐이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에 부대낄수록 주변과의 갈등은 늘어만 간다. 이런 저런 일로 갈라지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부부, 친구, 동료, 사업파트너 등.

 많은 경우 마음 속에 자라기 시작한 의심과 미움이 오해와 억측을 숙주 삼아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한 영화 '스피어(sphere)'는 공상과학영화다. 외계에서 태평양으로 우주선이 떨어진다. 탐사원들은 우주선 안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둥근 물체, 스피어를 발견한다. 이후 집체만한 오징어 등 공상 속의 해양 생물체들이 나타나 탐사원들의 생명을 위협한다. 스피어가 인간의 생각 속에 있는 공포심과 두려움을 현실로 만들기 때문이다.

 스피어는 우주에서 오는 게 아니다. 우리 마음 속에서 똬리를 틀고 있다. 우리 스스로가 라쇼몽의 주인공으로 살면서 마음 속에 스피어를 키운다. 나만의 생각을 발효시켜 실체를 만들어낸다. 우리 마음 속의 스피어는 기대는 실망으로, 연민과 사랑은 혐오와 미움으로 변질시킨다. 마음 속의 괴물이다. 나이가 먹으면서 곳곳에 괴물이 자리했을 가능성이 크다. 스스로 생각해 보면 무엇인가에 대한 미움과 증오라는 괴물이 마음 속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다. 나만 그런것은 아닐 것이다.

 세종시는 금강이 관통하고 있다. 걷기를 좋아해 몸상태와 날씨를 가리지 않고 꼭 산책을 한다. 금강변을 수백 번을 걸었다. 날씨가 갠 날 밤에는 은하수와 별들이 하늘에서 쏟아진다. 시인이 되보기도 하고 물리학도가 되기도 한다. 하늘의 별을 보다 문득 생각이 든다. '우주의 중심은 어디일까?' 내 삶을 되돌아 보면 평생 우주의 중심은 바로 '나'였다. 아내도 친구도 동료도 자식도 내 주변 모든 이들이 나와 같지 않을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는 역지사지와는 좀 다르게 다가온다. 상대가 세상의 중심임을 인정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마음 속에 괴물이 자리할 틈이 줄어든다.




최창환 대기자 choiasi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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