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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서재에서]합리주의 세상에 '꿈 꿀 권리'…그게 神話붐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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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용 논설고문(얼굴)의 '리더의 서재에서'는 CEO와 경제지식인들의 지적보고(知的寶庫)를 탐방해 깊이있는 성찰의 결과들을 함께 음미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윤 고문은 언론사 기자 출신으로 국방홍보원장,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냈으며 저서 <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등을 출간했습니다.


유재원 세계문자연구소 공동대표

유재원 세계문자연구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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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자 심포지아' 여는 유재원 세계문자연구소 공동대표의 책읽기, 신화읽기
소년시절부터 책에 심취했던 유재원에게 상상의 나래를 자극하는 신화와 전설은 동경의 세계였다. 어학을 좋아해서 한국어 계통론을 공부하려고 서울대 언어학과로 진학했으나 제대로 된 언어학을 하려면 고대 그리스어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그리스 아테네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그곳에서 어학도 연찬했지만 어릴 적 상상력을 자극했던 그리스 신화와 문화를 직접 접한 뒤 여기에 그만 깊숙이 빠져버렸다. '그리스어의 시제 일치 현상'에 대한 논문으로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 그리스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그리스문화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에 그리스문화와 신화연구의 새 창을 열었다. 한국외국어대에서 이 분야를 연찬하면서도 <순우리말 역순 사전>을 편찬해 한글학회 표창장을 받고 '한국어 음성 인식을 위한 음운 규칙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한글학회 우수 논문상'을 받는 등 한국어 사랑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한때 전산언어학에 몰두해 '한국어 맞춤법 검색기'를 비롯해 한국어와 관련된 소프트웨어를 몇 개 만들었으며 컴퓨터를 이용한 사전 편찬에도 관심이 있어 <표준 한국어 발음 대사전>과 <바른글 한국어 전자 사전> 등의 편찬에도 참여했다. (사)세계문자연구소 공동대표를 맡아 24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 문자 심포지아'를 주관하느라 여념이 없는 유 교수를 서울 애오개 그리스정교회 안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났다.

-언어학을 하다 그리스로 유학을 갔던데.

▲당초 우리 국어의 뿌리를 찾기 위한 계통론을 전공하는 게 목표였다. 그러려면 만주어, 몽골어 등을 배워야 할 뿐 아니라 비교언어학으로 유명한 시카고대학으로 유학을 가야 했는데 그보다는 고대 그리스어를 배우는 게 순서라는 선배의 충고로 그리스로 떠났다. 아테네대학에서 그리스어도 배웠지만 그만 그리스 문화 특히 고대 신화에 매료돼 버렸다.(그는 국내에서 두 번째로 그리스 박사인 데다 그리스어의 최고권위자다. 한국ㆍ그리스 정상회담의 단골 통역자이기도 하다.)
-50대 이상은 대개 토마스 벌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란 책으로 그리스 신화를 접했다. 그런데 이 책은 한계가 많다던데.

▲벌핀치의 책은 1855년 출판됐다. 이때는 아직 쉴레이만에 의해 트로이아나 뮈케나이가 발굴되기 이전이다. 영국의 고고학자 에번스가 크레타의 크노소스 궁전을 발굴한 것은 1890년대이고 아시리아의 수도였던 니네베도 1880년대에야 발굴됐다. 히타이트 제국이 발견된 것은 1905년이고 이집트의 투탕카멘의 묘지가 발굴된 것은 1920년대 일이다. 1855년 이후로 우리의 신화에 대한 정보와 이해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지고 깊어진 셈인데 벌핀치 책은 이 같은 새로운 흐름을 담지 못했다. 또한 벌핀치는 그리스 신화의 다소 난감한 내용 즉 근친상간, 시기, 질투 등 이른바 '19금적 소재'를 교육적으로 순화해서 썼다. '청소년들에게 안심하고 읽힐 수 있는 책'으로 낸 것이다. 이 바람에 기독교적 시각으로 변질돼 그리스 신화의 원초적 의미가 많이 퇴색해 버렸다.(4년 전 타계한 신화학자이자 소설가인 이윤기는 "우리가 유재원 교수를 보유하게 됐다는 것은 대단한 행복"이라며 유 교수가 1998년 펴낸 <그리스신화의 세계>는 기왕의 이 분야 수준을 총망라한 최고의 저서라고 극찬한 바 있다.)

-그리스 신화가 인류문화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신화를 '재미있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신화는 허구가 아닌 진실이며 역사다. 신화는 인류 정신세계의 보고인데 서양문화의 원천인 그리스 신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게 서양을 아는 첩경이다. 기독교도들에게 예수가 숭배 대상이듯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올림푸스의 신들은 진정한 신들이자 숭배의 대상이었다. 우리가 신전이라 부르는 고대 유적들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신자들이 기도하고 예배 드리는 경건한 교당이었다.

-신화는 언제 처음 접했나.

▲초등학교 3학년 때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 중 <호머이야기>에서 그리스 신화를 접했다. 이후 그리스 신화는 항상 나에게 꿈과 상상력을 자극해서 그 분야 책을 많이 보았는데 중고교시절엔 '그리스 신화통'으로 불렸다.

-인터넷시대인데도 다시 신화가 뜨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서점에 가면 별도로 신화 책들을 한데 모은 진열대가 있을 정도로 신화가 붐이다. 21세기에 들어선 마당에 왜 신화가 이렇게 주목을 받는가?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말대로 그리스도교의 권위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의 합리주의에 바탕을 둔 서양 근대 철학의 실패 때문이다. 데카르트 이후 서양의 학문은 과학적 합리주의로 급격하게 기울어졌다. 데카르트 전통을 충실히 따르는 현대 과학은 순수한 로고스의 세계이다. 이 세계 안에서 모든 명제는 증명돼야 하고 또 검증이 가능해야 한다. 로고스의 세계에서 객관성은 생명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과학의 시대인 현대에서 신비와 꿈으로 가득한 '뮈토스의 세계', 즉 신화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이런 과학의 시대에 인간은 로고스의 횡포를 벗어날 수 없었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합리적 사고에 맞지 않는 신화는 불분명하고 마술적이며 온통 우연과 자의성에 의해 지배되는 비합리적 세계요 미신 덩어리로, 지성인이라면 당연히 떨쳐 버려야 할 존재로 무시당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것만 인정되는 로고스의 세계에는 꿈이 없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꿈을 꿀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꿈을 꿀 수 없는 상황에서 현대인들은 인간성의 말살을 경험해야 했다. 이제 다시 인간이 인간성의 본향을 추구하고 나서기 시작했는데 신화의 부흥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한국 카잔차키스의 친구들' 모임 회장을 맡고 있는데 그 배경은.

▲카잔차키스는 종교적 이유 등으로 노벨상을 받지 못했지만 서양문학사상 추앙을 받는 대문호다. 2007년 아테네에 갔을 때 '국제 카잔차키스 친구들의 모임' 회장인 조르주 스타시나키스씨가 '카잔차키스의 삶과 문학'이란 주제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강연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이면서 한국 안의 '카잔차키스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해 왔다. 이를 계기로 2008년 안정효, 이윤기, 정현기씨 등이 참여해 협회를 만들었다.

-터키에 관한 책도 내는 등 터키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던데.

▲터키는 사실 초기 그리스문명이 시작된 곳이다. 터키의 옛 지명은 아나톨리아인데 이는 '해 뜨는 곳, 동쪽'이란 뜻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의 배경이 된 트로이전쟁의 트로이나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의 배경인 아라랏산이 모두 터키에 있다. 그리스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도 터키 태생이다. 터키를 이해하지 않고는 그리스 문화를 제대로 알 수 없다.

-한국어의 전산화와 한글이라는 문자 연구에도 열심인 것 같다.

▲자기 나라 말로 학문하고 사상을 설명할 수 있는 나라가 진정한 강대국이다. 예를 들면 20세기 이전 자기 나라 말로 학문을 했던 독일과 프랑스는 여전히 강국이다. 하지만 제임스 조이스 같은 문호를 다수 배출한 아일랜드의 경우 영어로 문학을 했기에 오늘날 문화소국으로 전락했다. 한글로 된 좋은 텍스트가 많이 나와야 한국도 문화강국이 된다. 여기에 도움을 주기 위해 한국어의 전산화 작업을 했고 이번에 서울에서 '세계 문자 심포지아 2014'를 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행사는 문자가 사라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 말을 빼앗긴다면 어떤 세상이 올까. 문자가 언제 흥하고 망할까 등 문자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고 상상해보고 놀아보자는 게 목적이다.  

◆유재원의 읽어보니, 좋던데요

◆희랍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원제는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모험'인데 주인공 조르바는 1917년 카잔차키스가 고향 크레타섬에 머물던 시절 자신의 인생에 깊은 영향을 주었던 실존 인물 '요르고스 조르바스'다. 고대 그리스의 민족시인 호메로스를 비롯해 앙리 베르그송의 자유의지, 니체의 초인주의 사상이 내포된 작가의 세계관을 잘 반영하고 있는 대표작.  

◆에게, 영원회귀의 바다/다치바나 다카시/청어람미디어=일본 최고의 지성이라는 다카시가 1982년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40일간에 걸쳐 에게해를 둘러싼 그리스, 터키 지역의 고대문명을 답사한 기록을 정리한 책. 그리스 신화의 신들과 기독교의 신이 어떻게 자신들의 모습을 바꿔갔는지를 설파한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니컬러스 에번스/글항아리=언어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에번스가 쓴 '사라지는 언어에 대한 가슴 아픈 탐사 보고서'. 사라지는 언어의 위기에 대한 추상적ㆍ규범적 논의에서 벗어나 사라져가는 언어의 증언자들과 직접 생활하며 겪은 삶의 기록에서 배어나온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정리함으로써 존폐 위기에 처한 소수 언어의 실체를 잘 보여준다.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함민복 시인의 첫 산문집. 그가 살아온 이야기와 그의 문학적 모태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소설가 김훈은 "그의 가난은 '나는 왜 가난한가'를 묻고 있지 않고, 이 가난이란 대체 무엇이며 어떤 내용으로 존재하는가를 묻는 가난이다. 그는 다만 살아 있다는 원초적 조건 속에서 돋아나오는 희망과 기쁨을 말한다. 나는 이런 대목에 도달한 그의 산문 문장들을 귀하게 여긴다."고 평했다.

◆유재원 대표는…

▲경기고, 서울대 언어학과 졸
▲그리스 아테네대학교 대학원 졸(언어학 박사)
▲한양대 교수(전)
▲한국외국어대 그리스발칸어학과 교수, 한국ㆍ그리스 친선협회 회장, 한국카잔차키스학회 회장 (사)세계문자연구소 공동대표(현)
▲<그리스 신화의 세계1, 2> <신화로 읽는 영화, 영화로 읽는 신화> <터키, 1만년의 시간여행 1, 2> <슬픔이여 안녕> 외 저서 다수

윤승용 논설고문 yoon6733@





윤승용 논설위원 yoon673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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