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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차 한 잔의 여유(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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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쓰는 인생을 살게된 건 아마도 저 말이 풍기는 행복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유니텔 시절 문학동호회에는 '차 한 잔의 여유'라는 폴더가 있었다. 차 한 잔은 그저 물에 찻잎이나 커피열매 따위를 섞은 고급숭늉에 불과하지만, 옛사람들이나 요즘 사람들이나 그것이 고급 정신활동의 시작임을 다들 간파하고 있었다. 추사가 초의에게 붙여주고 대자 글씨로 썼던 '명선(茗禪)'은 차 마시는 일이 도 닦는 길이라는 진리를 담은 말이다. 요즘 말로 고치면 그야 말로 '차 한 잔의 여유'에 값한다.

활동이 기계적으로 변하고, 생각이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그 경계를 훌쩍 뛰어넘기 위하여 우린 전진하지 않고 살짝 뒷걸음을 친다. 자아, 차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해봅시다. 그것은 그냥 노닥거리며 시간을 죽이자는 뜻이 아니라, 이성적 방식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푸는 유연함과 창의적 모티브를 갖자는 뜻이다. 점심 식사 이후 산책으로 걸어간 남산의 어느 호젓한 카페 뒷뜰에서 차를 마시면서, 유니텔 시절에 '차 한 잔의 여유' 폴더에서 황홀에게 자판을 두드리며 시작했던 '온라인 글쓰기' 인생을 가만히 생각했다. 내게 지금 그런 유연하고 열정적인 빈 간이 있는가. 쓸모 없음의 쓸모가 빛을 발하는 이 오후의 단풍 그늘같은 여유가 있는가.
늦가을 이런 날의 커피는 쓴 맛이 내는 우묵한 안정감이 백미다.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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