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는 한국 남자가 술만 마시면 화제로 올리는 곳, 바로 군대다. 희한하게도 한국 남자들은 군대라는 공간을 그토록 혐오하고 저주하면서도 막상 제대하면 자신의 경험을 자랑한다. 누구나 자신의 군 생활이 가장 힘들었고 수색대 같은 특수부대에 버금가는 정예 군인이었노라고 선언한다. 왜 남자들은 군대 이야기에 열중할까. 그것은 감옥처럼 타의에 의해 갇혀 있는 공간이기는 하지만 일반 사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많은 '역경'에 직면해 극복하고 헤쳐 온 훈장과도 같은 경험인 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남자라면 백이면 백, 다시 군대 가라면 자살하겠다고 공언하면서도 그 시간이 자신에게 도움이 됐느냐고 물으면 그중 적잖은 이들이 그렇다고 대답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런데 그날 밤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랜턴으로 밖을 비춰 보니 빗물이 배수로를 가득 채우고 흐르고 있었다. 깊은 배수로 덕분에 우리 행정병 텐트는 교보재나 담요, 군장 같은 비품들이 물에 침수되는 불상사 없이 편히 잘 수 있었다. 배수로를 제대로 파지 않은 다른 중대 텐트들은 퍼부은 비에 쫄딱 젖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 작전장교는 자랑할 법도 하건만 아무런 말도 없이 비 오는 산을 응시하고만 있었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마음에 새긴 교훈이 있었다. "비가 오지 않을 때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혁신에서 창의력과 아이디어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가 있다. 문제해결에 대한 집착이다. 혁신을 이룩하려면 아이디어를 쥐고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 불가결하다. 혁신에서 창의성과 집요함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존재해야만 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역시 주변에서 편집증 환자라고 부를 정도로 집요했다. 이미 과거가 돼버렸지만 그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PC 리사 개발을 강행해 회사에 막대한 손실은 물론 그 때문에 창업자인 자신이 애플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기까지 했다.
지금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왜 군대에 있어야 하는가. 그리고 군대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를 설명하고 체득시키는 것이다. 단지 '2년을 썩는다'거나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는 식으로 무작정 참다 나가라는 식은 제2, 제3의 윤일병 사건을 부를 수밖에 없다.
군대의 2년은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시간이 돼야 한다. 군대에서 병장이 되면 세상의 무엇도 할 수 있다는 묘한 자신감이 생긴다. 그것은 2년이라는 세월 동안 쌓인 문제 해결의 경험이 가져다 주는 자신감이다. 군대의 2년은 혁신의 또 하나 요소인 자신감을 심어주는 시간이 돼야 한다. 가끔씩 그 작전장교가 보고 싶어진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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