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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서재에서]고1때 읽은 책 한 권…40년뒤 귀농人生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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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용의 '사람읽기' 인터뷰-이호순 허브나라농원 원장


윤승용 논설고문(얼굴)의 '리더의 서재에서'는 CEO와 경제지식인들의 지적보고(知的寶庫)를 탐방해 깊이있는 성찰의 결과들을 함께 음미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윤 고문은 언론사 기자 출신으로 국방홍보원장,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냈으며 저서 <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등을 출간했습니다.


공부 잘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던 이호순 청년은 고교 1학년 때 우연히 한권의 책을 읽고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래, 맞다. 우리나라를 일으켜 세우려면 농촌을 개조해야한다." 6.25전쟁의 폐해로 가난이 극심하던 1950년대 말, 이호순은 서울대 농대 교수이던 류달영선생의 <인생노트>를 읽고 농촌운동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마치 일제시대 애국청년들이 심훈의 농촌계몽소설 <상록수>를 읽고 주인공 박동혁과 채영신이 '브나로드'운동에 빠져든 것처럼. 하지만 농대로 진학해 농촌운동에 투신하겠다는 꿈은 부모님과 선생님의 반대로 공대로 진학하는 바람에 접어야했다. 그러나 수구초심이 워낙 간절해서였을까? 이호순은 지천명을 넘긴 해에 홀연 대기업 계열사 사장직을 그만두고 강원도로 귀농해 당시에는 생소하기만 한 허브농원을 차렸다.
이호순 허브나라농원 원장

이호순 허브나라농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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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창의 '허브나라농원'은 현재 전국에 200여개가 넘는 허브농원의 원조격이지만 그 규모와 운영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연 방문객이 50만명을 넘는 이 농원은 단순히 볼거리만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스토리와 체험, 그리고 이웃주민과의 나눔까지 앞장서고 있어 농식품부 신지식농업인 장을 수상하는 등 귀농을 꿈꾸는 중년들에게는 이미 하나의 로망이 됐다. 허브향기가 골짜기를 가득 메운 평창 흥정계곡의 농원에서 농투성이로 살아가는 이 원장을 만났다.

-먼저 허브나라 농원부터 소개해주시지요.
▲1993년에 첫삽을 떴으니 벌써 20년이 지났네요. 현재 4만여평의 땅에 150여종의 허브와 각종 꽃들이 재배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허브를 재배하는 수준을 넘어서 보여주는 농업, 허브나 꽃을 매개로 휴식을 제공하는 콘셉트로 운영중입니다. 재배에다 레저 성격을 가미해 농촌 소득을 올려보자는 거지요. 먹거리 중심의 농업이 육체의 양식을 제공한다면, 볼거리 중심의 농업은 마음의 양식을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취지가 인정돼 2009년에는 환경부 선정 생태관광지 20곳 중 '숲과 문화생태계' 부문에서 문경 새재, 무주 덕유산,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저희 농원도 뽑혔지요.

-허브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처음 우리나라에 허브를 들여온 분은 향약초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허브는
약초만이 아니죠. 약초뿐 아니라 향신재도 허브고, 향긋한 야채도 허브고. 종류는 세계적으로 2500여종이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허브(Herb)의 영문 머리글자를 따 건강한 삶(Healthy life), 맛갈진 삶(Enjoy the tasty life), 신나는 삶(Refresh life), 아름다운 삶(Beautiful life)을 지향하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농원을 시작한 계기는요?
▲사실 제 인생은 책으로 인해 수차례 곡절을 겪었습니다. 선친은 워낙 가난해 중3때 수업료를 내지 못해 자퇴하고 도청의 사환으로 일하다 주경야독 끝에 농협에 취직했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식욕이 넘쳐 책을 무척 많이 사보셨습니다. 집에는 아버님이 보시던 동서양 고전은 물론 당시 시사잡지도 항상 넘쳐났지요. 덕분에 저도 중학교 때 서양고전과 삼국지, 수호지, 임꺽정 등은 물론 당시의 첨단 대중소설들도 독파했지요. 그러다 중학 때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읽고 "커서 반드시 내가 만든 요트로 세계일주를 하겠다"는 꿈을 품었습니다. 그런데 고1때 류달영선생의 <인생노트>를 읽고 다시 농촌운동가가 되기로 결심했지요. 하지만 그 꿈은 대학진학 때 다시 수정돼야했습니다. 대입원서를 쓰는데 서울대 농대를 가겠다니까 선생님이 부모님을 불러 '공대를 갈 실력인데 왜 농대를 가겠다는지 모르겠다'며 아버님을 설득했던 거지요. 할 수 없이 서울대 조선항공공학과로 진학했습니다.

-그럼 세계일주 꿈을 이룰 수 있었겠네요?
▲그런데 당시 서울 공릉동에 공대 캠퍼스가 있었는데 다시 온 몸에서 슬금슬금 농촌현실을 타파해야겠다는 피가 되살아나는 겁니다. 그래서 수업을 빼먹고 거의 매일 수원의 농대캠퍼스에 가서 놀았습니다. 그 때문에 학점이 미달돼 군 제대후 학점을 보충해 겨우 졸업할 수 있었지만 덕분에 수원캠퍼스에서 농대생이던 아내를 만날 수 있었지요. 그후 결혼당시 '우리나이의 합이 100살이 되면 귀농하자'고 다짐했는데 그게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다.(실제로 그는 자신이 51살, 부인인 이지인씨가 49살 때 귀농했다)

-책을 좋아한 것을 보면 선친의 DNA가 흘렀던 것 같은데.
▲그런 것 같네요. 중고교 시절에서 교과서 외의 책에도 관심이 많았지요. 고등학교 시절에는 훗날 언론인이 된 정동익, 김종심, 김승웅 등과 더불어 '라매불'이라는 독서서클을 만들기도 했고 공대 재학시절에도 특이하게 철학책에 빠져 지내기도 했지요. 요즘도 아무리 바빠도 한달에 20여권 이상은 사서 봅니다. 그간 모은 책이 제법 되는데 몇년전 화재로 대부분 소실된 게 가장 안타깝습니다. (실제로 농원 안쪽에 있는 그의 거실과 서재는 동서양 고전은 물론 요즘의 화제서적으로 가득했다.)

-하필 허브농원을 시작한 이유는?
▲삼성전자에 다닐 때 일본 출장을 자주 갔는데 일본 농촌을 둘러볼 기회가 많았지요. 지바현에 있는 '허브아일랜드'를 보고 바로 이거다 싶었습니다. 또한 단순히 재배하는 농장이 아니라 보여주는 테마파크를 만들어야한다는 것도 거기서 배웠습니다.

-부인이 농대 출신이라 도움이 컸겠습니다.
▲제가 단순히 농촌에 대한 동경에서 출발한 반면에 집사람은 처음부터 농업을 깊이있게 공부하려 했어요. 서울대 농대를 간 것이나, 아이들 다 키우고 마흔 넘어 대학원에 간 것이나, 도시생활 청산하고 귀농을 결행한 것이나, 다 아내의 의지가 주효했어요. 사실 농장에서도 저는 시설관리인에 가깝고, 작물 관리는 아내가 더 전문가입니다. 제가 장가를 잘 간거죠."

-둘러보니 스토리가 있는 테마파크가 많던데요.
▲그냥 단순히 허브만을 보여주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스토리를 가미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서울대 미대를 나온 딸의 디자인 기획력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만화박물관은 어떤 연유로 개설했나요?
▲아들이 어릴 적부터 만화와 게임에만 빠져 살았어요. 그 탓에 미술만 빼고 전 과목이 '미' 이하였는데 고3 때 담임선생님에게 호출됐습니다. "이 점수로는 어느 대학도 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난 "대학은 안가도 된다. 네 인생에 자신감을 갖고 살아라."고 아들을 위로했지요. 그러다 미국 유학길에 올랐는데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아들에게 미국에서는 '크리에이티브(creative)하다'고 하면서 격려해주니까 금방 용기를 얻어 랭귀지과정을 끝내고 뉴욕의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SVA)에 진학했지요. 이어 타임지 인터넷 부서에서 근무한 뒤 뉴욕대(NYU)에 들어가 석사를 받았고 거기서 만난 미국인 친구와 게임을 만들어 여러 공모전에서 수상했고, 게임 판권을 판 돈으로 뉴욕 맨해튼에 게임랩 회사를 설립하는 등 기적같은 성공을 했습니다. 현재 한국에 '놀공발전소'라는 회사를 운영중인데 바로 아들이 봤던 만화책을 위주로 박물관을 차린 겁니다.

-놀공발전소라니요?
▲ '놀듯이 공부하는' 학교에서 따온 것인데, 3년전 유니세프와 함께 첫 캠프를 열었습니다. 우리 교육엔 '나'가 없어서 아이들이 쉽게 지치고 힘들어합니다. 게임을 통해, 즉 즐겁게 놀면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지진아의 성공이 놀랍습니다.
▲물론 그애의 능력을 믿고 끝까지 밀어준 덕도 있었겠지만 창조적 능력을 계발하고 키워내는 미국의 교육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유명가수를 불러 공연회도 자주 하신다면서요?
▲17년전인가 잡지에 난 기사를 보고 영심씨가 찾아왔지요. 얘기하다보니 서로 통해 매해 겨울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 초대해 '달의 크리스마스'라는 나눔 음악회를 진행중이죠. 영심씨가 문화계 마당발이라 이문세의 숲 속 음악회도 기획하게 됐고. 그 덕에 사위도 연극 연출하는 사람을 얻을 수 있었죠. 이런 인연으로 조영남, 이문세, 윤석화, 이루마, 박정자 같은 분들을 모시고 음악회를 여는데 수익금은 모두 평창군에 기증합니다.

◆책갈피-책속의 추천 명구

"농촌에서 진짜라는 것은 지구를 오염시키지 않는 것, 사람을 속이지 않는 것, 자기 양심에 물어보아도 부끄럽지 않은 것입니다. (...)먹는 사람의 마음으로 가꾸지 않으면 안됩니다."
-고다 미노루의 <숲을 지켜낸 사람들>에서

"토지개량도,사막화 대책도,빈민가의 인프라 정비도,농업지원도,우물파기 프로젝트도 결국은 헛수고로 끝나버릴 응급조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 기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자급자족 경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하는 것 외에는 진정한 출구가 없다고 아빠는 생각해."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이 원장의 읽어보니, 좋던데요

◆숲을 지켜낸 사람들<고다 미노루ㆍ이크>
일본 미야자키현 아야정(綾町)의 민선 정장을 6번 연임하며 조엽수림을 살린 산업 관광 및 유기농업 등 개성있는 마을 가꾸기를 펼쳐 유명해진 고다 미노루(鄕田實)가 마을 가꾸기의 과정을 묶어 펴낸 책. 녹색관광과 문화로 일본 전통마을 을 살리면서 터득한 생태농업의 이모저모가 잘 드러나 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장 지글러ㆍ갈라파고스>
유엔 식량 특별 조사관이 아들에게 들려주는 제3세계의 기아의 진실이 충격적이다. '하루에 10만 명이, 5초에 1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 지구의 현실이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의 필연적 산물임을 지적하고 있다.

◆해저2만리<쥘 베른>
과학 소설의 아버지로 불리는 쥘 베른의 대표적인 과학 소설. 신비스러운 사나이 네모 선장이 이끄는 잠수함 노틸러스호의 해저 탐험기는 잠수함이 존재하지 않던 19세기 후반에 발표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젊은 시절 이 책을 읽고 내가 직접 만든 배로 세계일주를 하는 인생목표를 세웠다.

◆이호순 허브나라농원 원장 약력
▲1945년 서울생
▲전주고, 서울대 조선항공학과졸
▲삼성전자 임원
▲허브나라농원 원장(현)
▲농식품부 신지식농업인 장(章) 수상
▲대한민국 문화원상 수상





윤승용 논설위원 yoon673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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