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총재는 이날 오전 소공동 한은 별관 대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해 "경영관리 시스템과 업무수행 방식의 전면 재점검"을 천명했다. 하루 전 중단 없는 개혁과 경쟁을 당부하고 떠난 김중수 전 총재와는 완전히 다른 청사진이다. 조직 운영 원칙엔 교집합이 없었지만, 금융안정 기능을 확대를 통한 '큰 한은'을 지향한다는 점에선 시선이 겹쳤다.
어조는 단호했다. 이 총재는 "현행 경영관리 시스템이나 업무수행 방식의 효율성을 전면 재점검하겠다"고 했다. 그는 이어 "도입 취지와 달리 업무 능률을 떨어뜨리는 등 부작용을 드러낸 조치가 있다면 조속히 개선할 필요가 있으므로 이를 위한 작업에 곧바로 착수하겠다"고 강조했다.
서열 파괴로 압축되는 김 전 총재 시절의 인사 방식은 폐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 총재는 "오랜 기간 쌓아 온 실적과 평판이 가장 중요한 평가기준이 돼야할 것"이라면서 "그래야만 직원들이 긴 안목에서 자기를 연마하고 진정으로 은행발전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동기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안정기능 강화"=조직 운영 원칙엔 타협점이 없었지만, 한은의 역할 강화를 기대하는 마음은 같았다.
이 총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이 물가안정 뿐 아니라 금융안정도 함께 도모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면서 "최근 들어서는 잠재성장률의 추세적 하락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성장이나 고용에도 통화정책의 중점을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 총재는 따라서 "경제 구조와 대외 환경의 변화에 상응해 한은의 역할과 책무가 재정립돼야 한다"면서 "현행 통화정책 운영체계가 물가안정 뿐 아니라 금융안정과 성장 또한 조화롭게 추구하라는 국민의 시대적 요구를 담아낼 수 있을지 깊이 연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대목은 김 전 총재가 고별 강연의 마지막 주제로 다룬 '미완의 과제'에 그대로 담겨있다. 김 전 총재 역시 고별 강연에서 "한은에 조금 더 확대된 금융안정 책무를 부과하는 것이 글로벌 추세에 더 적합하다"면서 장기적으로 한은법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환기했다.
박연미 기자 ch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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