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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경선칼럼]'국회 해산을 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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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국회 해산'이란 말까지 해가며 정치권을 호되게 비판했다. 김 전 총리는 지난달 28일 새누리당 의원모임 초청 강연에서 여야 대치상황을 언급하고는 "우리 헌법에 왜 국회 해산제도가 없는지 모르겠다"며 "있었다면 지금이 국회를 해산하고 다시 국민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회의원들 총사퇴하고 다시 심판 받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씀하는 분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저기서 비난이 쏟아졌다. 유신독재시대를 돌이키게 하는 몰역사적, 반헌법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배재정 민주당 대변인은 "박정희 유신독재시대로 돌아가자는 말인가"라고 힐난했다. 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는 트위터에서 "귀하도 유신, 5공화국 시대를 그리워 하시나요"라고 비꼬았다. 최경환 김대중평화센터 공보실장은 "MB 충견 노릇하더니 지금의 부정에는 눈감고, 총리시절 민간인 사찰, 국정원 댓글놀이, 그 책임도 막중하다"고 김 전 총리의 과거 전력을 들추기도 했다.
이유가 있다. 우리 헌법에도 국회해산권이 있었다. 1972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10월 유신'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했다. 그리곤 유신헌법 제59조 1항에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12ㆍ12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도 국회 해산권을 유지했다. 국회 해산권 조항은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6ㆍ29민주화선언을 거치며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6공화국 헌법 개정 때 없어졌다. '유신 태생'이니 '유신독재로의 회귀냐'라는 비난이 나올 만하다.

대법관을 지낸 김 전 총리가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러니 시대착오적인 유신시대를 추억하기 위해 '국회 해산' 발언을 꺼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 전 총리는 "여야가 대화와 절충을 해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충정에서 제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충정과는 별개로 정치권 일각에선 그가 내년 지방선거의 새누리당 유력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입문 포석이라는 시각도 있다. 설사 그렇더라도 '오죽했으면 국회를 해산해야할 상황이라고까지 했을까', 그의 말에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흐름이 있다는 게 예삿일은 아니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국회는 정기국회 들어 이제까지 3개월 동안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않았다. 6월 임시국회 이후 사실상 입법활동 중단 상태다. 부동산시장 정상화를 위한 '4ㆍ1 및 8ㆍ28 대책'을 비롯해 외국인 투자촉진법 등 100여건의 경제, 민생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몇 달째 잠자고 있다. 새해 예산안도 오늘이 헌법이 규정한 처리시한이지만 아직 심의를 시작하지도 못했다. 나라 경제와 민생은 안중에 없는 투다. 대선이 끝난 지 1년여인데 아직도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의혹을 둘러싼 정쟁으로 연장전을 벌이는 꼴이다.
대통령의 무능, 여당의 무기력, 야당의 무책(無策)이 낳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불통에다 야당을 국정 동반자로 인정하고 끌어안을 줄 모른다. 정치력 부재다. 새누리당은 청와대 눈치만 보는 종박(從朴) 정당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민주당은 대안 없이 '반대'만 외친다. 대선 불복에 대통령 퇴진을 공공연히 주장하는 세력에 끌려다니며 툭하면 국회 일정을 거부하고 있다.

김 전 총리의 말은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분노를 대변한 셈이나 같다. 청와대와 여야는 '국회 해산' 발언이 왜 나왔는지, 많은 국민이 그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가 무언지를 헤아려야 한다. 성난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하기야 고언(苦言)을 듣고도 가슴 뜨끔해하거나 반성하는 정치인이 어디 있기나 할런지 모르지만….





어경선 논설위원 euhk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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