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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칼럼]대통령의 릴레이 외국어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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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논설실장

양재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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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정상외교 행보가 다채롭다. 취임 이후 미국을 필두로 중국, G20(주요 20개국), 러시아, APEC(아태경제협력체), 아세안(ASEAN)에 이어 프랑스ㆍ영국ㆍ벨기에 등 서유럽까지. 여기저기서 한복 맵시와 외국어 연설이 화제를 모았다. 미국 의회에서 의원들에게 영어로 연설했다. 중국 방문길엔 칭화대 학생들에게 중국어로, 프랑스에선 경제인들에게 프랑스어로 연설했다.

최고 지도자가 외국을 방문할 때 어느 나라 말을 써야 할까.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은 당당하게 자국어를 사용하는 것이 정도다. 친밀감을 표시하기 위해 현지어를 쓸 수 있다. 이 경우 공식 연설의 첫머리나 끝부분 인사말이면 충분하다. 연설의 핵심어 한두 마디를 현지어로 말하는 것도 깊은 인상을 줄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한국에 와 외국어대 특강에서 맨끝을 한국어로 말했다. 한미동맹을 강조하며 "함께 갑시다"라고. 그 정도면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현지어로 연설할 필요는 없다. 익숙하지 않은 외국어로 말하다 실수하는 것보다 자국어로 정확하게 표현하고 제대로 통역하는 게 정상외교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이다.

한류가 널리 퍼지면서 한글을 배우려는 외국인이 많다. 적지 않은 외국 대학에서 한국어과를 개설했다. 대통령이 해외순방 길에 한국어과를 개설한 현지 대학 학생들과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면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박근혜정부가 내세우는 국정지표인 문화융성과도 맥이 통한다. 한글은 세계가 인정하는 과학적인 언어다. 잊혀져가는 자주애민(自主愛民)의 훈민정음 창제정신을 기리기 위해 한글날을 법정 공휴일로 재지정하지 않았던가. 국가 지도자가 정상외교 때 어느 나라 말을 쓰느냐는 국가 정체성과 국민 자긍심과도 연결된다.

대통령의 정상외교에는 적지 않은 나랏돈이 들어간다. 전용기를 띄우고 공식 수행원 외에 기업인들이 동행한다. '움직이는 청와대'다. 당연히 순방에 따른 외교ㆍ안보ㆍ경제적 성과가 뒤따라야 한다. 대통령의 외국어 연설과 한복 맵시는 부수적인 개인 이미지이지 정상외교 성과는 아니다. 여러 차례 갈아입는 한복 맵시와 외국어 연설 장면이 강조되면 본연의 외교성과가 뒷전에 밀린다. 대통령에게도, 국가적으로도 손실이다.
상당수 국내 언론이 정상외교 성과보다 대통령의 패션과 외국어 연설 모습을 부각시켰다. 3개 국어를 구사하는 박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준 뒤 역대 대통령의 외국어 실력을 자료화면과 함께 언급한 방송도 있었다. '이미지 정치'요, '패션 정치'다. 하지만 이런 식의 보여주기에 치중하는 정치행위는 초기 한두 번 통할 뿐 얼마 안가 싫증나고 잊힌다.

해외순방 때 친밀감을 주기 위해 현지어로 연설문을 준비하는 등 배려하면서 우리말로 쉽게 통할 수 있는 국내 상대방은 왜 외면하는가. 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소통과 화합, 국민대통합을 강조했다. 그런데 취임 이후 국내 언론과 기자회견이 없다. 국민에게 직접 해야 할 말도 수석비서관 회의나 국무회의를 통해 간접 전달했다. 그러면서 외국 언론과는 여러 차례 인터뷰했다. 남북정상회담 의향 등 남북관계와 관련된 대통령 생각도 외국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해야 했다.

박 대통령은 프랑스 신문 르 피가로와 인터뷰에서 "한국은 아시아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잘 활성화된 모델"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 선거 개입,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삭제 및 유출 논란 등으로 사분오열돼 있다. 진흙탕 정쟁이 경제의 발목을 잡고, 세대ㆍ계층 간 갈등이 위험수위다. 국민이 진정 듣고 싶은 것은 영어도, 중국어도, 프랑스어도 아닌 박 대통령의 한국어다.





양재찬 논설실장 jay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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