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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한 감독, 우리 시대의 '히어로'를 이야기하다(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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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한 감독, 우리 시대의 '히어로'를 이야기하다(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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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건욱 기자]한국영화의 질적, 양적 가치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유명 감독들은 할리우드 배우들과 작업을 하고, 대중은 언제부턴가 소위 '히트 영화' 뒤에 붙는 '일천만 관객'이라는 수식어를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그런 우리 영화도 '영웅물'에서 만큼은 아직 제대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상태다. 아이언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 다양한 슈퍼 히어로들이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지만, 그 안에 한국 영화가 만들어낸 캐릭터는 전무하다.
김봉한 감독은 그런 와중에 영화 '히어로'를 통해 대한민국 최초의 영웅 '썬더맨'을 가지고 나타났다.

'히어로'는 어린이 드라마 '썬더맨'이 종영하자 절망에 빠진 아들 규완(정윤석 분)을 위해 직접 '썬더맨'이 되기로 결심한 아버지 주연(오정세 분)의 눈물겨운 노력을 담아낸 영화다. 이 작품은 아들을 위해 못할 일이 없는 아버지 주연을 통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우리시대 영웅'의 모습을 그려냈다.

"요즘 마블이나 디씨(DC)코믹스 캐릭터들이 엄청난 인기를 끌잖아요. 제 아들도 '아이언맨' 광팬인데, 영화를 20번 정도 보더니 대사를 줄줄 외우더라고요. 그걸 보는 제 마음이 복잡했죠. 왜 그런 캐릭터들이 우리에겐 없을까 고민을 했어요. 사실은 한국 영화에도 그런 영웅들이 없진 않았거든요. 7080세대에게 익숙한 '태권브이'나 '우뢰매'같은 것 말입니다. 아이들에게 그런 순수 국산 히어로를 선물해주고 싶었어요."
김 감독은 아버지 세대의 '영웅'과 요즘 아이들이 열광하는 '히어로들' 사이에서 위치를 잡았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는 접점에서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히어로 영화에 대한 단서를 잡았다.

"사실 부모 자식이 함께 볼만한 영화가 드물어요. 아이와 함께 쇼핑몰에 가는 엄마를 잘 관찰해보세요. 엄마는 쇼핑하고 그 사이 아이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봐요. 그만큼 영화가 우리 삶 속에 깊이 들어왔다는 이야기도 되지만, 아이들 영화와 어른들 영화가 나눠져 있다는 의미죠. 일본은 조금 달라요. '짱구는 못말려'나 '명탐정 코난' 같은 애니메이션은 개봉만 하면 대박이에요. 마니아층도 있어서 꾸준한 인기를 끌죠.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영화가 많아지면 우리나라도 그런 환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김 감독은 한국 영화 시장이 부모와 아이 모두를 위한 작품을 만들기에는 아직 환경적으로 미흡한 부분이 많다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김 감독과 그의 동료들은 녹녹치 않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한국형 히어로'에 대한 갈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히어로'는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들어간 영화였다.

"대학 강단에 서면서 영화 작업도 같이 했어요. 여러 시나리오를 가져다 준비를 했는데 잘 안 됐죠. 그래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진심을 담아 써내려갔어요. 그 전에는 간절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의미가 깊었죠."

"사실 프리프로덕션만 1년 반이 걸렸어요. '썬더맨' 디자인을 뽑는 것도 정말 힘들었죠. 많은 영웅들 의상을 보면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각자 개성이 있어요. 결국은 머릿속에 그려지는 대로 가기로 했죠. '배트맨' 스타일이냐 '아이언맨' 스타일이냐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예산을 크게 잡고 '아이언맨'처럼 메탈슈트를 만들고 싶었는데 비용 문제로 포기했죠. 결국은 CG처리를 했는데, 그 비용만도 엄청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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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감독과 제작진들이 '히어로'를 위해 노력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는 몇 가지 놀라운 촬영 비화들을 고백했다.

"제주도에서 촬영을 많이 했는데, 28일 동안 매일 작업해서 27화를 완성했어요. 갈 때부터 오는 날짜 비행기 표를 끊어서 갔죠. 제한된 예산에서 효율을 최대한 끌어내야 했어요."

"날씨도 엄청 추웠어요. 4월인데 오리털 점퍼를 입었다니까요. 특히 배우 신지수씨 같은 경우는 바닷가 신(scene)에서 춥고 지치고 많이 힘들었을 거라 생각해요. 예산 때문에 여배우라고 더 신경써주질 못 했어요. 식사도 아침에 주먹밥, 점심에 김밥으로 때웠죠. 우리는 거의 '동지적' 관계였어요. 모든 사람들이 '히어로'를 자기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작업을 마치지 못 했을 거예요."

김 감독이 말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역시 예산이었다. 촬영 내내 그의 아침 일과는 콘티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줄일지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많은 수정이 중간에 있을 수밖에 없었고, 감독의 임기응변으로 모든 변수에 대응해야 했다.

"특히 감사드리고 싶은 분이 있어요. 서울에서 병원 신(scene)을 찍었거든요. 규완이가 수술실에 가는 장면이죠. 진짜 수술실을 빌렸어요. 우리 촬영 끝나고 며칠을 소독해야 환자를 들일 수 있었대요. 병원 원장님이 영화광이시라, 그분 배려로 무사히 촬영을 마쳤어요."

김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들은 그렇게 '히어로'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오랜 세월 뱃속에서 키워온 자식이 바깥세상에 첫 발을 내딛은 셈이다. 김 감독은 자기 피붙이와도 같은 영화에 어떤 의미를 담았을까.

"배우이자 감독인 기타노 다케시가 이런 말을 했어요. 누가 안 쳐다보면 가져다 버리고 싶은 게 가족이라고요. 살다보면 그런 생각도 들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버릴 수는 없게 가족 아닐까요. 대한민국 아버지들이 '아빠 힘내세요'란 말을 듣기 싫을 때가 있대요. 가뜩이나 돈 버느라 지치는데, 더 내모는 것 같다면서요. 그렇게 힘들어도 가장이니까, '아버지'들은 아침만 되면 벌떡 일어나 출근길에 오르죠. 그런 게 슈퍼 히어로의 모습이지 않을까요. 그들이 '너만 알고 있어, 아빠는 사실 초능력자야'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김 감독이 말하는 '우리 시대의 히어로'가 어떤 모습인지 알 것 같았다. 그는 계속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를 이어가며 가장 좋아하는 감독인 팀버튼의 '빅피쉬'를 예로 들었다.

"사실 '빅피쉬'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영화에서 아들이 아버지에 대해 정말 그가 대단했냐고 묻는 장면이 있죠. 아들은 거기서 '아버지는 전국을 떠도는 외판원이라 네가 태어났는지도 몰랐을 거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중요하니'란 말을 들어요. 그게 a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갖는 꿈과 환상의 가치는 사실여부에 달린 게 아니잖아요."

김 감독은 '히어로'가 가족들이 와서 훈훈하게 보고 가는 영화가 되길 바랐다. 영화를 보고 아버지가 자식에게 "내가 너를 이렇게 키웠단다"란 말을 건넬 수 있는 영화, 이에 자식은 아버지에게 "그럼 아빠도 나 아프면 저렇게 구해줄 거야?"하고 천진난만하게 물을 수 있는 그런 영화를 꿈꾼다고 밝혔다.

"아이들은 산타클로스처럼 실제론 없어도 존재한다고 믿고 싶은 게 있죠. 그 아이들도 언젠가는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고 현실에 안주하겠죠.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그런 동심을 간직할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요. 과거에는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믿었어요. 지금은 '히어로'를 통해 단 5분만이라도 사람들이, 잃어버린 그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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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욱 기자 kun1112@asiae.co.kr
사진 송재원 기자 sun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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