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제목을 편집선배 한분에게 가져가서 보였더니 제목종이를 들고선 물끄러미 지켜본다. 잠시 뒤에 빨간 색연필을 꺼내 뒤의 여섯 자에다 줄을 죽 긋는다. 그리곤 그 위에 적는다. 편집기자는 "기계다"
임번은 산을 내려와 전당강 기슭의 여인숙에서 하루를 묵으려 짐을 풀었다. 그는 늦은 밤 강가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물에 비친 달을 구경하고 있었다. 강물이 썰물을 따라 물러나자 달빛이 강 전부가 아닌, 절반만 비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갑자기 그가 써놓고 온 시가 생각났다. 자신은 일강수(一江水)라고 하지 않았던가. 달빛은 반강수(半江水) 뿐인데 말이다. 이마를 치며 그는 부랴부랴 길을 되짚어 천태산으로 올라갔다. 허겁지겁 절에 다다른 그는 담벼락의 시를 찾았다. 그러다가 깜짝 놀랐다. 그가 써놓은 시 속의 '일강(一江)'을 누군가가 반강(半江)으로 벌써 고쳐놓은 것이 아닌가. 일(一)에서 한획을 다시 긋고 세로로 줄을 그은 뒤 양쪽에 점 두개를 찍어서 말이다.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급히 절로 뛰어들어가 수소문을 했다. 젊은 스님 하나가 대답했다. "아까, 선생님이 내려가신 뒤에 노인 한분이 그 담벼락에 오래 서있었습니다." "그분이 어떤 사람이던가?" "회색 눈썹에 회색콧수염을 가진 호리호리한 분이었습니다." 임번은 마을로 내려가 백방으로 그를 찾았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중국에서 몰려오는 황사로 연일 하늘이 부옇다. 그날의 기사는 황사 속에 구제역의 발병인자가 함께 실려올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복지부에선 서둘러 축산농가에 비상령을 내리고 구제역 방역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제목을 달았다. '황사에 구제역 실려올라' 그렇게 달아놓고는 제목이 왠지 싱거워보여서 뒷말을 조금 바꿔본다. '황사에 구제역 묻어올라' 맛은 훨씬 좋아졌는데, '올라'로 끝난 것이 왠지 수다스러워 보이고 한가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데스크에 이 제목을 슬쩍 밀어놓는다. 대장(臺狀)에서 고쳐진 제목을 보고 그는 깜짝 놀란다. 선배는 황사 뒤에 있는 문장들을 모두 지우고 앞에다 세 글자를 집어넣었다. "음메에! 황사" 사람이 주어가 아니라, 가축이 주어였다. 전해 구제역 때문에 집단도축의 공포를 이미 맛본 소들이니 황사가 두렵기도 하리라. 저 소의 목소리 하나로 그날 지면은 생기 넘치는 가축적인(!) 분위기를 창출해냈다. 아! 선배.
이상국 편집부장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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